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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호 2006년 10월] 뉴스 모교소식

개교 60주년 특집

서울대 어제, 오늘 그리고 앞으로 60년

서울대 어제, 오늘




동숭동 캠퍼스 정문 석제 현판







46년 동숭동 캠퍼스 전경







49년 총체육대회 여학생 입장전경




69년 총동창회 창립기념 벽걸이




52년 전시 학생증
2005년 취업박람회








그리고 앞으로 60년











관악캠퍼스 전경





중앙도서관에서 학구열 불태우는 재학생


일러스트레이션 吳洙亨 서양화02입 동문

















〈어제〉

  
  전쟁 후 대학문화의 틀 잡아

    鄭 容 郁
   (국사학79-83)
  모교 60년사 편찬위부위원장



해방과 함께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가 탄생했다. 서로 다른 연원과 전통을 가진 여러 학교들이 서울대학교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통합했다. '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 파동, 한국전쟁 당시 피난생활 등 초창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서울대학교는 기구를 확충하고 대학의 자치적 운영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1950년대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틀을 잡아간 시기였다.
 '미네소타 계획'과 같은 원조프로그램을 통해 학교설비의 재건, 교육과 연구체제의 강화가 이뤄졌다. 전후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교수와 학생들은 기성 사회의 문화와 구별되는 대학 문화를 형성했다. 극단적인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해 억눌렸던 학생들의 정치. 사회적 비판 의식도 점차 성장했다.
 1960년 4. 19혁명으로 독재 체제가 무너졌고, 그 중심에 서울대생들이 있었다. 그러나 1961년 5. 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다시 사회와 대학을 통제했다. 하지만 1960. 70년대에 학생들은 '민족'과 '민주'를 핵심 가치로 삼아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앞장섰다.
 1975년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관악으로 둥지를 옮긴 것은 서울대 역사에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관악캠퍼스의 완성으로 서울대학교는 명실상부한 종합대학교로 새 출발을 하게 됐다.
 1980년대에 졸업정원제 실시로 인해 갑자기 식구들이 늘어났다. 늘어난 학생들은 강의실과 식당, 도서관 등을 가득 메워 초만원을 이뤘다. 학생들의 사회 참여도 한층 고조됐다. 이 시기부터 서울대학교는 대학원 중심대학으로의 육성을 기본 방침으로 하여 여러 계획을 수립, 대학원교육을 강화하고 수많은 연구소를 증설했다.
 1990년대 들어 민주화의 성과 위에서 서울대도 연구와 교육을 강화하고 내실을 다지는 단계에 들어갔다. '두뇌한국21'사업 등을 통해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한 각종 시설이 대폭 신설됐고, 캠퍼스 전산망 구축을 비롯한 교내 정보화 사업도 급속도로 진전됐다.
 또 외국인 유학생이 1천명을 넘어서고, 이제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본교 교수와 학생, 졸업생들을 만나는 것이 흔한 일이 됐다.
 세계적 대학으로의 발전은 학문과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학내 구성원들과 사회 곳곳에서 자기 몫을 다하는 졸업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원숙기에 들어간 서울대학교는 모든 서울대인들이 힘을 합쳐서 '학문의 대학, 민족의 대학, 세계의 대학'으로서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오늘〉

