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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호 2006년 8월] 문화 꽁트

열 병


     



              열  병

        孫 章 純(불문54-58)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동진은 타이베이의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서 바이어들을 만나면서도 때로 민주의 얼굴이 떠오른다. 민주와 약혼 날짜를 잡아 놓자마자 회사 일로 출장을 온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를 안고 싶어서 눈에 어리는 것이 아니다. 결혼이 결정되면 책을 보아도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워도 약혼자의 얼굴이 보이는 그런 기간이기는 하나, 그보다는 민주가 그를 진실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인지 새삼스럽게 회의가 일어난 것이다.
 민주는 처음에 트라이앵글 속의 한 여자였다. 민주는 그의 친구 한영이를 애초에 좋아하다가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관심을 표해온 것이다. 한영은 민주를 좋아하면서도 동진의 적극성과 대결하기보다는 슬그머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위로 결혼할 형과 누이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는 마침내 동진에게 마음을 열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 것이다. 허나 동진은 민주의 마음의 소재를 가늠할 수가 없다.
 동진은 그녀와 키스는 했지만 아직 밤에 안아보지 않고 결혼하는 것이 조금은 찜찜하다. 남녀는 무어니무어니 해도 성합이 잘 맞아야 할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주말에 여관이나 호텔에 데리고 가는 것은 그의 체질에 잘 맞지 않는다. 오피스텔에 혼자 살고 있어 밤에 그녀를 유혹하고자 하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동진은 부자연스러운 것을 싫어하기에 자연스런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차일피일 날짜가 넘어가고, 갑자기 출장을 나오게 된 것이다.
 영종도 공항에는 민주가 차를 끌고 나와서 그를 반갑게 마중을 한다. 동진은 이때껏 회사 일로 툭하면 해외 출장을 나갔지만 누가 마중 나온 적이 없다. 그는 비로소 그에게도 애인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동진은 민주에게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나타낸다. 그가 출영장까지 여행 백을 밀고 나왔을 때 민주가 그에게 달려들어 가볍게 포옹을 한다. 동진은 백에서 손을 놓고 그녀를 힘껏 껴안는다.
 "일주일이 어쩌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여기까지 왜 나왔어?"
 "나보다 자기가 대만에서 사스에 전념되어 올까 보아 겁이 났었는데 이렇게 건재해서 돌아오니 너무 좋다."
 "누가 알어? 사스는 잠복기가 열흘이나 된다는데. 며칠 후에 열이 나면서 발병의 증상이 드러날지?"
 "농담이라도 그런 말 말아요. 약혼식이 며칠 안 남았는데."
 "참 자기 선물 사온 것 있는데 이따가 한 번 끼어 봐."
 "무얼?"
 "비취 반지를 사왔거든."
 "내 손가락 사이즈도 모르면서."
 "그러길래 떠나기 전에 약혼 반지부터 사놓고 가려고 했는데. 그랬더라면 손가락 사이즈를 알게 되어 문제가 없는건데. 그래도 대충 눈짐작으로 어림해서 샀으니까 끼어 보아요."
 "그보다 자기 시장하지 않아요? 어디 가서 식사부터 해요. 이른 저녁이지만 식사할만한 데가 있을 거야. 한우리 어때요? 거기 가면 보쌈김치도 있고. 시간 제한도 없으니."
 "대만에서도 김치가 날개돋친 것처럼 잘 팔려. 한국에 사스가 별로 없는 것은 마늘을 먹은 덕이라고 생각해서 중국 사람들까지 너도나도 김치를 사먹는 바람에 김치가 동이 나다시피 해."
 "여기서도 요사이 로스구이 할 때 부쩍 마늘을 많이 구워서들 먹어요."
 두 사람은 강남까지 와서 아무 때나 식사할 수 있도록 하루종일 열려있는 한우리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종업원이 내달아 오자 동진은 갈비 2인분을 주문한다. 동진은 비로소 민주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그녀는 보지 못하는 동안 더 여성스러워지고 얼굴도 한껏 피어오르고 있다. 사랑하는 남성을 기다리면서 성이 한껏 무르익은 얼굴이다. 동진은 서류 백을 열고 조그마한 포장을 꺼내어 민주 앞에 내놓는다. 민주는 찬찬히 포장을 풀고 조그만 갑 안에 든 비취 반지를 꺼내어서 끼어 본다.
 "잘 맞네. 어쩌면 그리 잘 알지?"
 "인제 약혼 반지만 함께 가서 사면 됐어."
 두 연인은 즐겁게 식사를 하고 나자 동진의 휴식을 위해 각자 자기 처소로 헤어져 갔다. 밤늦게 국립보건원에서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비행기에서 그의 뒤에 앉았던 여행객이 사스 환자로 추정되어 앞으로 열흘 간 자택 격리 환자 리스트에 동진이가 들어있다고 통고를 하는 것이다.
 동진은 자택 격리 조치를 받아 당분간 회사를 쉬어도 되는 것에 쾌재를 부른다. 기관지가 튼튼하고 폐도 건강한 그는 웬만해서 독 폐렴인 사스에 감염되지 않을 것으로 자신을 믿는다. 설사 감염되더라도 치명적으로 앓지 않고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이번 기회에 민주에 대한 열병을 확실히 앓고 나서 완치를 하고 싶다.
 동진은 회사에 e-메일로 출장을 다녀온 보고를 한 후 민주에게 사스 추정 환자로 자택 격리 조치를 받은 것을 전화로 알린다.
 "그럼 사스에 전염될 확률이 있다는 거예요?"
 "혹시나 해서 그렇겠지. 난 지금 컨디션이 아주 좋으니까, 안심하고 내 오피스텔에 오지 않을래요?"
 "물론 가보아야겠지. 그런데 괜찮을까?"
 "무어가? 우리 만나는 것 누가 감시할까 보아?"
 "그럼 기다려요. 자기 맛있는 것 요리해줄 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을 보아 가지고 갈께요."










