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호 2004년 3월] 기고 감상평
동창회보를 “두 번 죽이는 일“
동창회보는 재미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연애편지 읽듯 주의 깊게 읽어 볼 것을 권유
처음에는 쓴 소리를 할 요량으로 펜을 들었다. 헌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동창회보에 대해 쓴 소리를 할 만한 면도 서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칭찬을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동창회보가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흥겹고 아름다운 동문들의 소식을 앞으로도 변함 없이 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졸업하고도 몇 년이 지난, 십 수 년 전 어느 날 동창회보를 처음 받아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아, 나도 이제 동창회의 일원이구나!」 마치 나의 소속을 확인시켜 주는 통지서라도 받은 양 가벼운 흥분마저 느꼈고, 연애편지라도 읽는 것처럼 한 문장도 빠트리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도 기억난다. 그러나 그 때 이후 동창회보를 매번 받아 보면서도 주의 깊게 읽은 적이 과연 몇 번이나 될까? 워낙 까마득히 높은 선배 동문들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데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나를 동창회보와 멀어지게 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해 본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실로 오랜만에 동창회보를 처음 받았을 때만큼이나 애정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32쪽의 지면마다 다양하고 알찬 내용들로 꾸미기 위해 노력하고 애쓴 흔적들이 역력하다. 이런 동창회보를 별로 볼 게 없다는 「편견」으로 대충 건성으로 눈길 한번 주고는 날짜 지난 신문더미와 함께 쌓아둔다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동창회보를 두 번 죽이는 일」일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동창회보는 재미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자. 지난호 동창회보를 대략 살펴보면, 느티나무 광장, 동문칼럼, 관악춘추, 동문기자의 취재수첩 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던져주고 있다. 총동창회 동정을 비롯해서 각 지부 동창회, 단과대학별 동창회, 모교 소식 등을 하나 하나 꼼꼼히 챙겨서 알려주는가 하면, 화제의 동문을 소개하고, Noblesse Oblige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동문을 알려서 귀감이 되도록 하는 노력도 빼놓지 않고 있다. 아들·딸에 사위까지 동문으로 꽉 채운 서울대 가족 소개는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고, 나이 많으신 선배 동문이 말하는 「나의 건강법」과 「건강을 지킵시다」도 눈길을 끈다.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내용들이다. 심지어 합격자 명단처럼 디자인 감각 없이 이름만 나열해 놓은 동창회비 납부명단도 정겹게 보이고, 동문 동정란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린 후배 동문들의 결혼식 안내마저도 앙증맞기만 하다. 서울대학교총동창회는 1946년 개교이래 단과대학별로 활동해 오던 동창회가 1968년에 연립하여 총동창회를 구성했고, 1975년 종합화 계획에 따른 관악캠퍼스 이전 이후 1976년부터 명실상부한 총동창회 체제를 갖추게 됐다고 한다. 같은 해(76년)에 창간된 동창회보는 지난 28년간 총동창회의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가교」 역할을 해 왔다. 동창회보는 일상의 바쁨에 파묻혀 지내는 나를 잠시 수십 년 전 추억 속의 그 때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내는 타임머신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요란스럽거나 지나치게 진지하고 거창할 필요도 없다. 오래 함께 살아온 배우자에게서 새삼스런 매력을 느끼진 못해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소중하듯이 변함 없이 그냥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춤추는 동창회보」가 어련히 알아서 동문들의 향기 가득한 소식을 잘 전해주련마는 굳이 한가지만 더 바란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동문이나 저명인사, 지도층에 있는 동문들 위주에서 탈피하여 산업현장과 연예계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동문들의 폭 넓은 소개를 통해서 나이에 상관없이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동창회보가 됐으면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동창회보가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흥겹고 아름다운 동문들의 소식을 앞으로도 변함 없이 전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 것이 더 나을 듯하다.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졸업하고도 몇 년이 지난, 십 수 년 전 어느 날 동창회보를 처음 받아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아, 나도 이제 동창회의 일원이구나!」 마치 나의 소속을 확인시켜 주는 통지서라도 받은 양 가벼운 흥분마저 느꼈고, 연애편지라도 읽는 것처럼 한 문장도 빠트리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도 기억난다. 그러나 그 때 이후 동창회보를 매번 받아 보면서도 주의 깊게 읽은 적이 과연 몇 번이나 될까? 워낙 까마득히 높은 선배 동문들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데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나를 동창회보와 멀어지게 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해 본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실로 오랜만에 동창회보를 처음 받았을 때만큼이나 애정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32쪽의 지면마다 다양하고 알찬 내용들로 꾸미기 위해 노력하고 애쓴 흔적들이 역력하다. 이런 동창회보를 별로 볼 게 없다는 「편견」으로 대충 건성으로 눈길 한번 주고는 날짜 지난 신문더미와 함께 쌓아둔다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동창회보를 두 번 죽이는 일」일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동창회보는 재미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자. 지난호 동창회보를 대략 살펴보면, 느티나무 광장, 동문칼럼, 관악춘추, 동문기자의 취재수첩 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던져주고 있다. 총동창회 동정을 비롯해서 각 지부 동창회, 단과대학별 동창회, 모교 소식 등을 하나 하나 꼼꼼히 챙겨서 알려주는가 하면, 화제의 동문을 소개하고, Noblesse Oblige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동문을 알려서 귀감이 되도록 하는 노력도 빼놓지 않고 있다. 아들·딸에 사위까지 동문으로 꽉 채운 서울대 가족 소개는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고, 나이 많으신 선배 동문이 말하는 「나의 건강법」과 「건강을 지킵시다」도 눈길을 끈다.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내용들이다. 심지어 합격자 명단처럼 디자인 감각 없이 이름만 나열해 놓은 동창회비 납부명단도 정겹게 보이고, 동문 동정란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린 후배 동문들의 결혼식 안내마저도 앙증맞기만 하다. 서울대학교총동창회는 1946년 개교이래 단과대학별로 활동해 오던 동창회가 1968년에 연립하여 총동창회를 구성했고, 1975년 종합화 계획에 따른 관악캠퍼스 이전 이후 1976년부터 명실상부한 총동창회 체제를 갖추게 됐다고 한다. 같은 해(76년)에 창간된 동창회보는 지난 28년간 총동창회의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가교」 역할을 해 왔다. 동창회보는 일상의 바쁨에 파묻혀 지내는 나를 잠시 수십 년 전 추억 속의 그 때로 시간여행을 떠나보내는 타임머신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요란스럽거나 지나치게 진지하고 거창할 필요도 없다. 오래 함께 살아온 배우자에게서 새삼스런 매력을 느끼진 못해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소중하듯이 변함 없이 그냥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춤추는 동창회보」가 어련히 알아서 동문들의 향기 가득한 소식을 잘 전해주련마는 굳이 한가지만 더 바란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동문이나 저명인사, 지도층에 있는 동문들 위주에서 탈피하여 산업현장과 연예계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젊은 동문들의 폭 넓은 소개를 통해서 나이에 상관없이 친근감 있게 다가가는 동창회보가 됐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