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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2006년 4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창간 30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


"이제는 여성동문들이 하나 될 때예요"

金花中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대담 : 본보 朴聖姬논설위원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지난 3월 2일 金花中(간호63-67) 前보건복지부 장관이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 제16대 회장에 취임했다. 金회장은 당초 일부 반대가 있다는 우려와 달리 2월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임 회장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당선돼 전직 장관이 여협 회장을 맡은 첫 번째 사례가 됐다.

 金회장은 장관 재임 당시 담배 값 인상과 질병관리본부 설립 등 커다란 사안들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것으로 유명하다. 金회장의 그 같은 소신과 추진력이 여협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각계가 주목하고 있다. 金회장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과 개인사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 당선 소감 한마디.

 "책임이 무겁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앞서고요. 21세기에 맞는 여성지도자로서의 덕목을 갖춰야 한다는 사명감이 절실히 느껴집니다. 여협은 최근 발전 없이 많은 내분을 겪어왔어요.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金正禮 前보건복지부 장관이 저에게 회장직을 감당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솔직히 한참 동안 고민했죠."



 - 여협에 대해 소개를.


 "명실 공히 우리 나라 여성단체를 대표하는 곳이지요. '한국여성단체연합' 같은 진보 단체도 있지만 여러 성격의 단체를 두루 포괄하고 있는 여협이야말로 우리 나라 여성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본회 산하에 35개 회원단체와 16개 시.도 협동회원단체가 있고 그 아래 다시 시.군.구 별로 2백34개 여성단체가 있습니다.

 1959년 창립이래 45년간 여성운동의 본거지로서 여성의 지위향상과 권익신장에 많은 기여를 해왔습니다. 金活蘭.李淑鐘씨 등 여성운동에 앞장섰던 역대 회장들께서 오늘날의 여협을 이끌어 오셨죠.

 여성의 정치참여를 위한 비례대표 여성 50% 할당, 호주제 폐지 등의 쾌거는 일신의 영예를 생각지 않고 여성에게 씌워진 굴레를 벗기고, 여자도 사람답게 당당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야 말겠다는 많은 우리 선배들의 헌신적인 노고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 살림 돕는 사업 펼쳐나갈 터
성범죄 강력히 처벌해야 근절될 것


 - 회장 선출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결하실지.

 "다소 불협화음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정치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제가 여협 회장이 되는 것을 원치 않던 사람들이 있었죠. 그러나 저는 정치를 하려고 여협에 온 것이 아니라 추락하는 여협을 위해 일하겠다고 온 것입니다. 이런 의지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선거 당시 참석자 1백20명 가운데 5명만이 반대표를 주었습니다. 이 정도면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특히 3월 14일 회의에서 여협이 하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날 회의에는 모든 회원단체가 참석했어요. 그리고 제안한 안건에 반대하려고도 했지만 '화합하고 발전해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하자'고 설득했죠. 회의를 마치고 함께 어울린 모임을 통해 이제는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예산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어떤 일을 하려면 첫째로 예산이 있어야 하니까 제일 중요하죠. 과거에는 여협에 많은 지원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10년 동안 별다른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싸움만 해왔으니까요. 설득력 있는 사업계획이 있어야 예산도 얻을 수 있어 저는 이사회를 통해 새로운 사업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나라 살림에 참여하자는 목표 아래 네 가지 사업계획을 세웠지요. 나라 살림도 정부 혼자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나라 살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비정부 기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거죠. 네 가지 가운데 첫째는 안전사업입니다. 전기.가스.식품 안전사업이 그것이지요. 둘째는 출산 및 건강가정 운동입니다. 출산과 건강가정은 건강한 사회의 기본이니까요.
 셋째는 정부정책 바로 알기, 넷째는 여성 정책개발 운동 등입니다. 정부 정책을 제대로 알아야 호응도 하고 비판도 할 수 있지요. 또 당의 공천을 받기 힘든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정책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업계획을 내놓자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호응, 지원을 약속 받은 상태입니다. 정부 지원도 가능하겠지요."

 -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걸림돌이 있다면.

