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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호 2007년 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金 容 德(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金 容 德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대담 : 본보 李東植논설위원
            (KBS 방송문화연구팀장)

중국의 동북공정은 물론 일본과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 3개월 여를 지나고 있다. 金容德(사학63-67)초대 이사장은 재단 소식지 창간호를 통해 ??역사를 특정 국가의 좁은 시각이 아니라 동북아, 나아가 세계사 속에서 각 나라의 역사가 갖는 의미를 밝혀 공통점을 더욱 발전시키고 해석상의 차이점은 공동과제로 연구를 지속함으로써 국민들 사이의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라는 요구도 담고 있다??고 재단의 설립의의를 밝히고 있다. 넓은 안목으로 경쟁 국가 간의 갈등보다는 공존을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지난 12월 20일 金容德이사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과 학창시절 이야기 등을 들어봤다.


"평화  .  공존을 위한 바른 역사의 길 열어가겠다"

- 다른 매체와는 거의 인터뷰를 안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반 매체는 좀 조심스러워 인터뷰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도 저는 자기 일을 알리기보다는 스스로 알려지는 것을 택하는 쪽입니다."
 - 취임한지 두 달이 조금 넘으셨는데, 초대 이사장으로서 소감이랄까요.
 "책임감이 굉장히 무거워요. 학교에서는 학생들 열심히 가르치고 주어진 업무하고 연구하면 그것으로 끝났는데, 여기 일은 학계는 물론 언론, 시민단체, 국회에서 전부 주시하고 있으니깐 일이 신경이 쓰이죠. 어쨌든 이 연구소가 인문사학계열 연구소로는 상당히 규모가 큰 편입니다. 어떻게 하면 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 해리티지 재단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연구소로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 취임 전 유학시절 일본에서 기금을 받았다는 보도 때문에 좀 불편한 부분이 있으셨죠.
 "오해에서 비롯됐어요. Japan Foundation은 공식적으로는 국제교류기금이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일본재단'이라고 직역을 했더라고요. '일본재단'이라고 하면 보수적인 색채가 느껴질 뿐 아니라 실제로 보수성향의 재단으로 그러한 이름의 재단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것입니다.
 국제교류기금은 친일인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를 하는 경우에도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이지요. 어느 기자에게 그랬어요. 'Korea Foundation의 연구지원금을 받은 외국 학자들이 모두다 그 사실을 감추고 다니면 Korea Foundation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그것에 대해 거리끼는 게 전혀 없습니다."

