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83호 2026년 10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나는 뭘로 웃기지?” KBS 공채 개그맨이 멕시코로 간 까닭

스페인어로 스탠드업 코미디 “1만명 앞에서 공연 목표입니다”
“나는 뭘로 웃기지?” KBS 공채 개그맨이 멕시코로 간 까닭


사진=메타코미디 제공

김병선(체육교육07) 스탠드업코미디언·유튜버 
 
스페인어로 스탠드업 코미디
“1만명 앞에서 공연 목표입니다”

“너 북한에서 왔어? 북한은 위험하잖아.” 멕시코의 한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 객석에서 날아온 질문에 무대 위의 한국인이 받아친다. “맞아. 위험하지. 그런데 멕시코 사는 네가 그걸 왜 걱정해? 핵이나 총알이나.” 객석이 웃음으로 들썩였다. 마이크 하나로 현지 관객을 웃기는 한국인은 구독자 108만 명의 유튜브 채널 ‘코미꼬’를 운영하는 김병선(체육교육07·사진) 동문. 그는 왜 지구 반대편에서 스페인어로 사람들을 웃기고 있을까. 9월 17일 서면으로 질문을 보내고 영상으로 답을 받았다. 그가 거듭 꺼낸 단어는 ‘재미’였다.

어릴 때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공부하는 건 축구에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이도 저도 아닌 생활을 고2 때까지 했어요.” 고3이 되자 친구들을 따라 공부를 시작했는데, 해보니 재밌었다. 재수 끝에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들어갔다. 재밌고 좋아하던 체육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생각이었다. 

대학에선 남을 웃기는 재미를 발견했다. 어릴 때는 말을 더듬어 친구들이 웃으면 비웃음으로 받아들였다. 대학에서는 같은 웃음도 다르게 들렸다. “서울대에 가고 나니까 자신감이 올라갔는지 ‘내가 웃겼나 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발표하는 게 좋아졌죠.”

교사의 길을 다시 생각한 것은 페루에서였다. 3학년을 마치고 KOICA 봉사단원으로 파견돼 2년 반 동안 체육을 가르쳤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좋았지만 직접 겪어본 교사의 책임은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책임감 없는 멘트’를 칠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귀국 후 강사가 되는 길을 생각하며 돌잔치 MC와 판촉 행사 등 사람들 앞에 서는 경험을 찾아다녔다. 그때 즐겨보던 ‘개그콘서트’의 신인 개그맨 모집 공고를 봤다. “저것도 경험이다” 싶어 지원했는데 2013년 KBS 28기 공채에 합격했다. “그러면서 제 인생이 꼬였죠.” 웃으며 한 말이지만 방송은 녹록지 않았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쟁쟁한 동료와 선배들 사이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했다. 결국 대학로 무대를 찾아 기본기를 익혔다. 그러자 더 큰 질문이 남았다. ‘나는 뭘로 웃기지?’

그때 페루에서 사업하던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국 음식 행사를 여는데 스페인어도 하고 개그도 할 줄 아는 그에게 진행을 부탁했다. “한국에서 하던 옛날 조크를 스페인어로 바꿔서 했는데 빵빵 터지는 거예요. 그때 ‘이게 나만의 캐릭터가 될 수 있겠다’ 싶었죠.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동양인이라는 캐릭터요.” 남들이 잘 가지 않은 길이 보였다.

마침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축구팀이 촬영할 사람을 구했다. 보수 없이 숙식만 제공한다는 제안에 그도 조건을 걸었다. “다만 저녁 시간만 나에게 자유를 달라.” 밤에는 코미디를 해야 했다. 

그렇게 향한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공연장에서 그의 코미디 인생을 바꾼 장르를 만났다. 한 사람이 마이크 하나로 두 시간 동안 관객을 웃겼다. “깜짝 놀랐어요. 그전까지 저는 스케치가 유일한 코미디인 줄 알았거든요. 공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물어봤어요. 그게 스탠드업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도 밤마다 무대에 올랐다. 말과 문화가 다른 사람을 웃길 확신은 있었을까. “확신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사람을 웃겨봤으니 시간이 필요할 뿐이죠. 이 사람들도 결국 웃는 걸 좋아하잖아요.” 인스타그램에 올린 공연 영상이 ‘갓 탤런트 에스파냐’ 제작진의 눈에 띄어 출연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비자 문제로 귀국한 뒤에는 임용시험을 고민하고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때 시작한 것이 유튜브였다. 그래도 무대는 그리웠다. 하지만 국내에는 공연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 이미 무대가 많은 곳에서 해보면 어떨까. 멕시코를 찾아가 살펴봤다. “스탠드업 신이 훨씬 크더라고요. 기회도 많았어요. 코미디로 성공해서 코미디로만 먹고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싶었죠.” 그에게 멕시코는 계속 무대에 올라 부딪힐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한 달 여행은 정착으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현지 영주권도 얻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수월하진 않다. “한국이었으면 안 이랬을 텐데 싶을 때도 있어요. 아내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다가도 “한국에 살았다면 외국에서 살고 싶어 했을 것”이라며 “지금 있는 곳에서 재미있는 일에 집중하려 한다”고 했다.

모르는 것은 여전히 많다. 다른 코미디언의 말을 알아들었는데 정작 관객이 왜 웃는지는 모를 때도 있다. 반대로 자신이 현지 문화를 몰라 하는 이야기에 관객이 웃기도 한다. “문화에 대한 무지가 저의 무기가 되기도 해요.” 해외로 나설 용기를 줬던 ‘스페인어를 하는 한국인’이라는 특징을 두고 고민했다. “저도 ‘내가 너무 반칙 쓰는 거 아닌가, 내 특징만 이용해서 웃기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스탠드업은 결국 자기 특징을 이용해서 웃기는 분야라는 걸 깨달았죠.” 그렇다고 답을 다 찾은 것은 아니다. “아직도 진짜 제 특징 없이 텍스트만으로 웃겨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어요. 지금 내린 결론이 정답인지도 모르겠고요. 경험을 더 많이 하면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겠죠.”

멕시코로 갈 때 세운 목표는 10년 안에 한 시간짜리 스페셜 공연을 만들어 1000명 앞에 서는 것. 목표가 가까워지자 이제는 출발점처럼 느껴진다. 다음 목표는 1만 명이다. 그러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관점이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는 감탄까지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조크를 수시로 짜낼 수 있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습니다.” 훗날에는 ‘김병선이니까 할 수 있는 생각, 김병선이니까 줄 수 있는 웃음’을 가진 코미디언으로 기억되고 싶다. 재미있어 보여서 오른 무대에서 이제 그는 자신만의 웃음을 고민한다. 길은 계속 바뀌었지만 김 동문을 움직이는 기준은 여전하다. “저는 그냥 재미 따라갑니다.”

이정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