  희망의 움직임과 우려의 눈길 교차하고 있어

    
   吳 世 正
 
(물리71-75)
  모교 자연과학대 학장 물리천문학부 교수



 개교 60주년을 맞은 서울대학교 교정에는 희망의 움직임과 우려의 눈길이 교차하고 있다. 대학의 역사로서는 결코 길지 않은 60년이라는 기간동안 성취한 업적에 자부심을 느끼며 앞으로의 도약을 다짐하는 희망의 움직임이 있는가 하면, 도도한 세계화의 물결과 결코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국내의 정치사회적인 여건 속에서 서울대가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눈길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난 60년 동안 서울대학교가 이룩한 업적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이공계열의 연구 수준을 평가하는 SCI 논문 수에서는 세계 대학 중 30위를 차지하고 있고 (2005년도), 최근 해외석학들이 자연대학과 공과대학의 학과들을 방문해 평가한 결과도 세계 10위~30위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대학에서 연구다운 연구가 시작된 것이 30년이 채 안된 사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발전은 해외전문가들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다"고 할 정도로 빠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내외의 상황을 보면 서울대의 미래에 대하여 우려되는 점도 적지 않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우리 대학도 세계 일류대학과 직접 경쟁해야 할 처지가 되었고, 실제로 학생 선발에서 과거처럼 국내의 인재를 독점하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많은 우수한 학생들을 외국 대학에 빼앗기고 있다. 게다가 국내에서 서울대가 추구하는 수월성 교육을 보는 눈길은 차갑다. 서울대 망국론이나 폐교론 같은 극단적인 주장이 대표적인 예이지만, 그 외에도 입시에서의 통합형 논술고사 논란이나 BK사업에서의 독식론 등 서울대에 대한 질시의 눈길은 항상 번득이고 있다. 물론 서울대학교의 사회적 책임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지만, 여론이 대학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을 만큼 극단적으로 흐르게 되면 서울대의 발전은 정체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재의 국제적인 상황에서 정체는 바로 후퇴를 의미한다.
 이처럼 국내외의 여건은 우리에게 도약과 정체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데, 사실 대학 내의 움직임은 너무 안이해 보인다. 서울대학교의 바람직한 장래 모습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부족하고, 단과대학과 개별학과의 이기적인 행태는 여전하다. 심지어 서울대학교는 '종합대학'이 아니라 '연합대학'이라는 말이 농담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최근 李長茂 총장이 장기발전 계획을 추진할 위원회를 가동해 서울대의 앞날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도약과 퇴보의 갈림길에 선 서울대가 올바른 선택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내일〉

  이제 세계화가 절실하다


   宋 虎 根
  (사회75-79)
  모교 대외협력본부장 사회학과 교수



최근 일본의 동경대학교가 일본 최대의 신용평가회사인 R&I로부터 AAA등급을 받았다는 소식은 서울대학교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법인화 3년만에 동경대학교는 여러 가지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단단한 재정기반과 함께 발전의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동경대학교 사례뿐 아니라, 미국의 명문대학들이 나날이 도약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호흡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서울대학교의 세계화 전략이다. 연세대와 고려대, 이화여대 등 국내 명문사립에 비해 서울대학교의 국제화 수준이 매우 심각할 정도로 뒤쳐져 있다는 것이 세간의 일반적 견해이기 때문이다.
 사실, 서울대학교가 단과대학별, 학과별, 개인교수별로 추진하고 있는 국제교류 및 학술활동을 총체적으로 따져보면 그다지 뒤진 것이 아니고, 평자에 따라서는 오히려 앞서 있다는 평가도 있다.
 예를 들면, 대학본부가 세계대학과 맺은 공식 협정이 1백10개인데, 단과대학, 학과, 연구소가 교류하고 있는 건수는 2백46개로 잠정 집계됐다. 후자는 공식 통계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를 감싸고 있는 단단한 인식의 껍질이 깨지지 않았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영어강의가 하나의 사례이다. 연대는 17%, 고대는 30% 정도의 강의가 영어로 진행된다. 서울대학교는 5%. 그래도 우리 교수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교육은 '정체성'이 생명이고,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는 인문학적 논리가 존중된다. 맞는 말이지만, 외국학생들과의 교류가 본격화된 이 시대에 한국어만을 고집한다고 외국 명문대학의 학생들이 유학을 올 것인가?
 유인 요인과 매력포인트를 제공하지 않는 대학은 '세계대학'이 아닌 '국내 대학'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국내 명문사학들이 인천 송도국제지구에 앞다퉈 캠퍼스를 설립하는 진출경쟁을 서울대학교는 언제까지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세계화 시동을 걸기 위해 총장 직속기구로 '세계화추진단'을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획, 구상, 실천의 모든 과정에 동문들의 폭넓은 경험이 유입되고 동문들이 개척한 네트워크와 자원이 동원되면 '세계화 빅뱅'이 일어날수도 있다.
 국내 최고의 인재들을 세계인(global man)으로 키우는 것은 비단 서울대학교의 세계화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제2의 도약을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시대적 과제이자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임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