 "육아와 가사 노동이겠지요. 많은 여성들이 아직도 육아를 여성만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사회활동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남자들의 경우 육아와 가사를 돕는다고 해도 과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바뀌어야지요. 남편과 아내 모두가 육아와 가사를 함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이 사회에서 리더로서 일하면 집안 살림을 해야할 사람이 나와서 큰소리친다며 마치 남성의 일을 빼앗아 간 것처럼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남녀의 사회적 역할 개념도 바뀌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보육시설 확충이 뒷받침돼야 해요."

 - 성범죄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동안 우리 나라가 여성을 너무 천대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성의 부속품인양 대하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七去之惡'을 내세우면서 여성을 억압했고요. 제가 충청남도 여성정책개발원장을 맡았을 당시 여성에 관한 논문들을 연구 조사했더니 70년대부터 여성운동이 시작됐고 80년대 중반부터 여성의 복지에 관해 논하기 시작했습니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양성 평등을 얘기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미처 변하지 않아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죠. 성폭력 문제에 대해선 그야말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 법조계에서 너무 관대한 것 같은데.

 "성폭력 규제법의 경우 여성들의 주장에 의해 만들어진 까닭인지 법 집행 과정에서 소홀히 다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동 성폭행 사건도 판사에 의해 좌지우지되는데 너무 가볍게 다뤄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동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일생을 망치는 중대 범죄인만큼 엄하게 법집행을 해야 한다고 봐요. 여성계도 강력하게 대응을 해야겠죠."

 - 저출산 문제가 심각합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저출산 사태에는 네 가지 원인이 있어요. 원인을 제거해야겠죠. 첫째는 경제적 부담이니 이 문제를 해결해주면 아이를 낳을 겁니다. 경제적 부담이란 육아.교육.주택비 등이겠죠. 두 번째는 사회적 부담, 다시 말하면 여성이 사회에 진출할 때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거지요. 출산과 육아가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는 건데 이렇게 되지 않도록, 오히려 가산점을 주든가 해야 아이를 낳지요. 세 번째는 앞에서 말했듯 역할 분담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결혼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모델을 보여야 한다는 거죠. 건강한 가정운동을 펼쳐 이혼 또는 가정불화를 겪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최근 총리실에서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연석회의를 구성했습니다. 그 자리에 스님이나 목사님 같은 종교계 분들도 참석한 것은 출산 문제에는 가치관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종교계 지도자들이 설득할 경우 효과가 있을 테니까요. 아이를 낳지 않으면 국가경쟁력 기반이 흔들리는 만큼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이지요."

 - 보건복지부 장관, 대통령 특보 등을 역임하셨는데 보람된 점이나 아쉬웠던 점은.

 "1971년부터 모교 보건대학원에 재임하면서 보건 분야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이 많았어요. 장관이 되면서 30여 년 동안 쌓였던,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실천할 수 있어 좋았죠. 가장 잘 했다 싶은 건 질병관리본부를 만들어 우리 나라에서 전염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일입니다. 그 결과 사스와 조류독감이 발생했을 당시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담배 값 인상과 건강보험 통합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건복지 분야 로드맵을 만든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로드맵 작성은 교수로 오랫동안 봉직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 로드맵을 실현하는 데는 또 다른 힘이 필요하다 싶었습니다. 그것을 실천할 가장 적당한 분이 金槿泰 前장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장관 재임 시 힘들었던 건 이익단체와의 갈등이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관련된 이익 단체가 4백68개나 됩니다. 그들이 서로의 이익만을 주장하느라 거의 매일같이 물러나라고 그랬죠. 하지만 소신껏 일 처리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 담배 값 인상 때 말도 많았는데 애연가들의 반대를 어떻게 뿌리치셨는지.

 "미래지향적이며 정의로운 길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한다면 무엇이든 안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담배 값을 인상시켜 흡연율을 낮추는 건 정의로운 일이죠. 청소년들처럼 담배를 피우려고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금연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담배 값 인상 고삐를 한시도 늦추지 않았어요. 당시 거의 모든 장관들이 반대해 어려움을 겪긴 했죠."

