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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2006년 4월] 뉴스 본회소식

창간 30주년 기념 콩트


 대단하네. 무려 열 두 명이 모였으니. 열 두 명이면 한국에 사는 애들(?) 중에서 두 명 빼고 다 모인 거지, 아마? 그 옛날 학교 다닐 때도 이런 적이 없었다. 정원이라곤 달랑 스무 명, 그나마 입대하랴 데모하랴 아르바이트하랴 연애하랴 술 먹으랴 도통 열 명 이상 모여본 역사가 없다. 게다가 '리베랄'이라나 뭐라나로 시작되는 이름의 학교였으니 스물이면 스물이 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을 터.

 모임이 시작된 건 졸업한지 얼추 20년이 지나고서부터였다. 오로지 시간의 힘이었을까. 천만에. 필자의 남편도 그 대학의 다른 학과를 다녔지만 환갑이 훌쩍 지난 이 날 이때껏 동기모임 같은 건 없다. 다 아다시피 시간만 갖고 되는 일이 아니다. 모든 생명이 싹트는 데는 하나의 밀알이 필수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과 동기 중에 그런 밀알이 숨어 있었던 거다.

 아무튼 그렇게 됐다. 처음엔 1년에 그저 한 두 번이나 모였을까, 그러더니 어느 새 잦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열심히 모인다. 그도 그럴 것이 슬금슬금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더니 금방 자식들이 결혼하는 나이가 돼버렸잖은가. 정말 시간은 지 맘대로 간다.

 경조사 외에도 모일 기회는 또 있다. 오늘처럼 외국에서 오래 살던 친구가 모처럼 귀국했을 경우이다.



"우아하게 늙기도 힘드네"
朴惠蘭(독문65-69) 
여성신문 편집위원장
'나이듦에 대하여', 
'소파전쟁' 저자


 얼마나 변했을까. 이번에 다니러 온 친구는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었기 때문에 못 본 지가 어언 40년이 지났다. 함께 공부한 시간이 워낙 짧았던 탓에 옛날 얼굴도 가물가물한데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 모두들 궁금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드디어 약속시간을 칼같이 맞춰 그가 나타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하나도 안 변했다. 머리카락이 조금 듬성듬성해진 것과 얼굴에 주름이 조금 생긴 것과 어깨가 조금 처진 걸 빼곤 고대로였다.

 "와, 하나도 안 변했네. 머리도 새까맣고 얼굴도 팽팽한 게 40년 전하고 똑같잖아."

 "너희들도 고대로네. 못 알아 보면 어떡하나 했는데."

 그래, 바로 이 맛이다. 옛날 친구들을 만나는 재미란. 마치 타임머신을 타기라도 한 듯 순식간에 40년 전으로 날아간다. 게다가 옛날에는 무늬만 남녀공학이었을 뿐 남녀유별주의가 대세였던 터라 남녀학생 사이에 늘 서먹서먹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지금은 그 벽이 무너졌잖은가. 소꿉친구들처럼 화기애애하다. 이 모두 시대의 미덕이요 나이의 위력이다.

 희한하게도 모임의 화제는 항상 두 가지다. 하나는 당시 교수님들 이야기, 그리고 나이 이야기. 그런데 교수님들 이야기도 결국엔 나이로 돌아간다.

 당시 그토록 엄청난 위엄과 관록으로 우리를 기죽였던 교수님들 나이가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겨우 마흔 즈음이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번번이 감탄하고 허탈해 한다. 하긴 그 시절엔 환갑이라면 어마어마한 나이였지.

 이제 우리가 예순 즈음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우린 '환갑노인'이 아니다. 이렇게 옛날 친구들을 만나면 더 그렇다. 우린 서로를 남학생, 여학생이라고 부르면서 한껏 젊음에 취한다.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다른 또래들에 비하면 10년은 젊어 보인다며 서로를 부추겨준다. 눈물겨운 동지애다. 음식점 종업원들이 피식피식 웃는 것도 우리 눈엔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뻑은 그 시효가 너무나 짧다. 동기 중에서도 유난히 팽팽해서 우리가 40대 청년이라고 부르는 남학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야, 우리끼리니까 서로 젊게 보는 거야. 나 오늘 얼마나 기분 나빴는지 몰라.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당했다구. 그것도 학생이라면 말도 안 해. 이건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라니까."

 그러자 다른 남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해성사를 한다.

 "넌 겨우 이제 당했냐. 난 어르신대접 받은 지 이미 오랜데. 벌써 10년 돼 간다."
 "처음엔 자존심까지 상했지만 요즘엔 젊은놈이 안 일어나면 기분 나쁘더라."
 너무나 젊고 고와서 내 눈엔 기껏해야 마흔 남짓해 보이는 여학생까지 거든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면 초등학생이 할머니 안녕히 가세요 라고 인사를 하는데 뭘. 별수 없어. 우리끼리니까 콩깍지가 씐 거지 갈 데 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눈 깜짝할 새 팔팔하던 분위기가 의기소침 모드로 돌변했다. 그런데, 이게 웬 조화일까. 나의 고질병이 슬금슬금 도지려고 한다. 무슨 병이냐고? 공주병이지 뭐. 그래, 난 아직 너희들보다 젊다구. 난 아직 자릴 양보 받은 적이 없으니까.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흐뭇함에 한껏 취한 채 나는 친구들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나이야 어쩌겠어. 그러니 자리를 양보 받으면 정중하게 고맙다고 인사나 해. 우리 나라 노인들은 도대체 인사를 할 줄 몰라. 그저 뚱한 표정이나 짓고. 젊은애들 속으로 그럴 거 아냐? 재수 없는 노인네들, 뭐 하려고 기어 나왔누 하고. 자, 우린 좀 우아하게 늙읍시다."
 모임이 끝난 후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퇴근시간도 지난 지 한참인데 버스는 만원이었다. 노약자석은 이미 젊은이들로 채워졌다. 그 옆에 서 있으면 피곤한 젊은이들한테 눈치를 주는 것 같아 나는 간신히 버스 뒤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 때 마침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젊은 여성이 일어섰다. 아마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려는 모양이었다. 난 역시 재수가 좋군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잽싸게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섰다. 그런데 그 여학생은 내리지 않았다. 내 쪽으로 얼굴을 외면한 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서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띵해왔다. 아니, 나한테 자리를 양보한 거였단 말이야? 그런데 난 고맙다는 인사도 안 했잖아?

 '아, 나도 이젠 늙었구나' 라는 충격과 평소에 비웃었던 노인네들처럼 교양 없이 굴었다는 민망스러움이 두 겹으로 나를 괴롭혔다. 괴롭다 못해 화까지 났다. 그런데 신기했다. 처음엔 나 자신에게 향했던 화가 슬그머니 방향을 트는 게 아닌가.

 '아니, 자리를 양보하려면 공손하게 여기 앉으세요 하고 일어나야지 그냥 불쑥 일어나면 어떡하라는 거야? 아무튼 요즘 젊은것들은 싸가지가 없어. 아이고, 우아하게 늙기도 힘드네.'

 차창을 바라보니 웬 추레한 할머니가 심술궂은 표정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