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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호 2006년 4월] 뉴스 본회소식

창간 60주년 특집



30세 동문, 그리고 재학생 등 10명 
                               "모교와 동창회에 바란다"

 X세대인 94.95학번 동문들이 올해로 30세를 맞는다. '서른 즈음에'란 대중 가요에서 노래하듯 사회시스템에 안착해 '자유로운 청춘'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나이이다. 그러나 일터에서는 열심히 뛰어야 할 시기이기도하다.

 예수는 서른 살에 복음 사역을 시작했으며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이 시기에 '경제인의 종말'이란 책을 내며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남녀 동문에게 서른 살의 의미와 동창회와 모교에 바라는 점 등을 들어보았다. 또 재학생의 눈에 비친 동창회보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실었다.


X세대가 '키티맘'이 되어서
成 知 첻(생물94-98)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얼마 전 생일에 초 3개가 꽂힌 케이크를 선물 받으며 나이 서른을 넘긴 것을 깨달았다. 역시나 서른 즈음에 돌아보는 것은 초 2개가 마음을 설레게 했던 스무 살의 꿈이 아닐까 싶다. 10년 전 하이텔을 밤새 넘나들던 내가 싸이월드 방명록에 발자국을 찍고 있고, 대학 3학년 전공시험을 위해 도서관에서 밤을 새던 내가 사무실 노트북 앞에서 밤을 새고 있다.

 그런걸 보면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매체와 통로만 바뀔 뿐 본질은 그대로 인 듯하다. 아니, 조금 다른 본질의 변화라면 장미꽃 20송이의 핑크빛 로맨스는 남편과 딸과 함께 가정을 만들었고, X세대의 겁없음은 딸아이를 안고 바삐 뛰는 키티맘으로서의 바지런함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동창회보 창간 30주년을 축하하면서 필자를 나타내주는 본질 중 하나인 내가 나온 내 학교, 서울대학교가 삶에서 차지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 나 역시 학교의 이름이 주는 사회의 훈장 덕에 으쓱하면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다. 서른 살 언덕이 주는 한번의 쉬어감으로 돌이켜보니 믿을 수 없는 패기와 열정으로 조금은 오만했던 시간에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받은 만큼 베푼 것이 너무나 적은 탓일 것이다.

 서른 살은 청춘이 멀어져 감을 아쉬워하는 나이는 아니다. 오히려 스무 살을 돌아보며 마흔을 준비할 수 있는 여유도 있고 배짱도 두둑한 나이다. 그러기에 이제는 받는 것보다 베푸는 것에, 오만함보다 겸손함에 삶의 무게를 실어본다. 그래서 마음이 한결 너그럽고 편안해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서른 살인 것 같다.


든든한 후원자로 남아주길
姜孝善(국악94-98) 국립국악원 단원

 76년생, 나이 30세. 나이 서른은 필자에게 참으로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서른은 스무 살이 되던 설렘과 뿌듯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마치 높은 고지를 향하는 숨가쁜 발걸음과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기보다는 무언가를 이뤄 나가야할 때라는 생각이 드는 시점인 것이다.

 한 가정의 안주인으로, 한 아이의 엄마로 내 가정을 온전히 이뤄야할 때이며 관현악단의 단원으로, 또 솔로연주자로서의 내 꿈도 펼쳐보고 싶은 때인 것이다. 내 인생의 반도 다 지나지 않았으련만, 서른이라는 숫자는 내 발걸음을 재촉하듯 많은 생각과 숙제를 안겨준다. 나는 지금 서른 살이 되어 내 인생의 가야할 길을 새롭게 그려보고 계획해본다.

 4월 2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국악앙상블 윤슬 연주회', 5월 31일 영산아트홀에서의 '강효선 피리음악 음반발매 기념 연주회', 이 두 개의 큰 연주회가 지금 내가 매진하고 있는 활동이다.

