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340호 2006년 7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모교 鄭雲燦총장 퇴임인터뷰


 
   
    지성의 권위 지키고 빛냈다!

   鄭雲燦총장, 직선제로는 처음 임기 채워
    이달 19일 모교서 이임
 

  소신 있게 모교를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은 鄭雲燦(경제  66-70)총장이 7월 19일자로 직선제 총장 가운데 최초로 4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2002년 취임사에서 지성의 권위 회복을 공약한 바 있는 鄭총장이 지난 6월 26일 관악캠퍼스 총장실에서 퇴임을 앞두고 본보와 인터뷰를 했다. 이 자리에서 지역균형 선발제도, 해외 명문대와 학술교류협정 체결, 기초교육 강화, 대학원 지원 확대 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지역균형 선발제도. 기초교육 강화 결실

  


   모교 鄭雲燦총장 퇴임인터뷰

   대 담 : 본보 李相起논설위원
             (한겨레신문 사람팀장)

 
2002년 취임사에서 지성의 권위 회복을 공약한 바 있는 鄭총장이 지난 6월 26일 관악캠퍼스 총장실에서 퇴임을 앞두고 본보와 인터뷰를 했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했으면"

- 임기를 마친 첫 직선제 총장이 되실 텐데,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특히 역대 총장 가운데 가장 소신 있게 서울대를 이끌어온 총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계신데.

"사실 전임 총장님들은 총리 임명, 가정사 등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4년간 일할 기회가 없었죠. 이 때문에 임기를 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재임 중 수많은 내환과 외우에도 교수들이 결속해서 많이 밀어주셨기에 쉽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8월 취임식            종합교육연구단지 기공       2004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시상


- 재임기간 동안 1백여 개 해외대학과 학술교류협정 체결, 발전기금 1천6백억원 모금, 대학 평의원회의 위상 강화 등 성과를 이루셨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내세우고 싶은 업적을 세 가지 꼽아주십시오.

"쑥스럽지만 자랑스러운게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지역균형 선발제도를 통해 학생의 구성을 다양화했으며, 예일대. 프린스턴대 등과 학술교류협정을 맺음으로써 학생활동의 장을 넓혔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기초교육 강화입니다. 국내 대학들이 지식 전수보다 지식 창출에 중점을 둬야 하고, 그 지식 창출을 위해 응용중심으로 좁게 하는 공부가 아닌 기초중심으로 넓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폭넓고 깊이 있는 소양과 창의력을 갖춘 지성인을 양성하기 위해 글쓰기, 말하기 교육을 강화했으며, 거기에 국어 및 영어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연계시켰습니다.
 세 번째는 대학원 지원 확대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이 정상화되지 않고서는 대학이 발전할 수가 없어요. 1천7백명의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등록금 면제와 월 60~70만원의 생활비를 보조해 주는 등 지원을 대폭 강화해 대학원 진학률을 높였습니다."

黃禹錫사태 자성 계기…자정능력 확인
한잔에 10억 폭탄주 마시며 예산 확보

-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도 적지 않을 텐데,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학생들이 재학하는 4년 동안 전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완전한 학부중심대학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정착시키지 못해 아쉬워요.
 다음으로 세분화된 학과를 통합하는 문제였는데, 이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요.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 고고미술사학과를 하나로 묶고, 정치학과와 외교학과를 정치학부로 합치려고 했으나 이뤄내지 못해 리더십의 한계를 체감했습니다.
 또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학생 정원을 15~20% 정도 줄였습니다만, 사실은 더 많이 조정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그동안 '서울대 폐지론' '통합논술고사 논란' '미대 金玟秀교수 복직 파동' '수의대 黃禹錫교수 사건' 등 어려운 일들이 많았는데.

