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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336호 2006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두 개의 눈으로 겹겹의 의도를 풀어내다



楊 孝 暻

(고고미술94-98)

MBC 사회부 기자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닐텐데, 필자는 대학시절 선생님들과의 대면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심하게 거북함을 느낀다거나, 얼굴이 화끈거려 말을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선생님들과 스스럼없이 점심을 함께 하거나, 별일 없이 연구실에 들러 잡담을 나눌 정도의 넉살이 내게는 없다. 아마도 선생님들에게도 내가 그리 살갑게 귀여운 제자는 아니었으리라.

 얼마 전 대학시절 스승이셨던 安輝濬선생님(고고미술사학과 교수)과 저녁 약속이 있던 날도 그랬던 것 같다. 지난 2월 28일 정년을 맞으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자 문화부 기자들이 마련한 半 공식적인 자리였다. 반가움과 또 그만큼의 서먹함. 동석했던 다른 기자들이 선생님의 회고담을 듣느라 즐거워할 동안, 나는 마치 몇 년 전의 대학 강의실에 다시 돌아와 앉아있는 듯한 묘한 느낌으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변함없이 차분하신 선생님의 말투, 그리고 간혹 가다 들리는 낯익은 에피소드들.

 순전히 내 추측일 뿐이지만, 미술사학을 공부하던 대학과 대학원 시절, 나는 선생님에게 귀염성있는 제자는 물론이고 그리 바람직한 제자 또한 아니었던 듯 싶다. 물론 내가 흥미로워했던 분야와 선생님의 전공이 다르기도 했지만, 딴에는 선생님의 방식에 나름의 불만도 있었으니 말이다.

 '너무 조심스러우셔, 너무 평이하신 거 아니야, 이런 식의 전개도 가능하지 않을까?' 뭐, 대충 이런 식의, 어린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씩은 가져볼 만한 종류의 불만 말이다. 그런 내 속마음을 아셨는지, 한번은 선생님이 이런 충고와 질책을 던지셨다. "함부로 추측하지 말게. 미술사는 그런 학문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 말하겠다는,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만 가르치겠다는 엄격함. 그 단순한 원칙에 주눅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좋은 미술사학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접고 기자가 됐다. 그리고 며칠 전, 다시 만난 나에게 선생님은 조선의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 말미에 이런 말을 건넸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간다(讀萬卷書 行萬里路)."

 만 권의 책에 만 리의 길. 물론 선생님의 말씀은 화가들도 지식을 쌓아야한다는 얘기의 와중에 나온 것이었지만 나에겐 그 말이 대학시절 들었던 그 한 마디의 질책, 함부로 추측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열 권을 읽은 양 말하지 마라, 한 권의 책을 읽었으면 딱 그만큼만 가라고 말이다. 나에게 주어진 한 명의 사람, 한 시간의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에게 들었을 딱 한마디. 그만큼만 쓰고, 그만큼만 판단하라고.

 기자가 된지 이제 햇수로 7년. 대학과 대학원을 모두 합친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무엇보다 팩트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그리고 절대 함부로 추측해서는 안되는 기자가 되어 자신을 만나러 온 제자를 보고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직 모자라다고 안타까워 하셨을까, 아니면 한켠으로 흐뭇한 마음을 가지셨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얼마 후면 선생님은 오래된 연구실의 문을 잠그고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학교에서 떠날 것이다. 그 작은 방에 쌓여있던 수많은 책들. 당신의 두 눈으로 한 점 한 점 뜯어보았을 수많은 그림들에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말이다. 그 그림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었던 겹겹의 의도를 선생님이 온전히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할까, 아니면 자신들을 오해하고 과대포장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까. 이것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들이 있다. 安輝濬선생님의 작은 두 눈 덕택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이 자신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씩 우리에게 풀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시작이야말로 한 폭의 그림들마다 제각기 품고 있을 겹겹의 의도를 풀어 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그다지 상냥하지도, 예의바르지도 못했고, 인내심이 뛰어나지도 못했던 많은 제자들 또한 당신이 우리에게 내보였던 선의와 열정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는 것.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를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