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호 2006년 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노벨상은 저변 탄탄하고 국가과학 수준 인정받아야 가능"
국가석학 '홍일점' 白明鉉교수

최근 국가석학(Star Faculty)에 선정된 과학자 중 유일한 여성인 모교 화학부 白明鉉(화학6771)교수는 전이금속화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매년 여러 국제 학술회의에서 초청강연을 하며 동양인 여성과학자 처음으로 '국제순수 및 응용화학 총연맹(IUPAC)' 무기화학분과 최고위원으로 선출됐다. "학자는 연구결과로 말해야 한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한 白교수를 어렵게 만나 국가석학 선정 소감과 향후 연구계획 등을 들어봤다.
- 국가석학에 선정된 소감 한 말씀.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세계 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SCI) 피인용 횟수의 합계가 1천회 이상 된 과학자 중 기준을 충족한 분에게 연구비를 지급한다고 해서 신청한 것뿐인데, 국가석학 이란 이름이 붙어 언론에 크게 보도될 줄은 몰랐어요. 또 국가석학을 노벨상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 조금 부담이 되요. 노벨상은 한 개인이 독특한 연구를 했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뒤따라오는 과학자가 많아서 새로운 학문분야가 발전을 해야 가능한 것이죠. 저변이 튼튼하고 그 나라의 과학수준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습니다."
- 연구비 지원 사업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이전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양보다 질을 최우선으로 했다는 것이 다른 점입니다. 예전에는 '얼마나 많은 논문을 썼나', '영향력 있는 학술지에 몇 편이 실렸나' 등 양을 기준으로 연구가치가 측정되곤 했거든요."
- 어느 논문의 인용이 가장 많았나요.
"97년 이후에 쓴 소재관련 논문에서 인용이 많이 됐어요. 거대고리 화합물을 이용해 초분자 재료를 만든 논문인데, 처음 시도한 것이었고 여러 가지 기능성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라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 인용이 많이 된 비결이 있다면.
"한국식으로 보면 논문을 많이 쓰는 스타일이 아니죠. 하지만 다른 사람이 개척하지 않은 분야를 찾아 도전하죠. 남이 한 것을 모방하는 것은 저랑 맞지 않아요. 논문도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생각을 하고 지극 정성을 들여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을 만듭니다. 새로운 분야의 주제를 완벽성을 기해 만들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완벽주의 때문에 학생들이 힘들어하지는 않나요.
"힘들 거예요. 대충대충 넘어가지 않으니깐. 실험도 미심쩍으면 다시 하고 데이터도 의심스러우면 처음부터 다시 기본값을 얻으라고 해요. 과학이라는 것은 잠정적인 진리거든요. 절대 진리가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그 잠정적인 진리마저 엉터리가 되면 과학이 존재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진리라고 믿을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검증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힘들지 모르지만, 학생들에게 그렇게 함으로써 '과학은 철저해야 하는 것'이고 '파고들어야 하는 분야'라는 것을 인식시켜주고 싶어요."
- 애착이 가는 연구라면.
"저를 가장 애 먹였던 연구가 있어요. 온실효과를 내는 이산화탄소를 메탄가스로 바꾸는 땅 속 박테리아의 모델화합물에 관한 연구인데 화합물을 다루기가 굉장히 고생스러운 연구였죠. 그 논문을 미국의 한 학회에 보냈는데, 심사위원들이 선례가 전혀 없는 결과라는 이유로 거절했어요. 3년을 더 연구하며 고치고 썼죠. 나중에 다시 보낼 때는 A4용지 80장이 넘더라고요. 심사위원들이 리뷰과정 없이 무수정 통과시켜 논문을 낸지 2달만에 미국 화학회지에 나왔어요. 보통 6개월 정도 걸리는데. 고생을 많이해서, 이 논문에 애정을 많이 느끼죠."
- 최근 연구하는 분야를 말씀해 주시죠.
"현재 수소 저장체 소재를 연구하고 있어요. 수소자동차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게 수소 저장체거든요. 전 세계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수소를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는 소재를 만들 수 있을까, 연구중입니다. 현재 물에 담그고 빛만 쪼여주면 수소가스를 영구적으로 발생시키는 고체를 구상하고 있어요. 또 수소가스만 집어넣으면 휘발유를 발생시키는 고체도 생각하고 있고요. 잘 될지 모르겠지만, 도전해 보는 거죠."
- 50대 후반이신 데 아직도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시네요.
