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호 2004년 3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寬容의 道」를 익히자
미국의 명문대학교 총장들이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국내 기자가 그들에게 매우 흥미 있는 질문을 했는데 그것은 극히 상식적인 질문이었다. 질문 내용인즉 이런 것이었다.
『오늘날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세계에서 「안보」 「경제」 면에서 최강국이 된 원동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런 맥락에서 그 기자는 다시 이렇게 물었다. 『미국과 같은 큰 나라가 인재를 양성함에 있어서 대학, 특히 명문대학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이때 한 총장이 아주 의미 있고 감동적인 답변을 해 주었다. 『대학이란 흔히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라지만 우리 미국의 대학에선 관용의 도를 가르치고 있지요.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세상 사람들은 흔히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대화합니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주장만 하지말고 우선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경청하는 일이며 그런 연후에 상대방을 이해하며 허물이 있으면 용서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한사람, 두 사람 이어져 나간다면 그 사회는 화합하여 잘 조화되며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인재를 잘 키운다는 것은 사람, 그리고 사회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미국의 대학에선 이와 같이 관용의 도를 대학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언뜻 「우리 나라에서도 왜 이와 같은 인성교육을 하지 않는 것일까, 도덕과 윤리에 관한 교육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총장의 말은 모름지기 나라를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인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우치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내세우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자세야말로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손상시키는 것 뿐 아니라 나아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위험한 요소임을 망각하는 때가 많을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겸손과 친절도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관용의 도가 작게는 행복의 보금자리인 한 가정내의 부부의 도리에서부터 크게는 나라의 정치도의에 이르기까지 오늘 현대인에게 얼마나 소중한 과제임을 되새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관용의 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익혀야 할 진정한 삶의 한 패턴이 돼야 할 것이다. 관용의 의미는 상대방을 크게 용서한다는 것과 풍성하게 안아준다는 뜻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내일에 사는 우리는 관용의 도를 익히고 진실과 정직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행복한 삶을 창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순간의 실수로 관용의 도를 간혹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 성급한 사람일수록 관용을 베푸는 아량을 소홀히 하는 수가 있는 법이다. 사람들은 관용의 참뜻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상대방을 무턱대고 경시함으로써 자신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 올 때가 있다. 너그러운 관용의 정을 베풀지 못한 것을 후회할 적엔 이미 때는 늦는 것이다. 관용이란 흔히 생각하기에 사람들에게 저 자세인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반사적으로 관용의 결과는 자신에게 적지 않은 이익이 따른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것일까. 참으로 관용의 도란 듣기만 해도 감동적인 말이 아닌가. 과연 「세상 사는 묘미가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의 갈등, 그리고 분쟁들이 무엇보다도 관용의 도에서 벗어나면서 생겨나는 그릇된 현상이 아니던가. 관용의 자세는 그만큼 사람과의 대화에서 요긴한 처세임을 다시금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관용이란 사람을 이끌어 내는 마력이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덕목인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세계에서 「안보」 「경제」 면에서 최강국이 된 원동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이런 맥락에서 그 기자는 다시 이렇게 물었다. 『미국과 같은 큰 나라가 인재를 양성함에 있어서 대학, 특히 명문대학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이때 한 총장이 아주 의미 있고 감동적인 답변을 해 주었다. 『대학이란 흔히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라지만 우리 미국의 대학에선 관용의 도를 가르치고 있지요.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세상 사람들은 흔히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대화합니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주장만 하지말고 우선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경청하는 일이며 그런 연후에 상대방을 이해하며 허물이 있으면 용서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한사람, 두 사람 이어져 나간다면 그 사회는 화합하여 잘 조화되며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인재를 잘 키운다는 것은 사람, 그리고 사회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미국의 대학에선 이와 같이 관용의 도를 대학과정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언뜻 「우리 나라에서도 왜 이와 같은 인성교육을 하지 않는 것일까, 도덕과 윤리에 관한 교육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총장의 말은 모름지기 나라를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인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우치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내세우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자세야말로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손상시키는 것 뿐 아니라 나아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위험한 요소임을 망각하는 때가 많을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겸손과 친절도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관용의 도가 작게는 행복의 보금자리인 한 가정내의 부부의 도리에서부터 크게는 나라의 정치도의에 이르기까지 오늘 현대인에게 얼마나 소중한 과제임을 되새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관용의 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익혀야 할 진정한 삶의 한 패턴이 돼야 할 것이다. 관용의 의미는 상대방을 크게 용서한다는 것과 풍성하게 안아준다는 뜻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내일에 사는 우리는 관용의 도를 익히고 진실과 정직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행복한 삶을 창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순간의 실수로 관용의 도를 간혹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 성급한 사람일수록 관용을 베푸는 아량을 소홀히 하는 수가 있는 법이다. 사람들은 관용의 참뜻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상대방을 무턱대고 경시함으로써 자신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 올 때가 있다. 너그러운 관용의 정을 베풀지 못한 것을 후회할 적엔 이미 때는 늦는 것이다. 관용이란 흔히 생각하기에 사람들에게 저 자세인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반사적으로 관용의 결과는 자신에게 적지 않은 이익이 따른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것일까. 참으로 관용의 도란 듣기만 해도 감동적인 말이 아닌가. 과연 「세상 사는 묘미가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의 갈등, 그리고 분쟁들이 무엇보다도 관용의 도에서 벗어나면서 생겨나는 그릇된 현상이 아니던가. 관용의 자세는 그만큼 사람과의 대화에서 요긴한 처세임을 다시금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관용이란 사람을 이끌어 내는 마력이요, 보이지 않는 커다란 덕목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