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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호 2006년 8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고려문화재연구원 金秉模이사장


   
                       화제의 동문

     
    고려문화재연구원 金秉模이사장
     
     30년 여정 담은 '고고학 여행' 펴내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닙니다. 여러 갈래의 씨족과 부족이 모여 형성된 민족이며, 열대지방 출신의 농경민족과 한대지방 출신의 기마민족, 그리고 해양민족까지 혼합돼 있습니다."
 '한국인의 원형'을 찾기 위해 한 평생을 고고학 연구에 바친 고려문화재연구원 金秉模(고고인류61-65 한양대 명예교수)이사장이 최근 발간한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에서 밝힌 내용이다. 찬란한 반만년 역사의 단군 자손으로 세계 유일의 자랑스러운 단일민족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사람에게는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린다.
 "우리가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고인돌과 난생신화의 세계적 분포를 통해 벼농사를 매개로 하는 남방계 문화를 읽을 수 있고 신라 금관이나 솟대, 김알지 설화에서 북방계 특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수만 개나 남아 있는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에 나타난 남아시아 지역의 매장풍속이며, 우리말 '쌀' '밥' '벼' '풀' '알' '가래'가 인도지역 토착어인 드라비다어에서 각각 '살' '비야' '밥' '풀' '아리' '카라이'로 불린다는 점은 농경문화와의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고는 풀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솟대는 알타이, 야쿠티아, 바이칼, 몽골지역 사람들의 神鳥思想이 그 뿌리라고 말한다. 또 신라 金씨의 조상인 김알지가 알타이 계통의 인물이라는 것은 그의 탄생설화가 얽혀 있는 곳이 鷄林으로, 알타이 영웅탄생 나무와 직결돼 있으며 신라 왕족들의 적석목관 무덤들은 북방 기마민족의 전통 매장풍속이라고 설명한다.
 "모교 의대 李弘揆교수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우리의 몸 속에는 북아시아 사람들의 유전인자뿐만 아니라 남아시아 사람들과의 혼혈 유전인자까지 섞여있다고 합니다. 적어도 우리와 유전인자, 문화인자까지도 공유하고 있는 민족들이 지구 곳곳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가 날로 좁아지고 경제적 협조를 해야 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순혈주의나 선민의식은 이제 버릴 때가 됐습니다."

"우리는 단일 민족이 아니다"

 '김병모의 고고학 여행'은 2003년부터 7개월간 월간조선에 연재된 내용을 정리해 엮은 것으로, 한국 고대사에 감춰진 의문들과 한민족 구성 과정을 파헤친 30년 여정의 장편 다큐멘터리다. 단일민족에 대한 내용 외에도 유라시아 대륙의 오지에서 발견한 토착 민속품들이 한국 고대사의 주요 인물들이 썼던 금관과 허리띠 디자인의 비밀을 풀어주는 열쇠라고 밝히고 있으며, 카자흐 유목민과의 대화에서 한국어의 '사랑'이라는 말의 뜻을 알아내는 등 흥미진진한 탐사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金동문은 "학문적인 내용보다는 오지를 탐방하며 있었던 일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정리했기 때문에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썼다"고 소개했다. 자료정리를 도운 고려문화재연구원의 한 직원은 "이사장님께서 직접 원고를 읽고 녹음해 들으면서 어려운 말이나 어색한 문장을 수정하는 과정을 수도 없이 거치는 등 그동안 펴낸 그 어느 책보다 심혈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金동문이 유적지 답사를 위해 해외를 드나들며 쌓인 항공마일리지가 90만 마일 정도. 답사를 다녀 올 때마다 기록한 작은 메모수첩은 4백권이 넘는다.
 30년 동안 유적지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金동문은 "우리의 원형이 많이 남아 있는 인도 내륙지방, 타클라마칸 사막, 히말라야산맥 마을, 튜바공화국, 툰드라지대"를 소개했다. "이 지역은 우리와 관련된 언어학, 풍속, 샤머니즘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광맥들입니다. 원시공동체의 모습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죠."
  이런 유적지를 다니며 얻는 소득은 학문적인 것 외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현실로 눈앞에 나타났을 때 느끼는 벅찬 감동, 원주민들의 독특한 음식, 전혀 다른 배경에서 살아온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신선한 충격 등.
 "때로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 재료에 듣도 보도 못한 향신료들이 미각을 자극할 때 엑스타시 같은 느낌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같은 재료라도 민족에 따라 다른 조리방법을 보면서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릅니다."

재수시절 인문학자 꿈 키워

 金동문은 모교 고고인류학과 1회로 입학했다. 모교 토목공학과에 낙방하고 재수를 한 게 오히려 기회가 됐다. 재수를 하면서 흥사단이나 여러 사회단체에서 주최하는 강연회를 많이 다녔다. 그곳에서 저명인사들의 강연을 들으며 사회를 보는 안목을 키웠다.
 "安浩相박사님의 강연을 들을 때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용솟음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회를 이끄는 사람들은 문과 출신이란 생각이 들었고, 외국어에 자신이 있어 토목공학과에서 인문계열인 고고인류학과로 진로를 수정했습니다."
 당시 고고인류학과 입학생은 모두 10명. 그 중 7명이 대학교수가 돼 우리 나라 고고학계의 기틀을 마련했다.
 지난 5월 한양대에서 정년을 맞은 金동문은 요즘 중국을 왕래하며 아시아 북방민족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중국 운남대학과 함께 중국 북방지역에 거주했던 토착민들의 삶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 연구는 제 목표치에 30%도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10년간은 자유롭게 유적답사 여행을 다니며 한국인의 원형을 계속해서 밝혀내야죠. 가능하다면 '극동아시아의 2~3천년 역사'를 써보고도 싶고요."
 끝으로 후학들에게 "사회에 나오기 전 배낭을 둘러메고 세계를 한번 돌아 볼 것"을 주문했다.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반드시 소르 헤이에르달의 '콘티키'와 이시다 유스케의 '가 보기 전에 죽지 마라'를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모험심과 지적 열망이 가득했던 두 사람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떠난다면 정말 많은 것을 얻고 돌아올 것입니다." 〈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