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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호 2006년 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丘仁煥 문학과 문학 교육연구소장


 지난해 11월 18일 '운당 구인환 문학전집(전 27권)' 출판기념회를 가졌던 한국 현대문학의 산 증인인 丘仁煥(국어교육50 ­54 모교 명예교수 . 문학과 문학 교육연구소장)동문. 그에겐 50년간 간행한 장 . 단편집, 수필과 기행문, 연구서, 평전, 대담, 서평만큼이나 오래된 '소장품'이 있다. '문학과 문학 교육연구소'를 방문하면 먼저 색이 바랜 소파와 탁자가 눈에 띈다.

 "30년이 다 돼 갈 겁니다. 동대문구 답십리에서 살던 때부터 있었는데 이후 모교 연구실을 거쳐 마지막으로 이곳에 오게 됐죠. 온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이 소파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가족회의를 열곤 했는데, 서로간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켜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줬습니다. 그래서 볼품은 없어도 여기에 앉으면 마음이 편하고 또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과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자녀 . 사위 . 조카 등 9명이 교수로 활약

"아침식사만큼은 꼭 가족과 함께 해요"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며 국어교육학자인 丘동문은 한 가지를 하기에도 어려운일인데, 이 모두를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인물로 꼽힌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이러한 기질은 丘동문의 자녀에게도 이어진다.

 1남3녀 중 장녀 丘在玉(가정교육68 ­72 한국방송통신대 가정학과 교수 . 자연과학대학장)동문과 3녀 丘在珍(국문85 ­89 국민대 교양과정부 전임강사)동문은 대학교수로, 차녀 丘在娟씨는 중학교 교사 및 극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 큰사위 金榮枰(행대원71 ­73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 前한국행정연구원장)동문과 막내사위 李政鉉(국문85 ­91 . 경대원95 ­97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동문도 후배양성에 매진하고 있으며, 차녀 丘在娟씨의 장녀, 즉 丘仁煥동문의 외손녀인 曺하나 양은 2005년 모교에 입학했다.

 丘仁煥동문의 남동생 丘昌煥(조선대 명예교수 . 문학평론가)씨 가족인 제수
文瑛淳(국문51 ­55 前광주수피아여중 교장)동문을 비롯해 큰조카 丘在雲(경제77 ­81 전남대 경제학과 교수 . 교무부처장)동문과 막내조카사위 柳順泰(국문85 ­89 서울시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동문이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 또 조카딸 丘在香(기악80 ­84 호남신학대 음악학과 교수 . 피아니스트)동문과 조카며느리 金恩英(기악81 ­85 광주대 음악학부 겸임교수 . 피아니스트)동문은 연주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좌로부터 네 번째 丘在弼 曺하나, 한 명 건너 丘在玉,丘仁煥,李政鉉, 
한 명 건너 丘在珍, 맨 끝 金榮枰동문

 한국현대소설학회장, 국어국문학회 대표 등을 역임하고 각종 문학상을 휩쓴 丘仁煥동문의 '책 사랑'은 어릴 적 시골집 사랑방에서부터 시작된다.

 "할아버지와 동네 어르신들께서 사랑방에서 삼국지에 대해 토론하시면, 저는 다른 방에서 배를 짜고 있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춘향전을 읽어드리곤 했어요. 그때부터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죠. 국어교육과를 택한 것은 후학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일을 동시에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출강하거나 방에서 글을 쓰는 동안 시부모님을 모시고 집안살림을 책임지며, 자녀들을 올곧게 키운 것은 모두 아내(吳順禮여사)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해준 것이 없어 이 두 가지는 꼭 같이 해요. 저녁시간에 일일드라마 한 편을 시청하고, 인근 보라매공원을 산책하는 것이죠."

 장녀 丘在玉동문과 사위 金榮枰동문은 방송통신대 조교 시절 알게 돼 결혼하게 됐는데, 먼저 좋아한다고 프로포즈한 것은 丘在玉동문이었다고. "서로 좋아하는 것 같은데 말을 꺼내지 않아 在玉이가 먼저 고백했더니, 사위가 충분한 자격(?)을 갖춘 뒤 적절한 때에 프로포즈하려고 했다고 말하더랍니다. 오히려 먼저 다가간 것이 그간 오해도 풀고,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죠."

 유일한 공학도인 장남 丘在弼(화학공학71 ­79 한국산노프코 사장)동문은 현재 펄프, 도료, 제지, 잉크, 건재 산업용 화학첨가제 등을 제조하는 중견기업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2004년 무역의 날에는 '수출 1백만불 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자들과는 제 좌우명이기도 한 '고원한 이상, 평범한 생활'에 대해 논하며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었는데, 자녀들과는 그렇지 못해 항상 미안했어요. 그래서 이것 하나는 철저히 지키고자 노력했죠. '아침식사는 정해놓은 시간에 가족과 함께 먹는다.' 가족들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며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어요. 지금도 안부전화 할 때면 신신 당부합니다. '아침밥은 가족이 꼭 함께 먹어야 된다'고요."

 정년 퇴임한 후에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丘仁煥동문은 현재 장편 하나를 구상중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쓰고 싶은 게 많아요. 그래서 제 인생은 항상 '…ing'입니다. 소위 돈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어도 자녀들이 하나같이 작품활동이나 기술개발 또는 학문적 성취감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어서 흐뭇합니다." 〈表〉
 丘仁煥동문의 서울대 가족

장녀      丘在玉(가정교육68 ­72)

장남      丘在弼(화학공학71 ­79)

3녀        丘在珍(국문85 ­89)

사위      金榮枰(행대원71 ­73)
        李政鉉(국문85 ­91 .
                경대원95 ­97)

제수      文瑛淳(국문51 ­55)

조카      丘在雲(경제77 ­81)

조카딸  丘在香(기악80 ­84)

조카         金恩英(기악81 ­85)
며느리
 
조카사위 柳順泰(국문85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