"서울대 폐지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건 정말 외압이자 외환이었죠. 고교 평준화를 대학 평준화로 연장시키겠다는 거죠. 1년에 국립대에 입학하고 싶은 학생 15만명 정도를 한꺼번에 뽑아서 각 대학에 배정하겠다는 심산이었는데, 이를 막느라고 굉장히 애를 썼습니다. 또 통합형 논술고사는 학생 선발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독서를 통해 종합적 사고를 키우면 우리는 그것을 측정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반발이 많아서 힘들었습니다.
 미대 金玟秀교수 사건에서 金교수는 억울하게 재임용을 못 받았다고 주장하고, 미술대학에서는 金교수의 복직을 꺼려하고, 저는 사실 미술대학 교수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 제가 총장 취임 전 金교수 복직 서명 운동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적이 없습니다. 이름을 도용 당한 것 같습니다.
 黃禹錫교수 사건은 정말로 잘 나가다가 추락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러나 정직하고 성실하지 않으면 과학도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서울대로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아요. 우선 서울대가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잘못이 있다면 세상에 고백할 의지가 있음을 명확히 밝혔으며, 또 조사위의 능력을 인정받아 Nature誌에서 전체 조사과정을 보내달라고 해 논문 제출을 준비하는 등 자정능력을 보여준 예라고 생각합니다."

- 입시와 관련해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

"사실 서울대 전체 교수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성경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있는데 교수들이 매사를 신중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신입생 선발을 위한 면접. 구술. 논술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 온 힘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개념에 대해 간단한 설명만 듣고도 이를 응용할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출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 대학 총장은 굳이 직선제로 뽑아야 하나요.

 "가장 이상적인 것은 미국식 탐색위원회(Search Committee)에서 뽑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10명 또는 50명의 탐색위원들이 6개월 내지 1년 걸려서 조사해서 뽑는 게 이상적이죠.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안 됩니다. 미국과 달리 정이 통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간선제로 하면 영향력 있는 소수 사람에 의해 좌우될 수가 있어요."

  - 최근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진보나 개혁' 대신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라는 표현으로 쓰셨던데.

  "제가 취임할 때 기자들이 '개혁 총장이 나와서 
  서울대 가 앞으로 잘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어요. 
  글쎄,  개혁을 어떤 의미로 해석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개혁이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울대를 세상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학교로
 만드는 과정에서 정상이 아닌 것은 바꾸려고 노력했습 
 니다. 학생이 너무 많아서 좀 줄이자고 했고, 교수들이
 학교에 자주 안 나오기에 자주 나오도록 했고, 교수들의
 성과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기에 성과급을 받도록 했
 습니다. 이런 게 바로 개혁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 총장님 스스로에 대해 어떤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신문에 글 쓰는 교수들에 대해 '공부나 하지 잡문이나 쓴다'고 말하자 趙 淳선생님께서 '아무리 훌륭한 논문도 적당히 쓴 것은 잡문이고, 신문이나 잡지에 쓰는 것도 열심히 쓰면 잡문이 아니다'라는 조언을 해주셔서 89년부터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90년 초 3당 통합에 대해 상당히 비판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송곳'이라고 알려졌어요. 그런데 저는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양심에 따라 객관적 사고를 하려고 노력한다고 자부합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평교수 시절에는 제 언행에 대해 혼자 책임을 지면 되니까 상당히 자유롭게 얘기를 했었습니다만 총장이 되고 나서는 저 혼자만이 아니라 서울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고, 개인적으로 행동한 것인데 사람들은 서울대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로 여길 것 같아 조심했습니다.
 서울대는 커다란 항공모함과 같아서 방향을 이리저리 금방 고칠 수도 없고, 또 방향을 고치려고 하면 커다란 부작용이 나타나기에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는 게 아주 어려운 기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동안 공직이나 정치권의 제의도 여러 번 받으셨죠.

"金大中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은행 총재, 경제수석비서관, 금융감독위원장, 경제부총리 등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준비도 안 돼 있었고 사실 겁도 나서 고사했습니다. 盧武鉉 정부로부터는 정식으로 제의 받은 적은 없어요."

- 술은 어느 정도 하시나요.

"총장이 되기 전에는 술을 안 마셨어요. 그런데 총장 취임 후 2002년 8월에 당시 산업자원부 辛國煥장관을 유전공학연구소와 반도체연구소 관계자와 함께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70억원 예산을 요청하면서 폭탄주를 마신 적이 있어요. 그 날 일곱 잔을 마셨죠."

- 한 잔에 10억짜리 폭탄주를 드신 거네요.