 "흥분해 싸우기보다는 참모습 밝히는게 중요"
동북공정 연구결과 2월말 발표 예정

- 얼마 전 첫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셨는데, 성과가 있으셨습니까.
 "각 나라 간에 서로 상대국의 역사는 존중해줘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일이 성과라면 성과죠. 대회 주제가 '21세기 동북아시아의 공동번영을 위한 역사문제의 극복'이었는데, 중국, 일본은 물론 폴란드, 독일, 프랑스 학자들이 참여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도쿄대 사카모토 요시카즈 명예교수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갈등을 넘어서는 방법은 기존의 국경을 벗어나야 한다. 시민운동가, 지식인들의 국경을 넘어선 협력이 필요하다. 그럴 때 다른 나라를 존중할 수 있고 공동번영의 기반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폴란드에서 온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솔직히 독일과 우리가 화해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문제는 많다.' 그런 이야기 들으면서 '역사문제라는 게 참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많은 국민들이 동북공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풀어야할 큰 과제 중 하나인데요.
 "중국의 주장에 흥분해 맞서 싸우기보다는 우리 역사의 참모습을 밝혀내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밝혀낸 객관적 사실을 중국 측에 알려 그 곳 학자와 토론하고, 그 다음 국제사회의 이해와 지지를 구하는 것이 해야 할 일이겠죠. 중국의 동북공정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기에는 허술한 면이 많아 우리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그것을 다른 나라에서 지지해 주면 중국은 국제학계에서 고립될 것입니다.
 또한 동북아역사재단의 일을 한  .  중  .  일 간의 문제해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는데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세계라는 넓은 틀 안에서 동북아문제의 갈등을 봐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서로 싸워야 할 것인가, 아니면 더 큰 공동의 목표와 지향이 있다고 할 때 거기에 대해 동북아시아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까지 생각을 해야 합니다."
 - 중국의 민족주의가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중국은 현재 국내적으로 빈부갈등, 계급격차의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봉합하기 위해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으로도 보여집니다. 물론 그것이 동북공정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 보다는 중국이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국가 주체성의 문제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중국의 입장을 감안해서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겠죠."
 - 재단의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겠죠.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바라는 게 많죠.(웃음) 언론의 속성상 독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이목을 끌어야 하는 점이 있지만 그 때문에 어떤 사안들은 사실 이상으로 부풀려져 보도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동북공정이 중요 사안이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바라보는 동북공정의 실제적 모습도 냉정하게 보여줬으면 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동북공정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중국에서는 사회과학원 안에서조차 모르는 학자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냉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언론에서 '중국의 실상은 이렇다' 하는 것도 알려주면 전 국민이 '싸워 이겨야겠다'고 흥분하지는 않겠지요."
 - 서로 간에 이해해야 할 측면이 있기도 한데 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무장해제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요.
 "물론 이런 문제에 있어 우리의 태도는 단호해야 합니다. 동북공정 외에도 독도, 동해표기, 앞으로 이어도 문제까지 걸려있는 사안이 많지요.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흥분해서 상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일관하면 우리입장 자체가 흐려질 수 있고 약화될 수도 있습니다. 더 조심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편협한 애국주의, 민족주의를 자극시키는 것이에요. 두 나라 간에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이런 것은 양보하자는 것이 아니라, 단호하면서도 분명한 논리를 바탕으로 냉정하게 대응하자는 것이지요."
 - 그렇다면 중  .  일과의 인식의 갭을 줄이기 위해 공동교과서, 안되면 공동교재라도 만드는 게 앞으로의 목표 아니겠습니까.
 "사실상 공동교과서는 어려워요. 시민단체에서 '미래를 여는 역사'란 공동의 역사책을 만든 경우가 있죠. 시작단계이지만 하나의 싹을 보여줬다고 봐요. 현재 재단에서 하는 일은 공동의 역사총서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계속 출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정부 간의 협력이 궁극적으로 필요해요.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했을 때는 시민 단체의 힘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거든요. 정부 간에도 냉정하게 할 필요가 있죠. 지나친 自國중심주의, 편협한 민족주의 같은 것이 문제를 부풀리는 거품 같은 것이기 때문이죠."
 - 일부에서는 역사를 다루는 기관이 분산돼 있어 기능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필요한 일입니다. 국회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학술진흥재단의 일 가운데 중복되는 업무가 있다는 지적이 있기도 했고요. 그러나 지금 시작 단계의 우리 재단이 나서서 '중복된 업무를 조정하자' 그럴 수는 없고, 서로 협력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죠. 기관이 서로 만나서 중복된 것을 어떻게 나눠서 해야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지요. 예컨대, 우리는 불가피하게 중국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안 다룰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에 대한 문제를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협력해 공동연구를 하기로 하는 것 등이죠. 그런 면에 있어 기관이기주의로 공적을 세우기 위한 경쟁은 없을 겁니다. 국사편찬위원장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을 우리 재단 이사로 모시고 있고 저 역시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을 계속하고 있어요."