"제가 처음 교수직을 맡았을 때 50세가 넘으면 '은퇴를 한다'고 동료교수들에게 선언한 적이 있어요. 젊은 시절엔 50세 넘으신 교수님들 보면 '왜 아직까지 여기 계시나' 싶었거든요. 게다가 나이 들어서까지 여자과학자란 소리 듣기가 좀 그랬죠. 그런데 아직까지 하고 있네요. 가끔 동료 교수님들이 왜 아직도 여기 있냐고, 약속 지키라고 농담하죠. 여전히 계속 하고 싶은 연구가 있으니…."
- 우리 나라 화학 수준은.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이에요. 역사는 짧은 편이지만 교수님들 수준은 일본과 거의 비슷합니다. 서울대도 미국의 웬만한 주립대보다 훨씬 낫다고 봐요. 미국으로 유학 가려는 학생들에게 초 일류대를 가지 못할 바에는 여기서 공부하라고 권하는 편이죠.
그런데 저변이 너무 취약해서 걱정입니다. 화학자 수가 일본의 10분의 1 밖에 안되고 젊은 층으로 갈수록 더 열악해요. 일본, 중국은 계속 늘고 있는데, 한국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머리 쓰는 순수 학과는 점점 인기가 떨어져요. 어렸을 때부터 단답형 시험에 길들여져 있어서 머리 쓰는 것을 싫어하는 거예요. 과학적 마인드를 심어줘야 하는데, 지금 교육으로는 답이 없어요. 이공계 과학기술이 없으면 경제도 없는데 큰일입니다."
- 남편인 徐正憲교수님과 캠퍼스 커플이라고 들었는데.
"학부 2학년 때 실험 짝이었는데 평생 짝이 됐죠. 당시에는 밤늦게까지 실험을 할 때가 많아 어느 날 둘이 저녁밥을 먹고 돌아오니깐 실험실 칠판에 온갖 낙서가 다 돼 있는 거예요. '잘 어울린다', '둘이 사귀어라' 등 요란하더라고요. 사실 그때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게 계기가 돼서 사귀게 된 것 같아요. 학교에서 늘 만나는데도 항상 연애편지를 보내줬어요. 지금도 둘이 주고받은 연애편지를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 연구하랴, 아이들 가르치랴 많이 바쁘실 텐데, 집안 일은 언제 하세요.
"22살 때 학부 졸업하고 바로 결혼해 같이 유학을 갔어요. 유학 가서 2년 만에 아이를 낳고, 아기 키우면서 박사학위도 받았죠. 평생을 집안 일 하면서 공부하다 보니깐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냥 할 만해요. 집에 가도 앉을 틈도 없이 계속 움직이죠. 화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지지고 볶는 요리도 꽤 잘하는 편이에요."
-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요.
"평생을 공부하시는 분이세요. 올해 연세가 여든이신데, 얼마 전까지 운전을 하셨어요. 컴퓨터도 굉장히 잘 다루세요.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이메일로 좋은 시, 아름다운 동영상을 보내 주시곤 하세요. 요즘엔 게임도 즐기는 것 같더라고요. 어렸을 때 보면 늘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모든 라디오 채널 돌려가면서 영어공부를 하셨어요. 조리사 자격증도 있고 수영, 수상스키 등 운동도 잘 하세요. '가장 귀한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란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지식 . 재능 등을 키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하라는 말씀이셨죠. 어머니는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신 분이세요."
- 화학과 여자동창회 회장도 하고 계신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전통적으로 이과 중에서 화학과에 여학생이 많았어요. 지난 81년 權東淑(52 56) . 元利淑(54 58) . 金明子(62 66)동문과 제가 주축이 돼서 여자동창회를 발족했죠. 현재 56회 졸업생까지 2백14명이 회원으로 있으며 매년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정기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후학들에게 한 말씀.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고생을 덜하고 편한 것만 찾는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삶은 내가 나를 뛰어넘어 살아야 보람되고 행복하답니다. 왜 사람들이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를 정복할까요?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이공계를 특별히 기피할 이유는 없죠. 바꿔 생각해 보면 남들이 안 하는 분야를 연구하게 된다면 이름을 떨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자연과학은 꼭 필요한 분야입니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그 기쁨을 많은 학생들이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南>
1948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모교 화학과 졸업 후 74년과 76년 美시카고대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77년부터 모교 화학교육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0년부터는 화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97년 전 세계에서 여성으로는 최초로 국제 과학저널인 'Coordination Chemistry Reviews'의 편집위원으로 선정됐으며, 현재 'European Journal of Inorganic Chemistry', 'Bull. Chem. Soc. Japan' 편집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1년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수상, 2004년 '닮고싶고 되고싶은 과학자'로 선정된 바 있다.
▲白明鉉 교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