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334호 2006년 1월] 기고 건강법

마라톤 16번 완주, "오늘도 나는 달린다"


 

沈 洋 弘(국문64-71)탤런트


고교를 졸업하던 해(1962년)부터 필자는 어떻게 해서 연극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그것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오늘날까지 연극배우, 방송 연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자연 불규칙한 생활에 식사시간도 일정하지 않고 잠도 충분치 않으며, 무엇보다 강적은 공연이나 녹화가 끝난 후 뒤풀이로 마시는 막걸리, 소주, 맥주 등 각종 주류이다. `박카스'의 후예들이라고 떠들며 핑계 반, 농담 반으로 예술가연 한 것이 문제였다. 간혹 극적 성과는 있었겠지만 그것은 미비했고, 대부분 술이 주는 일시적 편안함과 고통에 탐닉했던 것이다.
 이것 때문에 나에게는 청춘이 없다. (노랫말처럼) 마로니에 그늘 아래서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버린 것이다. 최루탄 연기 매운 거리엔 연극이 끝난 관객들의 돌아가는 발걸음이 바쁘고, 세느강(?) 위의 바라크에서 통행 금지의 술을 마시고….
 명동 국립극장 근처의 `은성'과 장충동으로 이사간 극장에서는 족발을 안주로 삼아 술과 향연(심포지엄까지는 아니고 순전히 술을 먹는 핑계로)을 벌였다. 당연히 나의 건강은 무너졌다. 군대 가기 전에는 학림다방 의자에서 일어나기가 힘들었을 정도고, 졸업한 후에는 배가 딱딱해서 숨을 쉬어도 뱃가죽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다. 안되겠다! 살려면 뛰어야 했다.
 90년대 말, 여행에서 알게된 대한항공 사무장(김부근 씨)과 처음 양재천에 나왔다. 1950년 여름, 민둥산을 넘어 하늘 밑의 첫 닭이 우는 집을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함께 피난 갈 때 걸었고, 이듬해 1 . 4후퇴 때는 얼어붙은 문경새재를 걸어서 넘었다. 그리고 1962년 1월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했을 때, 사관학교 격납고에서 진해 우체국까지 단독 군장으로 구보를 했던 기억이 났다.
 이것이 달리기의 육체적 기억이 되었던지, 처음에는 2백m를 못 뛰다가 차츰 한강 쪽으로 진출해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 반포와 동작대교를 거쳐 한강철교를 지나 여의도를 통과하고 행주대교를 돌아오게 됐다. 물론 한참 연습할 때 얘기다. 비가 오면 다리 밑에서 몸을 숨겼다가, 또 겨울에 언 길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뛰고 또 뛰었다.
 이렇게 해서 10km, 하프코스 대회는 빼고 2001년 충주호를 일주하는 42.195km의 마라톤을 완주하게 됐다. 지난해 가을 춘천마라톤대회까지, 풀 코스를 16번 완주했다. 뛰는 동안 3.4kg의 몸무게가 감량되고, 그 이튿날까지 체지방이 타서 그런지 온돌에 군불을 땐 것처럼, 온 몸이 후끈하고 뜨뜻하다. 이렇게 해서 간신히 건강을 지키고 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전주 - 군산 1백리 길을 달리는 전군마라톤이다. 꽃샘바람에 벚꽃이 하얗게 마구 날리는데, 정말 환장하는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