 내 서른 살의 꿈을 모교와 동창회에서 함께 해준다면 더없이 의미가 깊을 것 같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서른 살의 다른 동창들의 꿈도 함께 응원해준다면 우리 서른 살 동지들은 서로 든든한 마음일 것이다.

 동창회보의 나이가 서른이라면, 성숙하고 노련한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라면, 더 많은 동창들의 소식을 함께 해 주고, 더 많은 동창들에게 응원과 후원을 아끼지 않는 동창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만큼의 역할을 해야 할 때
趙城賢(국문95-02)연합뉴스 사회부 기자

 동창회보가 창간 30년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서른 해를 꽉 채운 것이 비단 필자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반가워진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느낄 새도 없이 바삐 흘러가는 서른 살 봄.

 뜻을 세운다는 '而立'의 나이인 서른을 맞이하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인생의 분기점을 맞는 심정으로 차분히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그러나 상황은 그다지 여유롭지 못하다. 기자 생활 5년째로 접어들면서 조직이 내게 요구하는 '5년차' 만큼의 책임과 역할을 소화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여유'와는 담을 쌓을 수밖에 없는 생활을 의미한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서른이라는 나이는 생산의 중심을 떠받치는 나이다. 생산 현장에서도 그렇고 학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5개의 홈런을 '생산'해내며 한국 팀을 4강에 올려놓은 이승엽 선수도 올해 만 서른이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는 다른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동창회보가 창간 30년을 맞았다는 것은 축하할 일인 동시에 그만큼의 역할을 해야할 때가 됐음을 의미한다. 10년차의 동창회보와 20년차의 동창회보가 일궈내지 못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서울대는 올해로 60주년을 맞는다. 어찌 보면 예순 살이 되는 서울대와 서른 살이 되는 동창회보의 관계는 적절한 터울의 부자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존중하고 공경하며 한 가족과 사회의 든든한 기초를 만들어 가듯 서울대와 동창회보가 서로 밀고 끌며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사회의 요청에 귀 기울이자
千命宰(건축95-99) 한국행동과학연구소 연구원

 먼저 동창회보의 30번째 생일에 축하의 마음을 보낸다. 사실 그동안 동창회보를 보면서도 내용을 통해 그동안의 긴 역사를 가늠할 뿐 내가 태어난 해에 창간됐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는데, 동년배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필자에게 나이 30은 새로운 삶의 기점으로 다가온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께서 만 30이셨는데, 나 또한 같은 나이에 아내의 배속에 있는 2세와 만나길 기다리고 있다. 30세는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는 때라 해서 而立이라 불리며, 예수님도 그 시기에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지금까지의 삶이 배우고 준비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때이다.

 이른 시기부터 사회에 진출해 생계를 책임지셨던 부모님 세대에 비해 전공을 바꿔가며 10년 가까이 캠퍼스에 있었던 나는 출발도 늦고 여전히 미숙함이 많은 초보 사회인이다. 하지만 겁을 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고 싶다. 배움과 성장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되 내가 가진 작은 것들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해보게 된다.

 30대에 들어선 동창회보에 대해서도 이런 기대가 생긴다. 그간 내실을 다지고 건강한 틀을 만드는 데 주력해온 30년이었다면, 이제는 서울대인을 향한 국가와 사회의 요청에 부응하는 데 좀더 귀를 기울이는 새 출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훌륭한 동문들과 함께, 자랑스러운 모교를 세워 가는데 조금이나마 일익을 담당하는 앞으로의 날들을 꿈꾸어본다.


'봉사'와 '섬김'을 전통 삼아
洪周玉(산업디자인95-99) 한양사이버대 강사

 올해로 제가 세상에 태어난 지도 30년이 되었고, 학교를 졸업한지도 어느새 7년이 지났습니다.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느끼는 것은 졸업했다는 것은 학교만 떠났을 뿐이지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삶의 현장 가운데서 먼저 인생의 과정들을 겪으신 선배님들과 현재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동기들, 그리고 제가 이미 지나왔던 시기들을 지금 지나고 있는 후배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작년 여름에는 중국에 있는 연변과학기술대학의 여름학기 강의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우연히 78학번 선배이시며 또 제가 속했던 동아리를 지도하셨던 교수님과 76학번 선배님, 그리고 그 분들이 학생일 때, 역시 그 분들을 지도하셨던 이제는 80세를 바라보시는 노교수님도 강의를 하러 오셨습니다.