 일러스트레이션 오수형(서양화02입)동문

사스가 아무리
공포스런 열병이라
해도 사랑의 열병만큼
무서울까.
나 자기에 대한 열병에
걸렸나 봐.

내가 자택 격리 휴가를
받으니까 너무 좋은 거 있지?
나 자기에 대한
사랑 열병의 잠복기가
너무 오래되었나 봐.

그에게 사스는
조금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열병처럼
극복해야 할 일이라면
잠복기라 하더라도
즐겁게 대처를 할
생각이다.

 동진은 타이베이의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서 바이어들을 만나면서도 때로 민주의 얼굴이 떠오른다. 민주와 약혼 날짜를 잡아 놓자마자 회사 일로 출장을 온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를 안고 싶어서 눈에 어리는 것이 아니다. 결혼이 결정되면 책을 보아도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워도 약혼자의 얼굴이 보이는 그런 기간이기는 하나, 그보다는 민주가 그를 진실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인지 새삼스럽게 회의가 일어난 것이다.
 민주는 처음에 트라이앵글 속의 한 여자였다. 민주는 그의 친구 한영이를 애초에 좋아하다가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관심을 표해온 것이다. 한영은 민주를 좋아하면서도 동진의 적극성과 대결하기보다는 슬그머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위로 결혼할 형과 누이가 있다는 것이다. 민주는 마침내 동진에게 마음을 열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 것이다. 허나 동진은 민주의 마음의 소재를 가늠할 수가 없다.
 동진은 그녀와 키스는 했지만 아직 밤에 안아보지 않고 결혼하는 것이 조금은 찜찜하다. 남녀는 무어니무어니 해도 성합이 잘 맞아야 할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주말에 여관이나 호텔에 데리고 가는 것은 그의 체질에 잘 맞지 않는다. 오피스텔에 혼자 살고 있어 밤에 그녀를 유혹하고자 하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동진은 부자연스러운 것을 싫어하기에 자연스런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차일피일 날짜가 넘어가고, 갑자기 출장을 나오게 된 것이다.
 영종도 공항에는 민주가 차를 끌고 나와서 그를 반갑게 마중을 한다. 동진은 이때껏 회사 일로 툭하면 해외 출장을 나갔지만 누가 마중 나온 적이 없다. 그는 비로소 그에게도 애인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동진은 민주에게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나타낸다. 그가 출영장까지 여행 백을 밀고 나왔을 때 민주가 그에게 달려들어 가볍게 포옹을 한다. 동진은 백에서 손을 놓고 그녀를 힘껏 껴안는다.
 "일주일이 어쩌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여기까지 왜 나왔어?"
 "나보다 자기가 대만에서 사스에 전념되어 올까 보아 겁이 났었는데 이렇게 건재해서 돌아오니 너무 좋다."
 "누가 알어? 사스는 잠복기가 열흘이나 된다는데. 며칠 후에 열이 나면서 발병의 증상이 드러날지?"
 "농담이라도 그런 말 말아요. 약혼식이 며칠 안 남았는데."
 "참 자기 선물 사온 것 있는데 이따가 한 번 끼어 봐."
 "무얼?"
 "비취 반지를 사왔거든."
 "내 손가락 사이즈도 모르면서."
 "그러길래 떠나기 전에 약혼 반지부터 사놓고 가려고 했는데. 그랬더라면 손가락 사이즈를 알게 되어 문제가 없는건데. 그래도 대충 눈짐작으로 어림해서 샀으니까 끼어 보아요."
 "그보다 자기 시장하지 않아요? 어디 가서 식사부터 해요. 이른 저녁이지만 식사할만한 데가 있을 거야. 한우리 어때요? 거기 가면 보쌈김치도 있고. 시간 제한도 없으니."
 "대만에서도 김치가 날개돋친 것처럼 잘 팔려. 한국에 사스가 별로 없는 것은 마늘을 먹은 덕이라고 생각해서 중국 사람들까지 너도나도 김치를 사먹는 바람에 김치가 동이 나다시피 해."
 "여기서도 요사이 로스구이 할 때 부쩍 마늘을 많이 구워서들 먹어요."
 두 사람은 강남까지 와서 아무 때나 식사할 수 있도록 하루종일 열려있는 한우리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종업원이 내달아 오자 동진은 갈비 2인분을 주문한다. 동진은 비로소 민주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그녀는 보지 못하는 동안 더 여성스러워지고 얼굴도 한껏 피어오르고 있다. 사랑하는 남성을 기다리면서 성이 한껏 무르익은 얼굴이다. 동진은 서류 백을 열고 조그마한 포장을 꺼내어 민주 앞에 내놓는다. 민주는 찬찬히 포장을 풀고 조그만 갑 안에 든 비취 반지를 꺼내어서 끼어 본다.
 "잘 맞네. 어쩌면 그리 잘 알지?"
 "인제 약혼 반지만 함께 가서 사면 됐어."
