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호 2005년 12월] 기고 감상평
`국민 다수의 현재 정서'와 `국민 다수의 미래 행복'
李憲穆(농화학64 68)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농업정책연구소장 행정수반인 대통령과 국립서울대 총장이 교육정책의 근간을 둘러싸고 현저한 인식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盧대통령이 `학습세습'을 경계하면서 중․고교 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鄭총장은 `수월성 영재성 살리기 교육'에 더 중점을 둔다. 정치인일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접근이 국민 다수의 현재 정서를 크게 고려한 것이라면, 총장은 국민 다수의 미래 행복을 겨냥한 소수의 경쟁력 제고를 우선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동문까지도 모교를 비방하다니 어느 일간신문의 데스크 칼럼의 결론부분을 요약․인용한 글이다. 예리하면서도 지혜로운 분석이라는 생각에서다. 필자가 이 칼럼을 읽기 전까지는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가 서울대와 서울대인을 `공교육의 적'이요, 자기 대도 모자라 자식 대까지 최고 엘리트 계층이 되겠다고 벽을 쌓는 `천하의 이기주의자'처럼 매도되는 것에 무척이나 속이 상했었다. 비록 정치인이지만 동문까지 나서서 서울대가 비겁하다느니, 지성과 양식이 있느니 없느니 비방을 하고 나서는데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서울대와 서울대인을 비방하고 있다는 생각에 평소 애교심이나 동창의식이 거의 없던 필자도 무척이나 속이 상했었다. 교육전문가는 아니지만 `통합교과형 논술'시험을 보게 되면 과외열풍이 다시 불어 공교육이 무너질 것이라는 논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과외공부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모두 서울대에 가기 위해 과외를 하고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단지 조금 모자라는 성적을 올려서 자기가 바라는 학교에 가기 위해 과외를 하고 있을 뿐이란 생각이다. 과외공부를 해야만 서울대에 갈 수 있는 학생은 `서울대 커트라인' 전후에 있는 일부 학생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서울대 지망생 전부를 다 합쳐도 1만명도 되지 않는데, 서울대가 논술시험을 보면 과외열풍이 불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학습세습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 아닌지? `어려운' 논술시험을 치게 되면 서울대를 지망하는 학생들 중 탁월한 학생을 뺀 대부분의 학생들이 `논술과외'를 받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시험이 어려워지는 만큼 서울대를 지원하는 학생은 줄어들고, 서울대에 가기 위해 과외를 하는 학생 수 자체가 줄어들 수도 있는 게 아닌지? 오히려 서울대가 재능 있는 학생을 구분하지 못하면, 너도나도 서울대에 가겠다고 하는 통에 더 많은 학생들이 과외공부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대학서열화만 해도 그렇다. 획일적인 수능시험과 그 점수에 따른 대학지원이 오히려 서열화를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학교마다 신입생을 선발하는 기준과 과목이 다르고, 추구하는 분야가 다르다면 비교가 불가능해지고, 서열화도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실력 아닌 `간판과 패거리'로 출세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 0.1%의 영재를 뽑겠다는 것이 서울대의 이기주의라는 주장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0.1%에 속하는 영재가 차별화되지 않은 시험 때문에 서울대에 못 들어가고, 그보다 훨씬 못한 10%에 속하는 학생은 들어가게 됐을 때, 이것을 `기회균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울대에 들어오길 희망하는 영재를 서울대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서울대를 위한 것인지, 그 영재를 위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은가. 0.1%에 속하는 영재는 어느 학교에 가더라도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똑같다는 주장도 기가 막히는 얘기다. 당사자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나라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무시되는 전체주의국가가 아니지 않은가. 이런 영재들을 다 데려가서 서울대가 제대로 가르쳤냐하는 문제는 별개이다. 서울대 나온 사람들이 정부와 국회는 물론이고 민간에도 너무 많다는 비난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실력이 아니라 `간판과 패거리' 때문에 출세를 했다는 얘기다. 민간회사의 사장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단지 그 사람이 서울대 나왔다고 뽑을까? 임원으로 승진시킬 때, 단지 서울대 나왔다고 승진시킬까? 정부와 공공부문에도 거의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울대 출신은 선배․후배라고 봐주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과대학 선후배간의 유대도 다른 대학의 총동창회 선후배간 유대보다 약하면 약했지 강하지 않다. 서울대 출신이 많다는 것은 하나의 결과일 뿐이다(이 결과도 서울대 출신의 입장에서는 공평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많은 대학들이 선후배간에 스스럼없이 지내고, 서로 힘이 되어주는 것을 보면서도 서울대 출신들의 약한 동창의식이 나라 전체에는 득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서울대와 서울대인은 `외로운' 항변을 하면서 스스로를 성찰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스스로의 명예를 걸고 대학에서,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국민 다수는 왜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봐야 할 것 같다. 동시에 나는 일반국민의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라는 질문도 해봐야 할 것 같다. 필자도 `고시에 합격한 서울대인'의 꼿꼿한 자세로 `나라와 농업의 발전'을 위해 사심도, 후회도 없이 일했다고 자부했다. 이제 농민단체의 연구소장이 되어 내가 해온 농정(지금의 농정도 같은 흐름이지만)을 바라볼 때, 진정 농민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농정을 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이 최선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비록 지름길이 아니더라도 상대방과 함께 가는 길이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교에 대한 국민의 합리적인 정서가 생기도록 노력해야 서울대와 서울대인에 대한 정치권과 사회의 비난을 근거 없고, 불합리하다하여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엄연히 `다수 국민의 현재 정서'이기 때문이다. `다수 국민의 현재 정서'를 거슬러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게 민주주의국가가 아닌가. 총장님을 비롯한 많은 서울대인이 지향하는 `다수 국민의 미래 행복'도 `다수 국민의 현재 정서'를 무시하고는 이루는데 분명 한계가 있다. 물론 정치인들도 `다수 국민의 현재 정서'에 무조건 영합하기보다는 `다수 국민의 미래 행복'을 위해 설득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울대와 서울대인들도 `다수 국민의 현재 정서' 속에 `다수 국민의 미래 행복'을 중시하는 `합리적인 정서'가 생기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