 - 장관 재임시절 드라마에도 출연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압구정 종갓집'이라는 시트콤이었을 거예요. 그 시트콤의 소재를 보건복지부가 공급했어요. 보건복지부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출연까지 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뜻하지 않게 드라마에 나오게 됐어요.

 재임 기간동안 방송이나 신문 인터뷰 요청을 거절한 적이 없었어요. 국민들한테 정부가 하는 일들을 납득시키고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흔히 각종 단체들이 정부 정책에 대해 바로 알기보다 반대부터 하고 보니 쉽게 사회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혼란만 가중되잖아요. 장관도 그렇고 공무원들이 실수를 할 수는 있지만 의도적으로 국민을 나쁘게 할 리가 있겠어요. 국민들에게 이런 부분을 알리려고 드라마에 출연했던 거죠."

 - 집안 사정과 성장과정을 전하신다면.

 "논산에서 산다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중학교 3학년 때 망했습니다. 그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어요. 특히 어머니가 고생하셨죠. 아버지 뒷바라지 다 하시느라 힘든 삶을 사셨어요. 그리고 아들을 낳지 못해 마음고생도 심하셨고요."

 - 술은 좀 하시는지.

 "술자리가 있으면 분위기를 맞추려 조금 하지만 많이는 못해요."

 - 즐겨 부르시는 노래가 있다면.

 "예전엔 '선구자'만 부르다 군수 부인이 된 뒤 트로트도 알아야 한다 싶어 유행가 테이프를 사다 남편과 연습했어요. 남편은 아직도 '선구자'밖에 못 부르는데 저는 패티김의 '미련 때문에'도 불러요."

모교 … 국민의 대학으로서 위상 찾길
온가족이 키운 네 딸 잘 자라 다행

- 남편이신 高玄錫동문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남편은 법학과 61학번이고 저는 63학번이에요. 재학시절 남편이 '향토개척단' 단장을 맡았었어요. 남편이 임기를 마칠 무렵, 제가 임원으로 갔을 때 만났죠.
 당시 문리대.법대 학생들과 많이 어울려 분단.민족 문제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길 좋아했어요. 남편이 그 모임에서 독재정권 아래서는 사법고시를 안 치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나 신선해서 저 사람하고 결혼하면 많이 배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남편은 농민운동을 하면서 친구들이 감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많이 힘들어 했어요. 저는 사법고시를 안 치를거면 기자가 되어 비판하면 되지 않겠냐고 권했는데 남편은 농협을 농민의 것으로 만들겠다며 농협에 들어갔어요. 金大中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함께 일하면서 金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됐지요. 金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남편은 화를 같이 한 사람이 복을 같이 누리는 게 아니라면서 고향 가서 군수하고 싶다고 고향으로 내려가 곡성군수를 하게 됐고, 저는 金대통령의 권유로 정치를 하게 됐죠."

 - 두 분이 함께 '행복한 부부 만들기'라는 책을 써서 화제가 됐습니다만. 3분과 13분 얘기는 특히 많이 알려졌고요.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었어요. 지금도 서로 존댓말을 쓰고요. 2000년 무렵 교양과정에서 건강관리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건강한 몸과 마음 유지에 필요한 책을 쓴 적이 있어요. 개인과 가정, 사회 건강에 관한 내용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알려줘야 할 것 같아 '건강한 부부관계를 엮는 작은 지혜'라는 책을 썼지요.

 장관이 되고 보니 가정이 쉽게 해체되고 1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버려지는 현실이 가슴 아파 이걸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행복한 부부 만들기'라는 책을 쓰게 된 것이죠. 그런데 언론에서는 성에 관한 내용만 집중해서 보도하더라고요. 출판사 나름대로의 판매전략인 듯해 상관하지 않았어요."

 - 남편께서 너무 진지해 곤란한 점은 없으셨는지.

 "우리는 농담을 안 해요. 저는 아직도 웃으면서 쓸데없는 얘기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진지하게 토론하는 분위기를 좋아하죠.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발전적인 토론을 하는 것을 보면 흥분이 되곤 합니다. 전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위들과 동양학이나 전자통신 분야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재미있어요."

