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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호 2026년 10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로봇 기술과 AI 결합에서 한국 경쟁력 찾아야”

10년간 950억원 지원받는 국가연구소 “세계 인재들 오고 싶은 연구소 만들 것” 젠슨 황 서울대 방문 강연 가교역 세계적인 로봇학회 차기 회장도 맡아 
"로봇 기술과 AI 결합에서 한국 경쟁력 찾아야”

조규진(기계설계92) 서울대 로보틱스 국가연구소 소장 
 
10년간 950억원 지원받는 국가연구소
“세계 인재들 오고 싶은 연구소 만들 것”
 
젠슨 황 서울대 방문 강연 가교역
세계적인 로봇학회 차기 회장도 맡아 
 
인공지능(AI)이 컴퓨터 화면을 벗어나 현실 세계로 나오고 있다.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가 열리면서 로봇은 세계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섰다. 미국과 중국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막대한 자본과 인재를 투입하고 있다. 한국 역시 세계적인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서울대가 로보틱스 국가연구소를 출범시켰다. 정부로부터  10년간 950억원을 지원받는 대형 연구 거점이다. 연구소를 이끄는 조규진(기계설계92) 소장은 세계 최고 인재가 오고 싶어하는 연구소를 목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조 소장은 1993년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재학 시절 고 주종남(기계75) 교수의 ‘창의공학설계’ 수업을 통해 로봇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활동한 뒤 서울대 교수로 돌아왔다. 30여 년 전 강의실에서 시작된 작은 로봇 만들기 경험이 오늘날 국가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진 셈이다. 최근 미 전기전자공학회 산하 로봇자동화학회 차기 회장으로 선출됐다. 10월 10일 서울 양재역 인근 식당에서 김광덕(정치82) 본지 편집인이 조 소장을 만나 한국 로봇 연구의 현주소와 미래, 서울대의 역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대 로보틱스 국가연구소를 어떻게 운영해 나갈 생각입니까.
“오랫동안 생각해 온 것은 로봇 연구의 생태계 조성과 활성화입니다. 좋은 생태계란 사람들이 모이고 싶어 하고, 그곳에 오면 필요한 자원과 네트워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로봇을 만들고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연구를 잘하는 연구소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보틱스 연구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야 세계의 좋은 인재들이 모이고,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들도 모입니다. 세계적인 연구소가 되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국가연구소 지정으로 첫 단추는 잘 끼웠다고 봅니다.”

-로봇과 피지컬 AI를 헷갈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념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로봇의 뇌가 피지컬 AI입니다. 그동안 로봇에서 부족했던 뇌 부분을 AI가 채워주면서 피지컬 AI란 용어가 급부상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로봇 기술이라고 봅니다.”

-피지컬 AI 시대에도 결국 로봇 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뜻인가요.
“AI는 빠르게 평준화되고 있습니다. 챗GPT, 클로드, 제미나이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불과 몇 달 사이에도 성능 차이가 좁혀지거나 순위가 뒤바뀝니다. 어느 정도 발전하고 나면 AI는 누구나 비슷한 수준으로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하드웨어는 그렇게 빨리 따라잡을 수 없어요. 로봇의 손발과 몸체를 만들고, 실제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술은 오랜 경험과 제조 역량이 필요합니다. 결국 경쟁력은 하드웨어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고 봅니다.”

조 교수는 세계 로봇 경쟁의 판도를 ‘뇌와 몸체’에 빗대 설명했다. 미국이 로봇의 뇌에 해당하는 AI에서 앞서 있다면, 중국은 몸체를 만드는 하드웨어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는 몸체를 가진 쪽이 더 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에도 기회가 있다고 보십니까.
“한국은 로봇 분야에서 적어도 세계 4위 안에는 든다고 봅니다. 분야에 따라 3위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산업용 로봇에서는 일본이 여전히 앞서 있지만 휴머노이드 등 새롭게 떠오르는 로봇 분야에서는 한국이 빠르게 치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AI의 격차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하드웨어와 제조 기술, 로봇 생태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로봇 연구 생태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아직도 연구 목표를 정해놓고 ‘이 기술을 개발하라’는 식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구자들은 그 목표에 맞춰 제안서를 쓰고 연구비를 받습니다. 물론 이런 방식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생각지도 못한 혁신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중국을 보십시오. 휴머노이드 로봇이 주목 받자 수백 개 기업들이 등장했습니다. 기술을 공유하고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생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특정 기술을 개발하라고 하면 한두 기업이나 연구팀이 그것을 맡는 방식입니다. 기술이 사회 전체로 확산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결과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좋은 결과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남들이 정해준 문제를 잘 푸는 것만으로는 세계를 선도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연구자의 자부심입니다. 제가 과거 칼럼에서 ‘과학기술인의 자부심’을 강조한 적이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불완전한 아이디어라도 자신의 믿음을 갖고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평가하고 결과를 요구하기보다, 가능성 있는 사람에게 믿음과 지원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혁신이 나옵니다.”

