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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호 2006년 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기사에는 '오폭' 가능성이 상존한다


 세상에 오발탄은 없습니다. 무심결에 뱉은 말이 누군가를 상심시키기 십상인데, 사회적 公器에 담은 세심하지 못한 글로 인한 필화야 이만저만하겠습니까?
 사실 관계가 명확히 잘못된 오보가 아니더라도, 글(기사)에는 '誤爆'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타인 마음을 아리게 했던 전과를 진술하면서 결백과 순정을 호소할 마음은 없습니다. 언론을 위한 변명을 의도한 바는 더더욱 아닙니다.

 1996년 여름, 군영 막사를 떠내려보낼 만큼 비가 참 많이도 내렸고 그 폭우로 한 부대 병사 십수 명이 취침 중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합동 영결식에서 오열하는 부모들을 붙잡고 가슴에 묻은 아들들 한자이름 . 나이 . 주소를 열심히 캐묻는 동안 사나운 제 팔자를 무진 탓했지만, 그런 자책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2002년, 이번에도 강원도 물난리 얘깁니다. 교통이 거의 두절된 그 마을에서 극적인 태풍 피해자를 찾아 헤매다 Q씨를 가까스로 만났습니다. 세간이 거의 거덜난 그의 한숨을 다 들었을 무렵 "다른 이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니 내 얘기는 쓰지 말아 달라"는 뜻밖의 하소연을 듣고도, 기사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Q씨는 그로 인해 입장 난처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이 알 권리고 무엇이 공공의 이익인가요?




朴 瑛 錫(사회87 ­91)

조선일보 인터넷뉴스부 기자





 애틀랜타 올림픽의 피날레인 마라톤 경기 직전, 기대주 이봉주 선수의 충남 본가는 금메달의 꿈에 부푼 가족과 이웃들로 일찌감치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그 날 마감 시간 사정상 금메달을 딸 것을 상정한 채 가족과 이웃의 감격적 소감을 미리 받아 놓았는데, 그 희열을 은메달에 맞춰 減해서 써야 할 때는 처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그렇다고 이 선수가 쟁취한 은메달이 덜 소중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IMF, 그 소름 돋던 시기에 항암 효과가 탁월하다는 상황버섯을 노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는 이가 몸소 찾아왔고, 덥석 미담사례로 소개했습니다. "무료로 배부한 것은 맞는데 그건 극소량이고, 나머지는 돈을 내고 구입하라고 했다"는 독자의 항의성 전화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 얘기입니다.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기엔, 독지가 然하는 위태로운 사업가들이 많을 수 있고 그로 인해 마음 상할 이들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모 그룹 로비 청문회 당시 여권 실세의 돈주머니처럼 언급된 한 사업가 집에 찾아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를 만난 뒤 마치 심리전 벌이듯 대화했던 새벽 수 시간의 즉석 술자리는, 그 직전 몇 시간의 집 앞 잠복보다 훨씬 고됐습니다. 자정 무렵 집에 쳐들어 온 불청객에게 못 마시는 술까지 내주었던 그 분은, 시간이 흘러 '혐의 없음'으로 묻혀졌고 기사를 묻었던(작성하지 않았던) 사실로 구차하게 자위했습니다. 저와의 심야 대화가 세간의 의심을 잔뜩 받고 있던 그분에게 解怨의 시간이라도 되었길 간구합니다.

 "당신은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서점인들에게 심대한 상처를 남겼습니다. 즉각적인 해명과 정정을 요구합니다." 서울 도심에 큰 책방이 사라진다는 뉴스를, '도시민에게 문화적 쉼터가 사라진다'면서 제법 비장한 풍으로 쓰고 난 뒤 제게 보내진 항의 메일이었습니다.

 종로서적 . 태평서적 등 중대형 책방이 잇따라 사라지고 그 문화공간이 패밀리 레스토랑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면서, 하필 강남으로 이전해 멀쩡하게 영업중인 D서적을 서울 중심가에서 폐업한 서점 목록에 포함시켰던 겁니다. 그 서점을 찾아가 사죄하고, 수도권에 통근 . 통학하는 고객들을 위해 새벽 일찍 열어 늦은 밤 문을 닫는, 대를 이은 그들의 분투를 담아 '서점인들의 아름다운 고집'이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정정 기사를 대신한 뒤에도 스스로를 향한 분풀이는 되지 않았습니다. D서적은 그 책 포장지 그림이 아직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중학시절 즐겨 찾았던 책방이었기 때문입니다.

 모 상호신용금고에서 고객 예금인출 사태를 빚어 놓아 거센 항의를 받았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찔끔합니다. 스무 번 넘게 전화취재를 하면서 향토어의 복모음 발음을 단모음으로 잘못 알아들은 사실에 억울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습니다. 사투리를, 그것도 제 본향 발음을 못 알아들어 소동을 빚었다는 일화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믿어 줄까요?

 숨 넘어갈 만한 사건 . 사고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생길 판에, 화끈한 오보도 아니고 왠 김빠진 閑談을 늘어놓았나 하실 동문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홉 명이 각광 받는 기사라도 소외될 수 있는 한 명까지 배려해야 한다는, 새해 맞이 초심의 되새김쯤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