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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2006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느티나무광장

부끄러움과 자부심

느티나무 광장

 
     부끄러움과 자부심



         鄭  世  溶
   내일신문 논설주간 
      본보 논설위원


70~80년대 군사독재가 판을 치던 시절, 한때 필자는 서울대를 나온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서울대를 나온 수재들이 육사 졸업생의 하수인이 되어 군사독재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독설가들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좌절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던 것이다.
 한겨레신문에 근무하던 시절 교육평준화 논리에 빠져 한때 서울대 폐지론에 동조하기도 하고 모든 국립대를 개편해 한국1대학, 한국2대학, 한국3대학 등으로 바꾸자는 일부 여론에 긍정적 의사까지 표현한 적도 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평등 정의와 함께 창의력과 엘리트 그리고 실험정신이 대한민국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물론 과오가 있지만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해방 후 최대과제 실현에 있어 어느 집단보다도 서울대의 공이 많지 않았던가. 서울대를 나와 출세한 사람도 많지만 군사독재에 맞서 옥살이를 많이 한 학생이 가장 많은 대학도 서울대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이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기까지는 어느 누구보다도 서울대 졸업생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지 않았던가. 체육계와 연예계를 빼놓고 각 분야에서 해방 이후 가장 많은 인물을 배출한 대학이 과연 어디인가.
 그렇다.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인 것 같다. 내가 아는 한 1960년대와 1970년대 국내에서 서울대와 맞서 겨룰 대학은 없었다. 전국의 수재들은 모두 서울대로 몰려들었고 별다른 노력 없이도 서울대 출신들은 각계의 탑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2006년 가을, 서울대는 세계 63위를 자랑하지만 국내외 다른 대학의 도전 속에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인문대는 고시반화했고, 농생대는 동남아출신으로 채울 판이고, 자연대는 지방의대만 못하다"고 서울대 교수인 한 동기의 낙담은 서울대가 기로에 서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 모교인 서울대는 변해야 한다. 개교 60년 동안 한국사회 발전을 위해 선도적 역할을 했음을 자부하면서 세계 속의 대학으로 거듭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서울대의 경쟁상대는 연세대, 고려대가 아니라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도쿄대, 베이징대가 돼야 한다.
 그리고 서울대가 민족의 대학이라면 한국화에도 앞장서야 한다. 한국사와 한국어는 물론이고 한국정치, 한국경제, 한국사회에 가장 정통한 연구업적을 쌓아 관악이 진정 한국의 자랑이 돼야 한다. 또 하나의 희망은 한국사회의 파이오니어를 서울대에서 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의 위기를 타파할 인재도, 전공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움을 창조하는 '21세기형 인재'도 서울대에서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