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호 2006년 10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탈북자들에게 한국은 무엇인가?

탈북자들에게 한국은 무엇인가?
趙 星 元
(대학원97-99)
KBS 시사보도팀 기자
최근 KBS 1TV에서 일요일 밤에 방송하는 '취재파일 4321'이라는 매거진 프로그램 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첫 아이템으로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해봤습니다. 입사 이후 줄곧 몸 담아왔던 2분 안팎의 9시 뉴스 스타일에서 벗어나 10여분 길이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대한 중압감, 한편으론 데일리 뉴스와는 다른 나만의 색깔을 담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도전 의식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고심 끝에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 씨의 이야기를 담아 보기로 했습니다. 통일과 남북관계에 대한 관심이 언론계에 발을 딛게 된 이유이기도 했고, 김철웅 씨의 음악활동과 예사롭지 않은 탈북 동기가 좋은 소재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김철웅 씨는 올해 33살의 젊은이입니다. 평양 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하고 북한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 지난 2002년 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평양 음악무용대학은 출신성분이 좋은 어린이들을 선발해 8살부터 우리의 초. 중. 고. 대학 과정을 모두 가르친다고 하니 김씨가 북한에서 세칭 잘 나가는 집안 자제였음은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 그의 아버지는 당 고위 간부였고 어머니는 대학교수였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그의 출신 배경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그가 두만강을 건너게 된 이유였습니다. 그는 우연히 듣게된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피아노곡 '가을의 속삭임'에 반해 이를 몰래 쳐보곤 했는데 이 같은 사실이 보위부원에게 적발돼 자기비판서를 쓴 일이 탈북 계기가 됐다고 했습니다. 원하는 곡을 마음대로 듣고 연주할 수 없는 피아니스트. 자신의 처지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 '예술의 자유'를 찾아 사선을 넘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그의 탈북 경위와 음악활동 등 김철웅 씨의 한국 생활을 담아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했습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사실들도 알게 됐습니다. 북한 관련 정부 기관들이나 탈북자 등을 통해 그의 일부 경력이 그동안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말을 듣게된 것입니다. 언론의 부풀리기식 보도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또 탈북자 사회에서 자의든 타의든 출신학교나 활동 단체 등을 속이는 일이 드문 일도 아니란 말을 탈북자 본인들로부터 들었을 때는 당혹스러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 속 고통을 느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탈북자 한 사람은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한국 사회 인권 상황이 북한보다 나은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소위 학벌과 관련해서는 다른 것 같다. 조금 상위 사회를 들여다보니 명문대 나오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벽을 느끼겠더라. 학벌 때문에 이 같은 한계를 느낀다면 그건 분명 인권 문제다." 또 다른 탈북자는 이러더군요. "서울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졸업생 많은 ○○대학을 졸업한 것은 다행으로 느낀다. 비정규직이라도 당장 취업 때부터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다." '학벌' '학연'의 구태는 탈북자들조차 피해가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인지 한 중년 탈북자는 국립대인 서울대가 탈북 2세들에게 좀 더 많은 입학 기회를 줬으면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김철웅 씨는 자신을 두고 자사 이익대로 이리저리 재단하는 한국의 언론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습니다. "보수 언론은 '봐라, 저렇게 자유가 없는데도 김일성, 김정일이 좋다고 그러겠느냐'라는 식이고, 진보 언론은 '북한에서 저렇게 교육을 잘 시키기도 하는데 무조건 북한 나쁘다고만 그러냐'는 식으로 쓴다"면서 언론들간의 싸움에 자신을 이용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탈북자 수는 이제 9천명에 이릅니다. 그들을 향후 통일시대 북한 사람들의 한국 사회 적응 가능성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테스트'로 보기도 합니다. '학벌' '이념 논쟁' 같은 한국 사회의 구태가 그리도 큰 질곡이라면 그들에게 한국은 진정 '자유의 땅' '기회의 땅'이 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김철웅 씨와 탈북 예술인 관련 제 리포트는 news.kbs.co.kr/4321 의 '다시보기'에서 9월 3일자를 찾으시면 '예술, 사선을 넘다'라는 제목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