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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호 2007년 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통일과 구원



  통일과 구원


     金 玄 浩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장 본보 논설위원)

최근의 국민 통일의식 조사들을 보면 우리 국민의 80% 가량이 남북통일은 천천히 하거나 아니면 아예 통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급적 빨리 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의견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리느라 남한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이 이런 조사 결과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초등학생들 중에서도 "가난한 북한과 통일하면 우리도 가난해지잖아요"라고 따지는 '똑똑한' 녀석들이 적지 않다. 북한 어린이들이, 잘못된 교육 탓이긴 하지만, '깡통 찬 남조선 아이들'이 불쌍해서 통일을 서둘러야 한다고 믿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어떤 통일정책을 추구하든 간에 통일의 당위성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는 것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더구나 그것이 북한 주민들을 먹여 살릴 비용을 염려한 탓이라면, 우리에게 과연 통일을 이룰만한 민족적 度量이 있는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서독에서도 ??왜 우리가 동독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느냐??는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그때 서독의 한 신문에 실린 글이 인상적이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고 기억된다.
 "독일이 분단된 것은 나치 정권이 침략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의 죄과는 고스란히 동독의 동포들이 짊어져야 했다. 그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의 지배에 시달리면서 정신적 .  물질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어왔다. 하지만 우리 서독인들은 서방세계의 지원으로 자유와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이제 우리가 동독 동포들을 위로하면서 그들이 짊어진 역사의 짐을 나눠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분단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것이 근본 원인이다. 그러나 이후 역사의 짐과 고통은 남쪽보다 북쪽에 훨씬 더 가혹하게 가해지고 있다. 북한 동포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억압과 물질적 궁핍은 남한 국민들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은 북한동포 구원의 문제와 별개로 생각할 수가 없다.
 통일을 놓고 눈앞의 경제적 손익만 따지는 것은 민족통일의 역사가 짧고 실용적인 독일인들마저 '小상인 기질'이라고 아주 경멸해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