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호 2006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대입 사이버테러를 지켜본 뒤의 '씁쓸함'

高 貞 愛
(제약87-91)
중앙일보
정책사회부 기자
사이버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선 으레 그러려니 한다. 고질적인 문제인 악의적인 댓글, 이른바 '악플'에 대해서도 '사이버상인데...'라고 넘어간다. 우리는 그렇게 무심했거나 지나치게 관대했다.
그러나 더 이상 외면하고 있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경찰 수사 결과 지난해 12월 28일 대입 정시모집 원서접수 사이트 마비 사태 이면에 접수 서버에 과부하가 걸리도록 한 1천여 명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중 대부분이 수험생이라고 한다. 다 자발적 참여자들이었다. 정도가 심해 입건된 33명 중 단 한 명을 빼곤 모두 원서접수를 한 뒤 바로 사이버테러에 나섰다. 나머지 한 명은 고등학교 1학년이다. 원서를 접수한 오빠를 돕기 위해 사이버테러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 별 생각 없이 일을 벌였다. 한 학생은 "경쟁률을 낮춘다는 소리에 재미 삼아 접속했다. 실제 다운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원서접수를 위해 친구 두 명과 PC방을 찾았던 한 수험생은 접수를 마치자마자 사이버테러에 나섰다. 친구 둘은 옆에서 원서접수가 안 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한 수험생이 경찰의 전화를 받은 뒤 원서접수 회사에 보낸 e -메일에서 이들의 마음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오늘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트래픽 공격을 한 것이 적발되었다고요...그 당시에...여러 사이트를 돌다가 ○○사이트가 다운되어간다는 소리를 듣고...미리 원서접수를 했던 저로서는...그만...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중략〉 정말 그 죄가 큽니다...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데...그만 저만 잘해보자는 생각으로...그런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습니다....〈이하 생략〉"
경찰은 이들에 대해 "고의성이 없다"고 봤다. 또 "대부분 잘못을 쉽게 인정하더라"고 했다. 동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안타깝다. 안 됐다. 그러나 용서할 때 하더라도 드러난 문제점은 직시해야 한다.
이들이 한 일이 실제 눈에 보였다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대입원서 접수 마지막 날 거의 모든 대학 교문이 잠기거나 접수 창구가 차단됐다. 대다수 수험생은 영문도 모르고 닫힌 문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거나, 아니면 원서접수를 할 수 있는 대학을 찾아 피 말리는 질주를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과의 예상 경쟁률에 변화가 왔을 테고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고 여겼던 수험생 중 일부는 쓴맛을 봤을 것이다.'
심한 비약일 순 있다. 그러나 우리 청소년들이 대학 합격을 위해서 범죄 행위조차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있는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친구에게 갈 뻔한 피해에 대해 눈감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지난해 휴대전화 수능 부정사건도 겪었다.
미국에선 지난해 이런 일이 있었다. 하버드.MIT.스탠퍼드.카네기멜론.다트머스대 등 미국 최고 경영대학원이 지원자 2백여 명을 불합격 처리했다. 이들이 자신의 합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한 인터넷 사이트에 뜬 글대로 입시관리 사이트를 훔쳐보려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대부분 본 것이 빈 화면뿐이었는데도 그랬다. 알았든 몰랐든 해킹을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은 사이트에 접속한 1백19명 전원에 대해 불합격 처리했다. 스탠퍼드(41명)와 MIT(32명) 등도 마찬가지였다. 일각에선 가혹한 조치란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킴 클라크 학장은 "이번 행위는 모든 행위 중 가장 비윤리적이고 국제적인 리더를 배출한다는 우리 학교의 교육목표에 반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MIT 경영대학원 리처드 슈말렌지 학장도 "자신이 나쁜 일을 한다는 걸 몰랐을 리 없다"며 "윤리를 중시하는 우리로선 중대한 문제"라고 동조했다.
윤리 문제에서 우리라고 다를 순 없다. 이제라도 윤리 교육을 강화하는 등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의 정당성도 중요하다는 걸 가르쳐야 한다. 내 행복 못지 않게 남의 행복 또한 중요하다는 걸 알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또 얼마나 심각한 일이 벌어질지, 또 어떤 일을 겪게 될지 걱정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