 
"그렇죠, 그런데 그 돈은 발전기금이 아닙니다. 그 해 예산으로 끝나는 겁니다. 제가 발전기금으로 받은 1천5백79억원은 이것저것 다 빼고 계산한 겁니다."

- 담배는 피우시나요.

"고교시절에는 입주가정교사를 했기 때문에 담배를 배울 기회가 없었어요. 그 이후 계속 안 배웠는데, 최근에 술을 많이 마시고 기분이 고조됐을 때 피운 적이 있어요. 1년에 다섯 개피도 안 피우는 것 같아요."

- 평소 주변에 아버지가 4명이라고 이야기하시던데.

"우선 저를 낳아주신 아버님과 저를 길러주신 양부(숙부), 그리고 저에게 경제적, 정신적 도움을 주신 스코필드 박사님, 마지막으로 저를 가르쳐주신 趙 淳선생님이십니다.
 아버님은 제가 아홉 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그리고 둘째 아버지께서 아들이 없어서 제가 어려서부터 양자로 가게 돼 있었죠.
 스코필드 박사는 1960년부터 1970년 돌아가실 때까지 10년간 제게 성경을 가르쳐주시고, 중. 고등학교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커서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정치는 그리 깨끗하지 못한 것이니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하셨어요. 또 사회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몸을 바쳐서 희생해야 된다고 강조하셨어요. 오늘날의 제가 있도록 가장 영향을 많이 주신 분입니다.
 그리고 趙 淳선생님은 제가 대학 2학년 2학기 때 미국에서 귀국하셨는데, 요새 말로 '뿅' 갔죠. 선생님처럼 공부하려고 많이 노력을 했죠.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경제학의 또다른 세계를 펼쳐주셨어요. 대학 졸업 후 한국은행에 입사한 것도, 유학을 가게 된 것도 趙 淳선생님 조언 덕택이었어요."
  
     러시아 극동대서 名博받아           2005년 10월 등산대회            재학생 농촌봉사활동 격려

대학때 장학금 받은 두산 구단 열성팬
스코필드, 조순 등 네분 부친한테 ' 희생' 배워 


- 자녀가 어떻게 되시죠.

"73년에 결혼해서 78년에 사내아이, 83년에 딸아이를 낳았어요. 큰 애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와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있고, 둘째는 이화여대 경제학과 4학년에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자유분방하게 키운 편이에요. 과외는 시켜본 적이 없지만, 학원에 가겠다면 다 보내줬어요. 그런데 저희 애들은 학원을 다 다녀 본 적이 없어요. 한 달 끊어 놓고 2~3주밖에 안 가더라고요."

- 총장께서는 자녀들과 제자들에게 어떤 아버지와 스승이신가요.

"스코필드 박사님과 趙 淳선생님을 합친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저희 애들이나 학생들에게 속박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편이죠.
 또 애들이나 학생들에게 반말을 써 본 적이 없어요. 어머님도 저에게 전혀 반말을 쓰시지 않으셨어요. 어머님은 '너, 이렇게 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자네, 이렇게 하면 안될까'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실천하고 있죠.
 어머님이 제가 어릴 적에 '자네 집안에는 정승이 3대째나 끊겼네'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있어요. 물론 가까운 선친 중에 정승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저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그러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승이 돼야 하나 보다 생각한 적도 있었죠."

- 총장직을 그만두면 2학기 강의 준비 이외에 제일 먼저 무슨 일을 하고 싶으세요.

"우선 실컷 자고 싶어요. 그리고 그동안 야구장에 자주 못 갔었는데, 두산 경기를 즐겨야죠."

- 두산을 응원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봐요.

"제가 대학에 들어와서 상과대학동창회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상과대학동창회장이 OB맥주 朴斗秉회장이셨어요. 그래서 프로야구단 OB베어스를 응원하게 되었고, 또 제 고향이 충청도인데 예전에 OB베어스 연고지가 대전인 적이 있었어요."

- 후학들을 비롯해 이 시대의 지식인들에게 메시지를 주신다면.

"요즘 너무 설렁설렁 학점도 적당히, 공부도 적당히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제가 항상 말하는 게 있습니다. 첫째는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완벽을 추구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라는 겁니다."
〈정리 = 安興燮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