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호 2005년 1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기자가 좋아(싫어)하는 취재원
金勇錫(동양사학86 92)경향신문 사회부 차장대우 체육부 프로야구 담당기자는 야간경기 때 9회 말에 동점 안타를 친 선수를 싫어한다. 역전 끝내기 홈런이 나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바에는 그냥 아웃되었으면 한다. 경기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조간신문은 하룻밤에도 몇 번씩 판(版)을 바꾼다. 각 판마다 마감 시간이 있다. 동점타로 연장전에 들어가 버리면 지방에 계신 독자들을 위한 신문의 마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경기결과를 아침에 신문을 볼 독자들에게 전해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연장을 부르는 동점타가 나오면 관중들은 짜릿함을 즐기며 기뻐하겠지만, 체육부에서는 곧잘 한숨 소리가 터져 나온다. 잦은 투수교체로 경기시간을 길게 끄는 감독 또한 반갑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필자가 지난 9월초까지 일했던 정치부의 경우 기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취재원은 전화 잘 받아주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말'로 먹고살고, 기자들은 그 `입'에 의존해 먹고산다. 말은 서로 주고받는다. 그런데 자신이 필요할 때는 전화를 곧잘 하면서, 정작 기자들에게 전화 올 만한 상황에 놓였을 때에는 휴대폰을 꺼버리거나 수행비서에게만 맡겨 의원님은 지금 통화가 힘드십니다라는 말을 계속 듣게 할 때는 절로 짜증이 난다. 지금은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어느 유력 정치인은 초선의원 때 밤에 귀가하는 승용차 안에서 곧잘 전화기를 붙들었다고 한다. 전화를 해 왔으나 회의 중이거나 중요한 약속으로 인해 통화를 하지 못했던 기자들에게 회신 전화를 해주는 것이다. 일선 반장급인 고참뿐 아니라 이른바 `말진'이라 불리는 막내 기자들의 전화까지 챙겨줬다. 그의 부지런함은 기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그에 대한 좋은 평가로 이어졌고, 정치인으로 성장하는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정치권과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치인은 자기 부음 기사 빼고는 신문에 나오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직종에 비해 정치인들은 언론에 자신을 알리는데 적극적인 것 같다. 많은 정치인들은 인간적으로 경쟁력이 있지만, 일부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허풍이 심하다. 이들은 자신이 지난 정권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했는지, 자신의 당내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자랑스레 이야기한다. 속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정치부에 갓 들어온 기자들에게 고참들은 정치인의 자기 자랑은 50%만 받아들여라고 충고한다. 정치부의 기피대상 취재원 중 하나는 현란한 자기과시형이다. 지금 필자의 출입처인 법조에서는 질긴 사람이 기피대상으로 꼽힌다. 피의자든 검사든 마찬가지다. 지난 추석직전 세간의 화제인 이른바 `안기부 X파일'과 관련, 어느 유명 인사가 소환된 일이 있었다. 조사는 밤 10시쯤 끝났다. 그가 검찰청사를 나갈 때 한 마디라도 듣기 위해 기자들은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러 자정이 지났지만 조사를 마쳤다는 그 인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새벽 2시쯤에야 검찰청사를 떠났다. 기자들이 이유를 알아보니 자신이 진술한 내용을 담은 신문조서를 4시간 가까이 읽고 또 읽었던 것이다. 신문이 끝나면 검사는 진술자에게 조서를 읽게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수사기관 청사를 벗어나고픈 마음에 긴 시간동안 꼼꼼하게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인사는 곁에서 지켜보던 담당 검사조차 지칠 정도로 자신의 신문조서를 4시간에 걸쳐 철저하게 읽고 또 읽었다. 그 사이 기자들은 집에 못 가고 밤하늘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대기를 해야만 했다. 피의자를 길게 붙잡아 놓기로 유명한 검사도 있다. 소환된 피의자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불려온 사람이 귀가하는 지를 살펴봐야 될 기자들 또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조사 도중에 긴급체포 돼 귀가를 못 하는 경우도 왕왕 있고, 참고인으로 불려왔다가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유명인이 검찰 청사에 올 경우에는 청사를 나가는 순간까지 신경을 곧추 세워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검찰 기자들 세계에서는 정도 이상으로 피의자를 잡아두는 검사에 대한 평판이 좋을 리 없다. 13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다보니 이런 저런 출입처를 다니며 다양한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기자로서 좋아하고 존경할 만한 분들을 적잖게 뵈었다. 이 분들의 공통점이라면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심껏 하는 분들이다. 아울러 이 분들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고 있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난처한 상황에서라도 적극적인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