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호 2004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속도의 덫」에 걸린 기자들의 슬픔
상황1.
지난해 4월 중순 어느 날 저녁, 서울 상도동 집. 『다음주부터 정치부에서 일하게 됐다』는 인사 발령 소식을 들은 아내가 이런 말을 건넸다. 『유명한 사람들 많이 만나겠네』 「농반진반」의 얘기였고, 거기엔 약간의 부러움도 섞여 있는 듯했다. 나는 「비언론인」인 아내가 생각하는 정치부의 모습이라고 생각해 그냥 웃어 넘겼다.
그후 아내의 말처럼 「유명한 사람」인 정치인과 정부 각료 등을 많이 만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결코 부러워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정치부 생활은 육체적으로 보면 「넥타이 맨 노가다」였으며, 정신적으로 보면 「적성에 맞지 않는 링」에 오른 느낌일 뿐이었다. 매일 낮, 쓰고 싶지 않는 기사를 쓰면서 마음이 아팠고, 밤엔 땀에 절은 와이셔츠를 벗으며 아내에 미안함을 느꼈다. 11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 아내의 말은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것이 추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돼, 고생 꽤나 하겠네』 상황2. 지난해 4월말 저녁, 민주당사 인근의 한 중식당. 현재 열린우리당 소속인 당시 「신주류」 인사들이 「정치개혁과 지역구도 타파」를 명분으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 당시엔 그 선언이 나를 얼마나 피곤하게 할 줄 알지 못했다.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신·구주류 양측은 하루가 멀다하고 모임과 회의를 하면서 세 결집과 공방을 계속했다. 나중에는 지방을 순회하며 세 대결까지 벌였다. 그렇게 4개월여. 결국 9월에야 신주류가 탈당하면서 민주당내 신·구주류간 공방은 끝이 났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서로 「남남」이 됐다. 4개월은 한쪽의 입장에선 「창당을 위한 산고」가, 다른 쪽에서 보면 「분열과 배신」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힘들었겠지만, 기자들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한 정치부 선배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이렇게 자조했다. 『그래도 「정치개혁과 지역구도 타파」를 목표로 하는 당을 만드는데 일조했잖아』 상황3. 지난 1월말 어느 날 저녁. 민주당 분당 과정을 함께 취재했던 정치부 후배 H와 맥주를 마셨다. 분당 이후 그 녀석과 나의 행로는 갈렸다. 그는 열린우리당으로 옮겨갔고, 나는 청와대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평소 전화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녀석인데, 그 즈음엔 별로 말이 없었다. 그래서 「신상에 무슨 고민이 있나 보구나」 생각만 할뿐, 바빠서 챙길 여력이 없었다. H는 그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돌아가고, 그것을 따라가야 하는 직업이기에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가 없어 기자직을 그만두려 한다』 또 『슬로하게(Slow, 천천히) 살고 싶다』고도 했다. 나는 그 녀석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글을 쓰는 지금, 휴대폰은 쉴 틈 없이 울린다. 『…와 관련한 청와대 반응을 따라』 『…라는 설이 있던데 확인해봐라』 회사의 주문이었다. 상황4. 2월말 어느 날 저녁, 편집국 정치부 사무실. 평소처럼 출입처의 일과가 끝나고 이 신문 저 신문을 살펴보며 혹시 빠진 기사는 없는지 살펴본다. 신문지면 이곳저곳에서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함께 「정치개혁」이라는 낱말이 쏟아져 달려온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다. 정치적 당파성을 떠나, 「잘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잠깐 떠올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 상상은 잠시. 피곤한 일상에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그 사이 「느림」을 찾아 떠난 H의 얼굴이 보이기도 한다. 「속도의 덫」에 걸린 기자들의 슬픈 일상,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있었다. 그런데 한켠에선 새로 입사한 수습 기자들이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 『화재 사고는 이렇게 취재하고, 이게 포인트야』 『스트레이트는 이렇게 쓰고, 박스는 이렇게…』 그들의 눈은 빛나고, 손은 재빠르다. 기자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새롭게 「속도의 덫」으로 빨려오는 그들. 그들이 있기에 내일 또다시 신문이 나올 것이고, 그래서 정치개혁의 희망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박히는 것일까.
