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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호 2006년 3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소크라테스는 악법을 거부했다


 서울대 鄭雲燦총장이 지난 1월 23일 "악법도 법이라 지킨다"고 했다. 오는 5월 10일에 실시될 차기 서울대 총장선거의 관리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기로 결정한 심경을 언론에 밝히면서 나온 말이다. 지난해 5월에 개정된 교육공무원법이 그렇게 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악법도 법이라는 생각에서 고육지책으로 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鄭총장은 정부의 정책에 자주 과감하게 맞서오던 평소의 그 답지 않게 나약하게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에 이미 헌재에 제기해 놓은 개정교육공무원법의 위헌여부나 효력정지 여부를 헌재가 하루빨리 결정하라" 그리고 "직선제 총장선거를 선관위에 맡기도록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고 한 것 등을 보면 그 반대로 비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악법도 법"이라면서 독배를 들었다는 서양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를 떠올리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2천4백여 년전 아테네에서 젊은 제자들을 몰고 다니면서 당시 그리스의 직접민주정치를 비판했다. 20살 이상의 성인 시민권자(여자와 노예 제외)면 어중이떠중이라도 추첨으로 5백명의 평의원이 될 수 있고 시민총회에서 국사를 직접 결정할 수 있게 돼 있는 직접민주정치는 衆愚政治(Mobocracy)를 초래할 뿐이라고 했다. 도덕국가를 위해서는 철학(오늘의 학문)공부를 많이 한 두 세 사람의 寡頭政治(Oligarchy)를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직접민주정치를 즐기던 일반 시민(국민)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李淸洙

(정치59-63)

관정 이종환교육재단 상임고문

고려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소크라테스는 또 신은 하나라는 유일신을 주창했다. 사랑의 신, 전쟁의 신, 바다의 신 등의 다신을 믿던 당시 아테네 시민들의 종교관에 정면으로 배치됐다. 결국 요즘 말로 반 체제인사, 반 종교인사로 몰리게 된다. 그래도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존경받는 철학자로서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따랐다.

 권력 쪽에서 마지못해 "청년들을 부패시켰다"는 혐의로 구속은 했지만 함부로 다루지는 못했다. "중우정치를 초래할 수도 있다", "유일신일 수도 있다" 정도로 그 주장을 조금 누그러뜨리기만 해도 석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타협을 단호히 거부했다. 자신의 신념과 정의와 진리를 권력과 불의와 악법 앞에 단 한 치도 굽힐 수 없다고 맞섰다. 그대로 가면 처형이 명약관화했다.

 제자들이 마지막 구명수단을 썼다. 교도관들을 매수했다. "스승님, 0월 0일 0시에 감방 문을 나서기만 하십시오. 아무런 제지 없이 교도소를 나와 국외로 탈출하실 수 있게 다 해놓았습니다"라고 애걸했다. 소크라테스는 이마저 결단코 거절했다. "불의에 맞서지 않고 왜 비겁하게 도망간단 말인가. 실정법이 나를 처형하게 돼 있다면 차라리 내가 스스로 죽는 게 낫겠어. 독배를 가져 오라" 해서 태연히 마시고 갔다.

 악법도 법이니까 지켜야 한다면서 독배를 든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랬다면 자신의 소신을 굽히고 악법과 타협해서 목숨을 건졌어야 했다. 그러나 그 악법을 거부하는 가장 극명한 방법으로 독배를 든 것이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후세사람들이 독배를 잘못 해석해서 만들어 낸 말일뿐이다. 제자 플라톤이 사후에 쓴 '대화'의 크리턴이나 파이든 등 어느 편 어디에도 그렇게 직접 한 말은 없다.

 우리의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1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고 한 말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일부 중학교용 역사교과서에서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면서 독배를 들었다"는 일화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과거 유신과 권위주의 시대의 준법정신 교육에 무리하게 따르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시지탄이라 할 정도로 옳다.

 그러나 이 의견에도 현실적으로는 문제가 있다. 악법이라도 그것이 합법적 절차에 따라 개폐되기 전까지는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 거부나 비합법적인 개폐투쟁은 위법으로 다스려지게 된다. 비록 국민 저항권적.혁명적 차원의 투쟁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일단 불법이 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가 아니라 악법도 일단 법이라는 현실을 부정하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헌재의 의견은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악법은 법이 아니니까 아예 지킬 필요가 없다고까지 발전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처방은 내놓지 않아 아쉽다. 또 더 큰 문제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헌재가 그런 의견을 내놓은 데 있다.

 그렇다면 이번 총장선거 관리문제에 대한 鄭총장의 대응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잘못 알고 있는 대로 악법도 법이니까 무조건 따르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제대로 알게 된 대로 자리나 목숨을 걸고라도 거부 투쟁을 할 사안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와 잘 알게 된 소크라테스의 중간노선으로 나가는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 같다. 현 단계로서는 일단 적절한 대응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