 - 따님만 넷이죠. 아들을 낳으려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솔직히 그런 셈이죠. 시아버님께서 저를 예뻐하셔서 저에게서 대를 잇기를 바라셨죠. 그래서 계속 낳다 보니 딸 셋이 됐지요. 다행히 아랫동서가 아들을 낳아 대는 잇게 됐습니다. 후에 시어머님이 한번만 더 낳아 보라고 하셔서 막내를 얻게 됐죠."

 - 일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어떻게 키우셨는지.

 "남편이 종가의 7남매 중 장남이에요. 그래서 다 같이 모여 살았습니다. 시할머니, 시어머니 등 시댁 어른들과 같이 살아서 그분들이 키워주셨어요. 사실 키우는 방법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시할머니는 땅에 떨어진 사탕을 닦아 먹이기도 했고 삼촌과 고모들은 아이들 버릇을 고친다고 제가 보는 앞에서 때리기도 했어요. 그래도 그 속에 진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잘 자랄 것이라고 믿었어요."

 - 자녀들은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요.

 "첫째 은강이는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석사를 마쳤어요. 현재 홍콩대와 옥스퍼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공부하기 바빠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는 없네요. 둘째 선강이는 이화여대를 나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지금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중이죠. 결혼해서 아이도 있고요. 셋째 진강이는 서울대 간호대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박사과정 중입니다. 막내 현강이는 이화여대 의대 본과 3학년이에요. 서울대 사회교육과에 들어가려 했는데 떨어졌어요. 교사가 꿈이었는데 뜻대로 안됐죠.
 아이들한테 그다지 신경을 못 썼는데 다행히 반듯하게 자라고 공부도 잘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 올해로 모교가 개교 60주년을 맞았는데 모교 발전을 위해 한 말씀.

 "그동안 서울대의 위상이나 자부심만 믿고 국민들 속에서 서울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등한시해온 것 같아요. 서울대는 국민의 대학입니다. 국민의 대학으로서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대학으로서 국민과 함께 하는, 국민을 위한 대학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한 상태에서 오랜 시간이 흐르다보니 결국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만큼 앞으론 국민의 대학이라는 위상을 바로 잡아야 될 것 같아요. 폐교론 얘기가 나왔을 때 저는 '서울대를 없애면 결국 다른 대학이 일등을 차지할 뿐 대학 서열은 없어지지 않는다. 가난한 학생도 갈 수 있는 대학은 서울대뿐이다. 돈 많은 집 자식들이 가는 대학이 살아남는 게 진정한 진보인가'라고 물었어요. 서울대를 없애자는 측이 거의 소위 진보 진영이었거든요."

 - 동창회에서 장학빌딩을 짓는데.

 "처음엔 동창회관이 있는데 왜 새로 지어야 하는가 생각했죠. 현재 건물이 너무 낡고 수익성도 낮다니 새 건물이 필요할 것 같네요. 장학빌딩을 건립하면 총동창회가 역점을 두고 있는 장학사업과 교수 지원에도 힘이 될 것이라고 하니 기대가 됩니다. 모금 활동이 활발하게 되고 있다는 것은 기쁜 소식인데 林光洙회장님께서 상당히 노력하고 계신 결과라고 생각해요.
 장학빌딩이 지어질 곳의 지리적 입지도 좋으니 앞으로 큰 발전을 기대해봅니다."

 - 여성 동문들이 좀 더 활발하게 동창회 활동을 펼치려면.

 "우선 여성동문회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많은 동문들이 여성동문회에 참여하게 되면 그 만큼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지요. 서울대 여성동문의 경우 사회에 나가면 자신의 능력으로만 발전할 수 있지 동문들의 도움을 받기는 힘든 것 같아요. 앞으로 누가 서울대를 나왔는지도 모르는 일 없이 서로 힘을 보탰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여성들도 모교를 졸업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金회장은 모교 보건대학원 보건학 석.박사, 美콜럼비아대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모교 병원 수간호사, 대한간호협회 중앙회 회장, 대한간호정우회장, 한국산업간호협회 초대 회장, 한국학교보건학회장, 의료보험심의위원, 충청남도 여성정책개발원장, 제16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대통령 보건복지 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모교 보건대학원 교수를 맡고 있다.
〈정리 = 朴宰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