그후 아내의 말처럼 「유명한 사람」인 정치인과 정부 각료 등을 많이 만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결코 부러워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정치부 생활은 육체적으로 보면 「넥타이 맨 노가다」였으며, 정신적으로 보면 「적성에 맞지 않는 링」에 오른 느낌일 뿐이었다. 매일 낮, 쓰고 싶지 않는 기사를 쓰면서 마음이 아팠고, 밤엔 땀에 절은 와이셔츠를 벗으며 아내에 미안함을 느꼈다. 11개월이 훌쩍 지난 지금, 아내의 말은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것이 추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돼, 고생 꽤나 하겠네』 상황2. 지난해 4월말 저녁, 민주당사 인근의 한 중식당. 현재 열린우리당 소속인 당시 「신주류」 인사들이 「정치개혁과 지역구도 타파」를 명분으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 당시엔 그 선언이 나를 얼마나 피곤하게 할 줄 알지 못했다.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신·구주류 양측은 하루가 멀다하고 모임과 회의를 하면서 세 결집과 공방을 계속했다. 나중에는 지방을 순회하며 세 대결까지 벌였다. 그렇게 4개월여. 결국 9월에야 신주류가 탈당하면서 민주당내 신·구주류간 공방은 끝이 났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서로 「남남」이 됐다. 4개월은 한쪽의 입장에선 「창당을 위한 산고」가, 다른 쪽에서 보면 「분열과 배신」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도 힘들었겠지만, 기자들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한 정치부 선배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이렇게 자조했다. 『그래도 「정치개혁과 지역구도 타파」를 목표로 하는 당을 만드는데 일조했잖아』 상황3. 지난 1월말 어느 날 저녁. 민주당 분당 과정을 함께 취재했던 정치부 후배 H와 맥주를 마셨다. 분당 이후 그 녀석과 나의 행로는 갈렸다. 그는 열린우리당으로 옮겨갔고, 나는 청와대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평소 전화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녀석인데, 그 즈음엔 별로 말이 없었다. 그래서 「신상에 무슨 고민이 있나 보구나」 생각만 할뿐, 바빠서 챙길 여력이 없었다. H는 그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돌아가고, 그것을 따라가야 하는 직업이기에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가 없어 기자직을 그만두려 한다』 또 『슬로하게(Slow, 천천히) 살고 싶다』고도 했다. 나는 그 녀석의 말에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글을 쓰는 지금, 휴대폰은 쉴 틈 없이 울린다. 『…와 관련한 청와대 반응을 따라』 『…라는 설이 있던데 확인해봐라』 회사의 주문이었다. 상황4. 2월말 어느 날 저녁, 편집국 정치부 사무실. 평소처럼 출입처의 일과가 끝나고 이 신문 저 신문을 살펴보며 혹시 빠진 기사는 없는지 살펴본다. 신문지면 이곳저곳에서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함께 「정치개혁」이라는 낱말이 쏟아져 달려온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다. 정치적 당파성을 떠나, 「잘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잠깐 떠올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 상상은 잠시. 피곤한 일상에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그 사이 「느림」을 찾아 떠난 H의 얼굴이 보이기도 한다. 「속도의 덫」에 걸린 기자들의 슬픈 일상,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있었다. 그런데 한켠에선 새로 입사한 수습 기자들이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 『화재 사고는 이렇게 취재하고, 이게 포인트야』 『스트레이트는 이렇게 쓰고, 박스는 이렇게…』 그들의 눈은 빛나고, 손은 재빠르다. 기자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새롭게 「속도의 덫」으로 빨려오는 그들. 그들이 있기에 내일 또다시 신문이 나올 것이고, 그래서 정치개혁의 희망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박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