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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호 2004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즐기는 스포츠문화 자리잡아야

우리 나라에는 프로 스포츠가 참 많다. 프로 축구, 프로 야구, 남녀 프로 농구, 남녀 프로 골프, 그리고 씨름까지… 그런데 장사가 참 안된다.  프로 야구의 열기가 시들해진 것은 물론이고, 2002년 월드컵 이후 반짝했던 프로 축구 열풍도 사라진 지 오래다.
프로 농구도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 하위 4개 구단은 정말 파리만 날리고 있다. 여자 프로 농구는 순위에 관계없이 손님이 없다. 보기 안쓰러울 정도다.  왜 그럴까? 일단 관중의 「눈」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텔레비전 리모콘만 누르면 세계 최정상의 경기를 마음껏 볼 수 있다. 잉글랜드와 스페인 프로 축구의 골 장면은 정말 통쾌하기 짝이 없다. 미국 프로 야구와 프로 농구는 묘기에 가까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과거 독재 정권은 「정치적 이유」에서 프로 종목들을 만들었다. 떠밀리다시피 프로 구단을 맡았던 기업들은 이제 회사 홍보를 위해 구단을 운영한다. 관중보다는 언론 매체를 통한 홍보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기사 한 줄이라도 나와야 기업 소유주에게 얼굴을 들 수 있다. 재미있는 경기보다는 성적이 중요하고, 그러다 보니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런저런 행각들이 벌어진다.  또 있다. 세계에서 미국을 제외하면 3개 이상의 프로 종목이 있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인구가 5천만이 되지 않는, 스포츠 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우리 나라에 너무 많은 프로 종목이 있다는 지적이다.  시장 논리와 맞지 않는 이러한 현상은 우리 프로 스포츠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생겼다는 태생적 한계와 기업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프로 스포츠의 그늘도 심각하다. 프로 선수들은 이른바 「학교 체육」에서 배출된 체육 엘리트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야 한다. 주전은 극소수에 불과하니까. 운동을 그만두면 할 일이 없다고 한다. 학교 코치 자리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게 선수들의 말이다.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한 선수들의 사정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할 줄 아는 게 운동밖에 없는데, 막노동 말고 뭘 할 게 있냐고 하소연한다. 「엘리트 학교 체육」이 빚어낸 현실이다. 「머리가 없는 선수」를 양산한 엘리트 체육은 독재 정권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요즘 유도를 배우고 있다. 꼭 한번 배우고 싶었는데, 얼마 전 용기를 내서 유도장을 찾았다. 아직 메쳐지는 게 겁나긴 하지만 참 흥미롭다. 낙법도 재미있고, 업어치기, 빗당겨치기, 허벅다리 후리기 등 기술을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운동량이 많아 건강도 좋아졌다. 이른 아침이나 내가 맡은 종목 경기가 없는 날 저녁 퇴근 뒤에 유도장을 찾는다.  유도를 배운다니까 부장이 마침 공석인 유도 담당 기자 자리를 맡겼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중계 방송이나 현장에서 경기를 보면, 전에 보이지 않던 유도의 각종 기술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전에 없던 일이다. 그냥 관심 있던 차원에서, 유도 팬으로 변했다.  한국 프로 바둑이 왜 강한가? 즐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저변이 넓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삼촌과 조카가 자웅을 겨룬다. 즐겁다. 온라인 바둑판엔 숨은 고수도 많다. 그러다 보니 세계 최강의 프로 바둑 기사들이 즐비하게 배출되고, 그들이 겨루는 대국은 화제요 관심거리다.  프로 스포츠는 스포츠의 꽃이다. 그 토대는 아마추어 스포츠가 제공해야 한다. 스포츠를 직접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고, 그 가운데 뛰어난 선수가 배출돼야 한다.  마치 바둑처럼. 청소년들은 시험 점수나 진학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스포츠를 즐겨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청소년들이 체계적이고 제대로 된 스포츠 교육을 즐겁게 받을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또 기존에 배출된 학교 체육 엘리트들이 지역 사회로 파고들어 자신들의 전문 지식을 전하도록 해야 한다. 너무도 아까운 자원들이 사장되고 있다.  체계적으로 배운 운동은 건전한 여가 활용을 가능하게 하고 건강도 선물한다. 축구나 야구 같은 프로 종목이 있는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관중이 되고, 팬으로 변한다. 팬이 많으면 좋은 프로 선수도 많이 나온다. 지역마다 유소년 클럽과 프로 구단, 그리고 열성 팬들을 보유한 유럽 축구 시스템이 좋은 사례다.  자녀에게 과외만 시키지 말고 운동 한 가지를 배우게 하는 것은 어떨까. 휴일에 함께 프로 경기장을 찾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족이 함께 즐길 스포츠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프로 스포츠는 충분히 존재 가치가 있다. 난 유도를 배운다. 힘이 닿는 한 계속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