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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2006년 4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동창회보의 무궁한 발전을


 이번 호로 동창회보가 창간 30주년을 맞이했다. 1976년 4월 24일 정기총회에 총 16면 4천부를 배포해 총동창회를 홍보하고, 동문 상호간의 긴밀한 결

속과 유대 강화를 기했다. 당시는 관악캠퍼스로의 교사통합이 행해졌던 시기였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총동창회의 통합은 형식적으로는 이뤄졌으나 실질

적으로 과거의 연립동창회 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법대동창회장을 역임한 李錫範선생이 동창회 상임부회장이 되자 서울대학교총동창회로의 보다 긴밀한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동창회보를 발간하

기로 결정하고 당시 법대동창회가 발간하던 '낙산회보'를 벤치마킹해 '서울대동창회보'를 발간하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각 단과대학동창회는 재정상

태도 좋았고 홍보물도 발간하고 있었으나 총동창회는 재정상태도 좋지 않았고 홍보물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회원 중에는 단과대학 동창회비를 냈는데 총동창회비를 이중으로 내야하느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고, 경쟁상대로 생각해 백안시하는 단과대학동창

회도 있었으나 동창회보의 발간을 시작으로 연립동창회가 통합동창회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창회보는 모교의 대학신문과도 긴밀히 협조해 서울

대학교 통합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동안 재정문제로 격월간 12면을 발행했던 어려움도 있었으나 1980년 3월 1일부터 월간으로 전환하게 됐다. 동창회보의 발행부수도 늘렸고 증면도

했다. 이때 동창회보는 서울대학교동창회관 건립의 홍보역할을 담당했고 현재의 동창회관의 건립에 성공했다. 또 동창회보를 통해 지방조직을 독려했고

잠자던 단과대학동창회의 각성에도 큰 기여를 했다.
 동창회보는 해외지부 결성과 활동에도 노력해 1993년에는 '재미 서울대동창회보'가 창간되기도 했으며 해외동문과 국내동문의 유대 강화에도 크게 기

여했다.
 이제 동창회보는 32면으로 확대됐고 국내판 10만부, 미주판 7천부, e -mail동창회보 5만부 총 15만여 부를 발간하게 됐다. 3백호 기념으로는 PDF식

CD - ROM을 발간하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동창회보가 새 '장학빌딩' 건립을 위해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 모래알에 불과했던 서울대학교 동문들을 동창회보가 촉매가 되어 30만

동문의 대통합을 이뤘기에 새 장학빌딩 건립사업에 일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동창회보가 앞으로도 다양한 편집으로 노.장.청의 동문들이 기다려지는 회보로 돼야 할 것이며 모교와 동창회의 발전과 동문들의 행복추구에 기수 역

할을 계속하게 되기를 바란다. 〈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