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호 2004년 3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白南先 前성균관대 소아과 교수
舊소련지역에 의료서비스 제공 97년부터 부인과 함께 무료진료
북쪽으로 카자흐스탄, 동남쪽으로 타지키스탄, 서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과 접하고 있는 인구 5백만명의 자그마한 나라 키르키즈스탄. 이름도 생소한 이곳에서 3년째 낙후된 의료환경·서비스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며 의료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성균관대 의대 소아과 교수에서 STLI(Scientific Technology and Linguistic Institute) NGO단체의 의료파트 담당자로 변신한 白南先(87년 醫大卒)동문이 그 주인공. 『학창시절 기독교 서클에서 만난 부인(姜惠影·90년 醫大卒·前푸른소아과 원장)과 함께 지난 1997년부터 매년 휴가 때마다 개발도상국 지역을 돌며 의료활동에 나섰으며, 우연히 함께 진료활동을 펼친 동료로부터 키르키즈스탄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1인당 국민 소득이 3백달러에 매우 낙후된 지역이지만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잘돼 있고, 문화가 우리와 흡사한데다 외국인에게는 관대한 편이라 2001년 말 심사숙고 끝에 가족과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죠』 白동문이 하는 일은 舊소련의 낡은 의료제도를 이 지역의 경제·사회 실정에 맞는 새로운 의료시스템으로 만들어 현지 사람들 스스로가 선진국의 도움없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처음 이곳을 찾은 그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이유인즉, 『이곳 의료제도는 의사의 전문성이 너무 세분화되어 있어 1차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무려 다섯 명의 의사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었어요. 게다가 워낙 의료교육과 환경이 뒷받침이 안돼 있어 이곳 젊은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전혀 없더군요. 그래서 의사 한 명이 모든 진료를 할 수 있도록 가정의 개념의 의사로 재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한다. 또 그는 현지 의사들과의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이들이 전문적인 지식과 의술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정말 자신처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갖도록 멘토르(mentor)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교도소, 무의촌 농촌지역, 그리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발벗고 나서는 열정을 보여왔다. 왜 의사의 길을 택했는지에 대해 白동문은 『현재에도 자랑스럽고 다시 태어나도 의사가 되고픈 이유는 의사라는 직업이 꾸미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사람들을 만나고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의사는 부모·형제·배우자도 같이 가줄 수 없는 아주 외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인생여정의 길동무가 되어 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대답한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을 사랑한다는 白동문은 끝으로 비록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의 정치·경제·교육·의료·문화를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表〉
성균관대 의대 소아과 교수에서 STLI(Scientific Technology and Linguistic Institute) NGO단체의 의료파트 담당자로 변신한 白南先(87년 醫大卒)동문이 그 주인공. 『학창시절 기독교 서클에서 만난 부인(姜惠影·90년 醫大卒·前푸른소아과 원장)과 함께 지난 1997년부터 매년 휴가 때마다 개발도상국 지역을 돌며 의료활동에 나섰으며, 우연히 함께 진료활동을 펼친 동료로부터 키르키즈스탄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1인당 국민 소득이 3백달러에 매우 낙후된 지역이지만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잘돼 있고, 문화가 우리와 흡사한데다 외국인에게는 관대한 편이라 2001년 말 심사숙고 끝에 가족과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죠』 白동문이 하는 일은 舊소련의 낡은 의료제도를 이 지역의 경제·사회 실정에 맞는 새로운 의료시스템으로 만들어 현지 사람들 스스로가 선진국의 도움없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처음 이곳을 찾은 그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이유인즉, 『이곳 의료제도는 의사의 전문성이 너무 세분화되어 있어 1차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무려 다섯 명의 의사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이었어요. 게다가 워낙 의료교육과 환경이 뒷받침이 안돼 있어 이곳 젊은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전혀 없더군요. 그래서 의사 한 명이 모든 진료를 할 수 있도록 가정의 개념의 의사로 재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한다. 또 그는 현지 의사들과의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이들이 전문적인 지식과 의술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정말 자신처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갖도록 멘토르(mentor)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교도소, 무의촌 농촌지역, 그리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발벗고 나서는 열정을 보여왔다. 왜 의사의 길을 택했는지에 대해 白동문은 『현재에도 자랑스럽고 다시 태어나도 의사가 되고픈 이유는 의사라는 직업이 꾸미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사람들을 만나고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의사는 부모·형제·배우자도 같이 가줄 수 없는 아주 외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인생여정의 길동무가 되어 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대답한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을 사랑한다는 白동문은 끝으로 비록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의 정치·경제·교육·의료·문화를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