-규제 문제도 자주 지적하셨습니다.
“특히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로봇 연구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한다고 해봅시다. 아직 개발 중인 기술인데 사람에게 적용해 실험하려면 여러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실험을 하기 어려워집니다. 저는 이것을 식칼에 비유합니다. 식칼도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식칼을 살 때마다 허가받고, 설계를 조금 바꿀 때마다 몇 달씩 심사를 받지는 않잖아요. 로봇도 안전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위험하다는 이유로 연구개발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실험과 혁신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합리화해야 합니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로봇을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봇을 활용하지 않아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 기업이 해외로 떠나고, 그 결과 훨씬 많은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로봇은 사다 놓는다고 바로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에 맞게 개선하고 관리하고 활용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깁니다.
과거 사람이 하던 납땜 작업을 이제 로봇이 많이 하지만, 산업 전체의 일자리가 단순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일의 종류가 바뀐 것입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물론 AI 자체는 기존 일자리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봇을 두려워하기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합니다.” 

조 소장이 강조하는 로봇 철학은 인간 중심의 로봇이다. 연구소가 집중하는 분야도 생활형 로봇, 웨어러블 로봇, 의료 로봇이다. 로봇을 얼마나 인간처럼 만들 것인가보다 로봇을 통해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게 될 것인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서울대 방문에 다리를 놨다고 들었습니다. 인연이 궁금합니다. 
“시작은 ‘창의공학 설계’ 수업이었습니다. 지난해 이 수업의 로봇 제작대회에서 33년 만에 여학생 팀이 우승했습니다. 당시 엔비디아의 매디슨 황이 한국에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편지를 보내 서울대 학생들을 만나 격려해 달라고 초청했습니다. 매디슨 황은 젠슨 황의 딸이기도 하지만 엔비디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여학생들이 로봇을 만들고 우승했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학생들에게 좋은 자극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4월 서울대에 와서 학생들에게 강연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다음에는 아빠를 데리고 오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정말로 젠슨 황을 데리고 왔습니다. 저에게도 약속을 지켰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조 교수님도 원래부터 로봇 연구자가 되려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아버지가 공군 조종사여서 어릴 때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력이 나빠져서 비행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고등학교 3학년 때 항공학과에 지원하려 했더니 담임 선생님이 기계설계학과에 가면 비행기도, 자동차도, 로봇도 만들 수 있다고 권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맞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새롭게 등장하는, 움직이는 하드웨어는 모두 로봇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론도, 자율주행차도 결국 로봇의 한 형태입니다.”

-마지막으로 AI 시대를 살아갈 서울대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학생들이 자꾸 ‘나는 앞으로 무엇이 될까’를 고민합니다. 그런데 저는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정말 풀고 싶은 문제가 생기면 거기에 힘을 쏟으면 됩니다. 지금은 AI 덕분에 문제를 정확히 알고 해결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과거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창업도 결국 남들이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상을 많이 경험하고, 여러 문제를 들여다보고,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처음부터 인생의 목표가 명확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 내가 풀고 싶은 문제를 찾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준비하면 됩니다.”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입니다. AI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오래전부터 중요했던 기본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의 모습과 현재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바로 문제입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그 간격을 메워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학생들이 학점을 받기 위해서만 공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기르기 위해 공부해야 합니다.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을까 걱정하기보다, AI를 활용해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하십시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큰 기회의 시대입니다.” 정리=김남주 기자 


고 주종남 교수 ‘창의공학 설계’ 강의 1호수강  
 
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의 출발점에는 고 주종남 교수와 제자 조규진 교수의 각별한 인연이 있다. 주 교수는 현송교육문화재단을 설립한 일신제강 창업주의 아들로, 1992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이듬해 ‘창의공학 설계’ 수업을 개설했다.

조 교수는 이 수업의 첫 수강생이었다. 학생들이 직접 로봇을 설계하고 제작해 해외 대학 학생들과 겨루는 경험은 그의 연구와 교육 방향을 결정한 계기가 됐다. 이후 주 교수의 지도로 석사과정을 마친 조 교수는 미국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거쳐 서울대 교수로 돌아왔다.

“그 수업이 1년만 늦게 생겼어도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조 교수는 “주 교수가 연구에만 머물지 말고 대학과 사회의 발전, 더 넓은 연구 생태계를 살피라고 거듭 당부했다”고 회고했다. 교육·연구·창업을 하나로 잇는 로보틱스연구소 구상에도 스승의 가르침이 깊이 배어 있다.

현송교육문화재단은 서울대 로보틱스연구소의 건립과 운영을 위해 200억원을 기부했다. 조 교수는 기술 발전과 융합, 인재 양성을 중시하는 재단의 뜻이 연구소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대담 : 김광덕(정치82) 본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