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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2006년 4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수원예총 金勳東회장


국내 잡지 창간호 8천여 점 소장

 잡지 창간호 8천여 점을 소장한 동문이 있어 화제다. 수원예총 金勳東(농학63-69)회장이 바로 그 주인공. 金회장은 "잡지사의 모든 역량이 집중돼 있는 게 창간호이고 그 속에는 한 사회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며 창간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청소년 잡지인 '少年' 창간호부터 최근 디지털 관련 잡지까지 국내에서는 개인, 단체를 포함해 金동문이 가장 많은 창간호를 갖고 있다.

 농학을 전공한 金동문이 잡지 창간호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金동문은 "대학 때 과제를 하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당시 필요한 논문을 찾기 위해 '새 농민'이란 잡지 창간호를 구해야 했는데 잡지사는 물론 학교 도서관에도 없더라고요. 국립도서관까지 찾아갔는데 그 때 담당자 말이 '잡지 따위는 수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국립도서관에서 창간호만큼은 보관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더니 떨떠름한 표정만 짓더라고요. 오기가 생겼죠. '국립도서관이 하지 못하는 일을 내가 해야겠다' 그리고 그 잡지를 강원도 영월까지 가서 구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창간호 수집은 가속도가 붙었다. 전국의 고서방, 고물상은 다 찾아다녔다. 지방 출장을 가면 가장 먼저 중고책방에 들렸다. 당시 중고책방 주인들은 돈도 안 되는 잡지 창간호를 애써 찾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 무거운 잡지 꾸러미를 풀고 묶는 모습이 애처로워 그냥 주는 이도 있었다. 부인과 아들들의 불만도 컸다. 부인 눈에는 '쓸데없는 일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였고 세 아들은 잡지에게 방을 빼앗겨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한번은 돈이 없어 결혼 예물시계를 중고책방에 맡기고 책을 구입했다가 영영 찾지 못한 적도 있다.

 이렇게 해서 모은 창간호가 지금은 金동문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金동문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잡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방문이 잦아졌고 창간호를 잃어버린 잡지사들이 기념호를 제작할 때면 늘 金동문을 찾는다. 잡지를 창간하려는 이들이 찾아와 제호를 의논하기도 한다.

 金동문은 요즘 잡지 창간사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창간사에는 그 시대 편집진들의 문제의식이 함축돼 있습니다. 독립선언문 같은 名文이 많습니다. 이 작업은 잡지사를 정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金동문은 농협대학 교수, 농민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경인일보에 '김훈동 칼럼'을 연재하며 집필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대학시절 '시 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하다. 잡지 창간호 외에도 문진과 저금통, 닭 모형 등을 수집하는 별난 동문이다. 〈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