 90년대 학번인 저와 70년대 학번이신 두 분의 선배님, 그리고 50년대 학번이신 교수님을 우연히 그곳에서 함께 뵙고는 앞으로 20년, 그리고 40년 뒤 제 삶의 모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가지고 더 높아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젊은 시절 품은 꿈과 신념을 버리지 않고 평생 묵묵히 실천하며 겸손히 나누고자 노력하는 선배님들을 보면서 그 분들의 존재만으로도 큰 힘이 됨을 느낄 수 있었고 저 또한 그런 선배가 되는 소망을 가져 보았습니다. 

 동창회보 30주년을 맞이하면서, 후에 40주년, 50주년이 될 때는 사회 곳곳에서 진리와 사랑을 실천해 시대에 본이 되고 희망이 되는 동문들의 소식들로 가득한 동창회보가 되고, 최고의 실력뿐 아니라 최고의 봉사와 섬김이 전통이 되어 사회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서울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 필요
鄭鎭旭(의학95-01) 공중보건의

 옛말에 30세는 '而立'으로 불렸다.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인 '志學'을 지나 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서른 살에 가정과 사회에 모든 기반을 닦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로 동창회보가 3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도 올해로 30세를 맞이하게 되니 동창회보와 나는 동갑내기인 셈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동창회보의 역사가 결코 짧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30년 동안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서 여기까지 성장해 왔듯이 동창회보도 그간 많은 성장을 거듭해 왔다. 

 모교 교수 및 방송인, 언론인으로 구성된 논설위원만 29명에 달하고, 매달 10만부 이상을 발행해 28개 지방지부와 51개 해외지부를 포함한 30만 동문에게 배포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창회보가 그간 이룩해온 양적 성장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동창회보는 그동안 다소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나 모교 소식 또는 동문들의 소식 전달에만 중점을 둬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대 동문이라면 누구나 어디서든 쉽게 인터넷을 통해 동창회보에 접속할 수 있게 된 만큼 모교와 관련한 여러 쟁점사안에 대해 쌍방향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온라인 내의 공간 마련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전자메일 등을 통해 동창회보의 적극적인 홍보가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금년으로 동창회보가 而立의 나이를 맞이한 만큼 이제는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서울대 동문에게 다가와야 할 것이다.


새 전환점 맞이한 '계란 한판'
鄭珉쫛(경제95-00) 한국신용평가정보 대리

 삼십 개를 꽉 채웠다고 요즘엔 서른 살을 '계란 한판'이라고 부른단다. 보통 30년을 한 세대라고 하니 이 정도면 한 세대가 바뀌었을 세월이다. 한편으론 서른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30세를 위한 특판 보험 판촉전화와 배에 쌓이는 인격이 늘었다는 점을 빼고는.

 학부 시절에 한 선배의 생일날 '삼십 세'라는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선물은 했지만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도 제목은 많이 들어본 것 같다. 그만큼 서른이란 나이가 멀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 어느덧 서른이 돼 있다. 아마 마흔 살이 되어도, 쉰 살이 되어도 그렇지 않을까? 청춘의 변곡점이 있다면 이 서른 즈음이 될는지…. 한 시인 선배는 서른에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했는데, 필자에겐 올해가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 같다.

 돌이켜보니 대학에 입학한 해로부터 벌써 10년이 넘게 지났다. 우리 경제학부 95학번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언제 한 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주위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동창회보를 받아보지 못하는 친구들도 꽤 있는 것 같다. 한창 활동할 나이에는 직장을 옮기거나, 주소를 옮기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혹시 이런 것도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한 가지 방편으로 동창회 차원에서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소식도 전하고 연락할 일이 있을 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올 봄에는 오랜만에 에버랜드에 나들이를 가볼까. 여기도 개장 30주년이라는데.