 두 연인은 즐겁게 식사를 하고 나자 동진의 휴식을 위해 각자 자기 처소로 헤어져 갔다. 밤늦게 국립보건원에서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비행기에서 그의 뒤에 앉았던 여행객이 사스 환자로 추정되어 앞으로 열흘 간 자택 격리 환자 리스트에 동진이가 들어있다고 통고를 하는 것이다.
 동진은 자택 격리 조치를 받아 당분간 회사를 쉬어도 되는 것에 쾌재를 부른다. 기관지가 튼튼하고 폐도 건강한 그는 웬만해서 독 폐렴인 사스에 감염되지 않을 것으로 자신을 믿는다. 설사 감염되더라도 치명적으로 앓지 않고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이번 기회에 민주에 대한 열병을 확실히 앓고 나서 완치를 하고 싶다.
 동진은 회사에 e-메일로 출장을 다녀온 보고를 한 후 민주에게 사스 추정 환자로 자택 격리 조치를 받은 것을 전화로 알린다.
 "그럼 사스에 전염될 확률이 있다는 거예요?"
 "혹시나 해서 그렇겠지. 난 지금 컨디션이 아주 좋으니까, 안심하고 내 오피스텔에 오지 않을래요?"
 "물론 가보아야겠지. 그런데 괜찮을까?"
 "무어가? 우리 만나는 것 누가 감시할까 보아?"
 "그럼 기다려요. 자기 맛있는 것 요리해줄 재료를 사기 위해 시장을 보아 가지고 갈께요."
 동진은 한동안 청소를 하지 않고 지낸 오피스텔 실내에 냄새가 배어 있을까 보아서 창문을 열고 청소기로 대청소를 한 후 방향제까지  그는 월차 바캉스보다 더 오붓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자 기대에 부풀어 있다.
 민주는 반찬거리 이외에도 과일과 꽃을 한아름 사서 들고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선다. 그녀는 공항에서 볼 때보다 더 섹시해 보이는 것이 그의 관능을 자극해 온다.
 "자기 이러다가 사스에 감염되었으면 어떻게 하지? 사스는 잠복기가 열흘이나 된다면서."
 "사스가 아무리 공포스런 열병이라 해도 사랑의 열병만큼 무서울까. 나 자기에 대한 열병에 걸렸나 보아. 내가 자택 격리 휴가를 받으니까 너무 좋은 거 있지? 나 자기에 대한 사랑 열병의 잠복기가 너무 오래되었나 보아."
 "하지만 혼전에 나를 어쩔 생각은 하지 말아요."
 동진은 그 말이 떨어지자 그녀가 실로 그를 사랑하는지, 한영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였는지 가느다란 실오라기 같은 의혹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진다. 혼전 성관계를 금기로 생각하는 민주가 한영과 육체 관계를 가졌을 리가 없는 것이다. 허나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서 궁금한 것을 기어코 입밖에 내어 묻는다.
 "자기 한영과도 사스 열병 같은 것을 앓았었어?"
 "그게 그렇게도 궁금해요? 한영과는 잠복기도 없었어. 무드가 생길까 하다가 말았으니까. 그리고 우리 집이 카톨릭이라 나는 금욕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난 사람이야."
 "과거는 아무래도 좋아. 단지 나는 지금 나와의 열정이 어떤 것인지 알고싶을 뿐이야."
 "사스는 어쩌다 한 번 걸릴까 말까 한 무서운 병이야.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허지만 우리가 열병을 앓고 나면 더 건강한 면역체가 생기리라고 생각해. 그래야 애도 낳고 건강한 결혼 생활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동진은 비로소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민주를 안는다. 사스가 아니었다면 가질 수 없을 진귀한 시간과 참된 사랑의 확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그는 언제까지나 행복 지수를 올리면서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어머니가 결혼도 하기 전에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거부해 첫 애인과 헤어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자 서로 사랑을 하게 되면 못 넘을 선도 넘을 수 있다고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허나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껴서인지 신혼여행을 갈 때까지 그런 욕망을 내비치지 않았다고 한다.
 동진은 부전자전인지 민주의 의사를 존중해 주기로 한 것을 다행하게 생각한다. 그에게 사스는 조금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열병처럼 극복해야 할 일이라면 잠복기라 하더라도 즐겁게 대처를 할 생각이다. 허나 사랑의 잠복기는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 어느 날 사랑의 열정이 복병처럼 터져 나올 것을 생각하면 민주가 다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