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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호 2006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우리 사회 전문가들의 자정능력은


       





          林和燮(물리90-94)
        연합뉴스 사회부 기자

우리 사회 전문가들의 자정능력은

작년 6월부터 1년간 모교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겪었던 가장 큰 사건은 수의대에서 벌어졌던 논문 날조 사건이었다. 아직 형사재판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 학문적으로는 이미 결론이 난 상태다. 전 세계 과학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었다는 것이다.
 黃禹錫팀이 2004년과 2005년 발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인간 배아복제 줄기세포 관련 논문 두 편의 데이터는 날조된 것이었고 인간 배아복제 줄기세포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 희대의 사기극에서 감독. 극본. 주연을 겸했던 인물은 당시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 재직하던 黃禹錫동문이었다.
 黃 前교수가 '민족적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었던 작년 8월 연건동 의대 캠퍼스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 때 필자가 만났던 의대 교수 중 한 사람은 "黃교수가 남들이 성공하지 못했던 일을 했으니 대단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수상쩍은 점이 많다"며 이런 얘기를 했다.
 "黃교수가 곧바로 환자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이 얘기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척추 부러뜨린 개한테 줄기세포를 주입했더니 허리가 나아서 걷더라'는 보도도 나왔는데, 그거 알고 봤더니 완전히 부러지지 않았던 개 척추가 저절로 붙어서 회복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이없는 얘기죠. 그 때 실험했던 분도 여기(의대 캠퍼스에) 있어요."
 예전부터 黃禹錫팀의 연구에 대해 '아무래도 수상하다. 뻥이 많은 것 같다'는 추측성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공신력 있는 취재원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처음 들었기 때문에 기자로서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나를 실망시켰던 것은 이 교수의 다음 말이었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매국노로 몰릴 것 같아서 공개적으로 얘기하지는 못하겠어요."
 이 얘기를 들은 지 3개월만에 논문조작 의혹이 터졌다. 모교는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학문적 진실을 규명했고, 이를 이어받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黃禹錫팀의 각종 非行을 파헤쳤다. 검찰은 날조 논문을 근거로 수십억원의 연구비를 타 낸 黃 前교수와 동료 수의대 교수 2명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으며 법적인 판단은 사법부의 몫으로 넘어갔다.
 논문조작 사건을 취재하면서 가장 큰 실망을 느낀 것은 '줄기세포가 없다'는 사실이나 日新又日新 새로운 거짓말을 내놓은 黃禹錫팀의 태도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사태 초기에 전문가 집단이 保身에 급급해 입을 다물었다는 점이었다.
 데이터 조작 의혹을 제기한 MBC PD수첩이 그릇된 '국익'의 이름으로 엄청난 여론의 역풍을 맞자 생명과학계와 의학계의 전문가들은 나서기를 꺼렸다. 사기극이라는 사실을 이미 눈치챘던 이들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이 나라의 과학기술계를 대표한다는 단체는 '소모적 논쟁'이라며 진실의 목소리를 외면하다가 서울대학교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흔해빠진 '유감 표명' 성명서 한 장 없었다. 대중을 誤導하는 각종 궤변으로 黃 前교수의 '연구 재개' 시도를 측면 지원하려는 시도는 아직까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구성원들 대부분이 깨끗하다고 해서 전문가 집단의 자정능력이 저절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구성원의 잘못에 대해 스스로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처하지 않는 집단의 자율성은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외부의 간섭과 개입이 정당화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동료의 非行에 침묵하는 전문가는 자기 집단의 자율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한동안 신장되던 전문가 집단의 자율성이 더 이상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전문가 집단 내에서 막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대인들이 과연 이런 상황에 책임이 없는지 스스로 물어야 할 때다.
 모교 대학본부가 신속한 진실 규명으로 대처했던 점, 그리고 논문 날조 사건의 진실을 용기 있게 폭로했던 언론인 역시 모교 동문이었다는 점을 들어 "그래도 서울대인의 자정능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