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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호 2006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사진의 욕망



 



       사진의 욕망 

      朴明珍
   모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본보 논설위원

서양화식의 그림 그리기를 사물을 대상화하고 화가는 관찰자의 위치에서 그것을 시각적으로 '포착'해 가는 과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른바 시각적 소유 행위란 의미이다. 세상만사를 인간­주체와 자연­객체의 관계로 보고 자연을 정복과 소유의 대상으로 인식해온 서양문화의 한가지 모습이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고 휴대폰에까지 카메라 기능이 추가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걸핏하면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댄다. 필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잘 가꾸어진 공원에 갔던 어느 날이다. 비 내리는 늦가을 날이었는데 장미원에 장미가 만발해 있고 여전히 향기가 짙은 것이 신기해서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찍다보니 이것은 예쁘고 저것은 멋있고, 이 앵글은 꽃 한 송이를 돋보이게 하고 저 앵글은 옆의 꽃과의 조화를 기막히게 보여주고…해서 동분서주하다 보니 어느덧 문 닫을 시간이라고 관리자가 나가달라 채근을 한다. 그 순간 한가롭게 식물과 자연 속에 묻히고 싶다는 마음으로 왔다가 사진 찍을 욕심에 휘둘렸던 자신이 참으로 언짢게 느껴졌다.
 꽃을 꺾어 가지려는 것만이 욕심이 아니라 그걸 사진에 되도록 많이 담아 기억을 고정시키겠다고 열중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버려야 할 욕심이 아닐까 싶다. 사진 찍기를 자연이나 사물의 아름다움을 '예술적'으로 즐기는 멋진 취미 같은 걸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어찌 보면 그것도 탐욕이 아닐지. 많이 꺾어 가지려는 거나 사진으로 '포착'해 가지려는 거나 소유욕이긴 마찬가지일 테니까.
 시각적 소유욕은 기억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의 징후이기도 하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고 무엇이든 쉽사리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게 된 오늘날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기록, 기억할 수 있게 됐다. 기억을 확실하게 포착, 소유하려는 사진 찍기의 욕망이 두려운 것은 기억되고 싶지 않은 것들, 기억할 필요도, 기억해서도 안 되는 것들조차 기억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잊어버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어떤 사소한 것도 잊어버리지 않는 사회란 결국 모든 기억을 평준화시키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 우선순위의 구분도 약화된다. 인터넷에 홍수를 이루는 그 많은 디지털 사진들은 정작 중요한 것에 대한 기억 상실자들을 양산해 가는 것은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