"카리스마보다는 이해와 포용의 리더십 발휘"

 - 올해 역점 사업이라면 무엇인지요.
 "2월부터 중국의 동북공정 연구 결과물이 나옵니다. 이에 맞춰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입장을 보고할 계획입니다.
 또 하나는 미국에 2곳, 유럽에 1곳 등 국제적인 연구 거점을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와 협력해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 줄 수 있는 연구 거점을 만드는 것이죠.
 또 우리의 연구역량을 높이기 위해서 국내 연구 성과물을 균형 있게 묶는 역할이 중요한 것 같아요. 중국의 발해, 고구려사 연구는 대단한데, 한국의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의 발해, 고구려사 연구는 국제적으로 가장 앞서 있고 깊이도 있습니다. 그런 연구 성과물을 바탕으로 고구려  .  발해사 개설서를 발간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공동의 역사서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할 것입니다."
 - 최근 국회에서 예산을 타내는 문제로 행정가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야 하는 부담감도 따랐을텐데요. 리더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무엇인지요.
 "교수를 오래해서 그런지 몰라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이끌어 가는 것이 진짜 행정가의 덕목인지 의문 들 때가 많아요. 어떤 조직을 이끌어갈 때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고 설득해 가며 조직원들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끌어 모아 가는 게 리더로서의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 연구위원이 30명 이상 되는데 '자 가자!' 하며 끌고 가면 그들이 따라 오겠어요? 그들이 갖고 있는 잠재능력을 파악하고 그 총량을 모으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 이제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요즘 TV 3사가 사극을 다루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역사를 왜곡하는 측면도 있고 동시 다발적으로 나오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요.
 "중국에서 오해를 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지상파 방송이 모두 나서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지요. 그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가 중국 땅을 먹으려 한다는 식으로까지 오해하고 있는데, TV 역사물들이 우연인지, 동북공정에 의해 촉발돼서 그러는 것인지 내막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역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오히려 역사드라마를 잘 안 봐요. 짜증이 나거든요.(웃음) 사극이라는 것은 사료를 기본으로 해서 거기에 없는 것을 상상을 통해 재현하는 것인데, 있는 것을 틀리게 하고 거짓 사실을 집어넣는 등 잘못된 정보를 주고 있어요. 사극을 보기 전에 제대로 된 역사책을 한번 읽어 봤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보면 틀린 역사를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겠죠."
 - 사학을 전공하게 된 동기는 어떻게 되세요.
 "중  .  고등학교 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동기들과 서로 경쟁적으로 어려운 책도 보면서 자연스럽게 철학같은 인문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부모님은 내심 법학같은 것을 공부하길 바라셨겠지만. 저의 경우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가 있죠. 숙부가 정치학 교수셨는데 그 분 말씀이 '내가 지금까지 후회하는 게 역사공부를 안한 것'이라며 역사공부를 먼저 하면 모든 분야로 나갈 수 있는 안목이 생기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너는 사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 해서 주저하지 않고 택했죠.
 역사학은 굉장히 폭넓은 학문입니다. 과거의 유럽 학문에서는 정치학이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하버드대 근처의 고서점을 자주 가 보곤 했는데, 그곳에는 정치학 코너가 따로 없이 역사학 코너 중 현대사 부분에 정치학 관련 서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게 상당히 자연스러운 분위기예요."
 - 동양사학과 출신들이 참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하고 있죠.
 "그런 편입니다. 최근에 많이 읽히는 책을 낸 제자가 둘 있습니다. 이용규 박사는 '내려놓음'이라는 신앙서적을 내 베스트셀러가 됐더라고요. 그 친구가 학창시절부터 신앙심이 깊었는데 한번은 대학원 진학을 두고 상담을 하러 왔어요. 대학원에서 기독교사를 공부하고 싶은데 고민이라고요. 그래서 학문으로 배우려면 일반 대학원에 들어가라고 해 하버드대를 추천해서 거기서 공부를 했어요.
 또 裵紀燦이라는 제자는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라는 책을 썼는데 盧대통령이 늘 옆에 두고 읽는 책 중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언론계에도 꽤 많죠. 대학 때 고전의 맛을 봐서 그런지 사학과 출신들의 글은, 제 느낌이겠지만, 격이 느껴져요."
 - 오랫동안 교직에 계시면서 학생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넓은 시각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영어 외에도 한 두 가지의 외국어를 더 익히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자기가 전공하는 '학문의 기초가 무엇인가, 무엇이 역사학의 기본인가' 이것을 철저히 공부하라고 늘 주문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책을 광범위하게 읽으라고 하죠. 책을 선택할 때는 남들의 추천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이 흥미있어 하는 것을 읽으라고 합니다. 이는 논문을 작성할 때도 마찬가지에요. '네가 재미있어 하는 분야는 다른 사람보다 앞섰다는 것이다. 그런 이점을 버리고 공연히 멋있어 보이는 것을 따라하지 마라'하고 말하곤 했죠."
 - 동기들도 사회에서 많이 활동하고 계신데, 자주 모이시나요.
 ??'63사학회'라고 자주 모이는 편입니다.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이 SBS 安國正사장인데, 우리 동기들은 언론계로 많이 나갔어요. 개중에는 사업이나 교수 등을 하는 친구들도 여럿 있고요."
 - 공개 못하신 학창시절 연애담이라든가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우리 때는 데모로 시작해 데모로 끝났죠. 지금 기억해 보면 한 학기 밖에 끝까지 간 게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 오히려 시간적 여유는 많았어요. 학생들만 여유가 있던 게 아니라 교수님들도 여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高柄翊선생님이 굉장히 긴 논문을 쓴 게 바로 그때거든요. '마음은 불편했지만 집중해서 공부하는 데는 도움이 되더라.' 나중에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웃음)
 사실 그때는 고민이 많았죠. 데모에 앞장서는 친구들을 보면서 미안하기도 했고요. 방향은 옳다고 하면서 나는 왜 나서지 못할까. 행동을 하기 전에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확신이 없었던 것이죠. 아무튼 대학 때는 고민하고 방황하면서 지냈죠."

