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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호 2006년 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安泰玩 모교 화학생물공학부 명예교수


장남 . 사위는 경제전문가, 차남은 모교 교수로 활약

"서두르지 않고 쉬지도 말며 날마다 최선을 다해"


앞줄 좌로부터 세 번째 안태완동문, 뒷줄 좌로부터
안철효, 안철희동문, 한 명 건너 박정수동문

 "우리 나라가 보릿고개를 넘어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기술을 개발해 공장을 건설하고 제품을 생산하면서부터입니다. 그때는 정말 뛰어난 능력을 가진 기술자들이 공장에서 땀흘리며 공업화를 이뤄냈고, 무엇보다 서울 공대생들이 큰 몫을 해냈습니다. 지금도 각 기간산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분들 가운데 모교 출신이 가장 많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양보다 삶의 질을 따지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생활수준이 높아졌으면 그만큼 기술자들에 대한 대접도 나아져야 하는데, 별로 달라지는 게 없으니 어느 누가 힘들게 공부해서 적은 월급으로 지방에서 손에 기름을 묻히며 일을 하겠습니까?"
 고분자공학 권위자로서 모교에서 훌륭한 공학도를 배출하고, 기술연구소에서 신제품 개발과 제품의 품질 향상을 위해 평생을 바친 安泰玩(화학공학52-56 모교 화학생물공학부 명예교수)동문. 그는 가족 소개에 앞서 우리 나라 이공계에 대한 걱정부터 털어놓았다.
 정부 기관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틈날 때마다 대책을 강구했던 安동문은 지금은 차남 安哲熙(섬유고분자공학87-92 모교 재료공학부 교수)동문과 함께 이공계의 앞날을 고민하고 있다고.
 "퇴임 후 그동안 하고 싶었던 서예도 배우고, 음악도 마음껏 즐기며 오래된 카메라로 이곳저곳의 풍경들을 담고 있습니다. 조금 딱딱한 학문을 오래 하다보니 관련 책도 안 쳐다보게 돼요. 메말라진 감성도 되찾고 그렇게 조용히, 큰 욕심 없이 남은 인생을 보내고 싶어요. 이 늙은이가 목소리를 높인들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젊은 세대보다 낫겠습니까? 우리 공대 후배들이 꿋꿋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랄 뿐입니다."
 1녀2남 중 차남 安哲熙동문이 부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공계를 택한 반면, 장남 安哲孝(경제86-90 법무법인 율촌 경제전문 변호사)동문은 부친의 의도대로(?) 사회계통을 전공하게 됐다. 게다가 사위 朴釘洙(경제81-85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동문도 교수로 활동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30여 년간 공학분야를 공부하다 보니 제 아이들은 분야가 다양하고, 상대적으로 덜 힘든 문과를 보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사실 장남 哲孝가 수학실력이 뛰어나고 이공계 성향이 짙어서 어릴 적부터 경제학을 권유했습니다. 哲孝는 취미가 다양한데, 그 중에서 스포츠 관람을 제일 좋아했어요. 대입시험 기간이었던 지난 86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이름과 종목 등을 노트 뒤에 빼곡이 적어 경기결과를 체크하며 이에 대한 평론을 늘어놓기까지 했으니까요."
 "막내 哲熙는 책을 많이 읽고 글재주가 뛰어나 독후감 대회에서 상도 많이 탔어요. 유머러스하고 감정이 풍부해 문과로 갈 줄 알았죠. 그런데 형이 경제학과를 갔으니 나라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겠다며 3개월 간 저와 대립했는데, 결국 아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지금은 가고 싶은 길을 가게 한 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교수시절, 哲熙가 제 강의도 듣고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연구실에 들르곤 했는데,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대화를 참 많이 나누는 편입니다."
 장남 安哲孝동문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MBA까지 마쳤으나 다시 Law School에 들어가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 5년간 미국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현재 법무법인 율촌에서 경제지식을 토대로 국내 기업의 M&A, 채권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사위 朴釘洙동문 역시 경제학을 전공했으나 모교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심의관을 겸하며 예리한 분석력과 뛰어난 입담으로 각종 학회 및 방송에서 토론자로 또 사회자로 활약하고 있다. 朴釘洙동문의 집안과는 어릴 적부터 잘 알던 사이로, 朴동문의 여동생과 장녀 安惠暎씨와는 같은 대학 동기동창생이라고.
 한편 安泰玩동문은 자신을 시대의 `행운아'라고 부른다.
 "일제 식민시절과 6 . 25전쟁 와중에도 이렇게 대학을 나와 외국유학도 하고 모교 교수로 평생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자녀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신 선친 덕분입니다. 경남 함안의 작은 시골에서 5남 중 막내로 태어나 마산까지 기차통학을 하며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기에 이후 좋은 기회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그는 4년 전 古稀 기념으로 쓴 `서두르지도 말고 쉬지도 말고'라는 자서전을 소개하며 새해 소망을 들려줬다.
 "매년 연말이 되면 자녀들과 함께 고즈넉한 커피숍에 앉아 새해에 해야 할 일을 쓰곤 합니다. 저는 지금도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여 천리가 되듯 너무 서두르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쉬지도 말며 날마다 새롭게, 기쁜 마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계획한 것을 최선을 다해 실천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새해에도 우리 가족과 그리고 모든 동문들이 기쁜 마음으로 계획하시는 일들을 모두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表〉
安泰玩동문의 서울대 가족

장남 安哲孝(경제86-90)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차남 安哲熙(섬유고분자87-92)모교 재료공학부 교수
사위 朴釘洙(경제81-85)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