학생일 때가 마음 편했는데
金成泰(대학원03-05)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

 길을 지나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아저씨'라 부르며 길을 물어볼 때면 그저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학생의 신분을 벗어난 지 벌써 1년이 지났건만 오랜 학생생활 덕분에(?) 아직까지는 '학생'으로 불릴 때가 마음 편한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필자가 살아온 날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고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학원 졸업 후 사회생활을 처음 하는 나에게는 서른 살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사회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놀란 것은 이곳에 많은 동문 선배님들께서 성과 있는 정책연구 보고서를 생산해 국방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모습을 바라볼 때면 같은 동문으로서 자부심을 느꼈고 나 또한 맡은 일에 대해서 성과 있는 결과를 내기 위해 더 분발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문이라는 것 자체 하나만으로도 가슴 뿌듯할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저 즐거울 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힘의 크기는 그 수의 단순 합계가 아닌 그 이상이라는 것은 시너지 효과에 의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동창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문의 눈부신 성과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서로 분발하는 계기와 동시에 격려가 될 수 있도록 총동창회에서 지속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배에게 더 많이 주는 선배
鄭武容(국사00입) 모교 4학년 재학생

 우선 서울대학교 동창회보 창간 30주년을 마음 속 깊이 축하드립니다. 우리 한국 사회를 이끌어온 서울대인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대동창회의 발전은 우리 사회의 지식 기반을 튼튼히 하는데 많은 일조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동창회보 30주년은 한국 사회의 발전에 있어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총동창회가 모교와 모교 후배들을 위해 장학사업 및 다양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지적 인프라 구축에 앞장서온 선배님들의 노력이 우리 한국의 경제 발전과 사회.문화.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게 하는데 큰 힘이 됐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러한 선배님들의 노력이 앞으로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들을 더욱 넘어설 것이고 한국을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드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선배님들이 모아 주신 장학금을 받고 학업을 이룬 후배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선배님들께서 주신 귀중한 장학금을 받은 만큼 저 역시도 20~30년 이후 지금 선배님들이 계신 자리에서 저의 후배들에게 선배님들께서 주신 것 보다 더 많이 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이 될 수 있게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다시 한번 서울대동창회보 창간 30주년을 축하드리면서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발전의 초석이 되는 서울대동창회가 무궁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기원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영자紙에도 많이 참여해주세요
曺珠鉉(영문03입) 모교 'The Quill' 편집장

 서울대동창회보 창간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동창회보의 제작에 참여해 오신 분들의 수고와 열정에 후배로서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이 기회를 빌려 선배님들께는 다소 생소할 서울대 영자신문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저희 영자신문은 'The SNU Quill'(이하 The Quill)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2005년 6월, 재학생들의 자체적 힘으로 창간됐습니다. 다른 대학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자신문을 발간해온 반면에 The Quill은 서울대의 첫 영자신문이었습니다.

 창간호 이후에 부원들의 열의와 꾸준한 노력으로 현재 4호까지 발간됐으나, 저희 영자신문은 지면디자인과 내용 등 여러 면에서 만족스런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옛말처럼, 언젠가는 The Quill을 서울대에 걸맞은 영자신문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현재 The Quill은 재학생들의 관심위주로 제작되고 있는데, 많은 인기를 보이는 섹션 중 하나는 바로 동문 인터뷰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선배님들이 사회에서 겪으신 도전과 성공이 저희에게는 많은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앞으로 The Quill내에 선배님들의 참여를 확대해 동문 인터뷰뿐만 아니라 동문 기고 등 동문과의 대화의 장을 넓혀 나가려고 합니다. 세계화 시대를 함께 이끌어나갈 선배동문과 재학생들간의 생각과 관심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선배님 여러분! 저희 인터뷰나 기고 요청에 적극 응해주시길 바라며 The Quill에 대한 많은 관심, 성원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