TV 사극 보기 전에 역사책 읽었으면
"넓은 안목 갖춘 서울대인이 되자"

- 교수직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건가요?
 "네. 현재는 휴직상태입니다만."
 -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건강관리는 안 해요.(웃음)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고 하잖아요. 건강 생각 않고 그냥 삽니다."
 - 그래도 그게 평소에 무리를 안 하시기 때문에 그건 것 아니겠어요. 음주라든가, 흡연을 안 해서.
 "술은 체질적으로 잘 못 마시니깐. 학교에 있을 때는 관악산을 가끔 올라갔어요. 가급적이면 걷고요. '나만이라도 자가용을 타지 말아야겠다'고 늘 생각을 하죠. 서울 시민의 상당수가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상당히 쾌적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텐데요."
 - 동감합니다. 자제 분들은 모두 장성해서 분가했죠? 가족소개를 해 주시죠.
 "1남 2녀를 두고 있는데 딸 둘은 시집을 갔어요. 딸, 사위들이 서울대 동문입니다. 아내도 그러니 아들을 제외하곤 모두 서울대 동문인 셈이죠. 아내(朱善卿 약학68-72), 큰 딸(金世隣 음악이론93-97), 맏사위(洪載和 경제93-97), 작은 딸(金世安 간호95-99), 작은 사위(孔誠浩 의학94-00)가 모교 출신입니다. 아들(金怡中)은 KAIST를 나왔어요."
 - 마지막으로 새해를 맞아 동문들에게 덕담 한마디 해주시죠.
 "글쎄 제가 많은 선배님들이 계신데 덕담을 할 학번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의 위상, 미래는 외국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안목을 넓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국제적인 시각에서 볼 때 우리는 어느 위치에 있나를 늘 점검하며 세계적인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가꿔갔으면 좋겠습니다."
 - 바쁘신 가운데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金容德이사장 약력
 △44년 서울 출생 △63년 경기고졸 △67~70년 해군사관학교 교관 △78년 하버드대 일본연구소 연구원 △79년 하버드대 대학원졸(역사학박사) △80~06년 모교 인문대 동양사학과 교수 △86년 일본 히토쓰바시대 객원연구원 △93년 中國 南開大學 초빙교수 △99~00년 역사학회 회장 △01년 동경대 객원교수 △01~02년 모교 평의원회 부의장 △03~06년 모교 국제대학원장 △05~06년 모교 일본연구소 소장 △現 'International Journal of Asian Studies' 편집위원
 〈사진=아주대 李五峰겸임교수  ?  정리=金南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