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3호 2026년 10월] 오피니언 논단
AI 시대 행정혁신…뭐가 달라져야 하나
AI 시대 행정혁신…뭐가 달라져야 하나

권혁주(정치82)
한국행정연구원 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AI 기술 행정에 적절히 활용하면
의사결정 정당성 확보에 도움
효율적인 AI 시스템 유지 위해
요약된 개조식 문서도 바뀌어야
AI(인공지능)가 행정 현장에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경기도 화성특례시의 대민서비스 ‘화성In’은 관내 외국인 거주자가 외국어로 민원을 신청하더라도 공무원이 AI를 활용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행정혁신 사례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도 인공지능 기반 업무관리 플랫폼인 ‘온AI’를 구축하여 공무원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시스템을 통해 공무원들은 문서 작성과 업무보고는 물론 원격업무와 화상회의도 수행할 수 있으며, 보다 신속한 의사결정도 가능해졌다.
AI를 통한 행정혁신은 이미 세계 주요국에서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영국과 싱가포르는 AI 도구를 행정업무 전반에 도입하여 공무원의 업무를 보조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미국은 특허 심사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AI를 심사·규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AI 활용 성과에 관한 분석에 따르면, AI가 공무원의 업무 부담을 상당 부분 줄이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AI를 행정에 활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기존 행정업무에 적용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AI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와 행정업무의 특성 및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공무원 간의 유기적인 협업이 필수적이다. 공무원이 업무에 사용되는 데이터의 성격과 흐름을 정확히 이해하고, 행정의 비효율성을 파악하여 개선 방안을 제안할 때, AI 기술 전문가도 이를 바탕으로 행정업무에 적합한 AI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를 행정에 적절히 활용하면 행정의 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의 일관성과 형평성도 제고할 수 있다. 자동화된 AI 시스템을 통해 행정처분의 일관성을 높임으로써 행정청의 의사결정이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AI 활용에 따른 위험성에도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정부가 구축한 사회복지 부정수급 탐지 시스템은 여러 정부기관이 보유한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여 부정수급 가능성이 높은 개인과 법인의 목록을 작성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소송에서 네덜란드 법원은 해당 시스템이 개인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아무리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권리와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26년 1월부터 인공지능기본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인공지능 산업의 기반 조성과 활성화뿐만 아니라 AI의 윤리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규제의 기본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및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인공지능을 ‘고영향 인공지능’으로 정의하고, 관련 사업자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사업자가 스스로 고영향 인공지능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고, 이에 해당할 경우 위험관리 방안을 수립·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안전성,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도 요구하고 있다. 행정서비스와 관련 행정처분 등에 활용되는 AI 시스템은 고영향 인공지능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중앙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업무에 AI 시스템을 도입할 때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편, 효율적인 AI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행정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생성·입력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작성해 온 개조식 문서는 AI가 처리하기 어려운 데이터라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개조식 문서는 대면 보고를 전제로 작성된 요약 보고서이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 없이는 AI조차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행정 과정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되기보다는 소수의 담당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나아가 AI를 통한 효율적인 행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행정조직의 위계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 중심의 업무방식을 개선하는 조직 차원의 개혁도 필요하다. 특히 정부가 해결하려는 사회문제의 특성에 맞는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을 중심으로 유연하게 운영되는 문제해결형 조직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조직을 인사·재무관리 등 안정적인 행정 운영을 담당하는 기존의 행정조직과 병행하여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결국 행정의 일하는 방식과 조직 운영 원리를 대폭 개선하여 행정의 투명성과 객관성, 전문성을 높인다면 AI를 통한 제대로 된 행정혁신도 가능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