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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호 2026년 9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님'과 '당신' 사이의 여백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발간 100주년의 의미와 재해석


김용섭 (대학원83)
시인
전북대 로스쿨 명예교수
S&L 파트너스 변호사

1. 『님의 침묵』을 다시 읽는 출발점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은 1926년 5월 20일 회동서관에서 발간되었다. 이 글은 발간 100주년을 맞아 시집을 단순한 연애시나 민족 저항시로 규정하지 않고, ‘님’과 ‘당신’이라는 핵심 호칭을 중심으로 작품의 다층적 의미와 만해의 사상적·실천적 세계를 새롭게 해석한다.『님의 침묵』에는 「군말」과 「독자에게」를 제외하고 모두 8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시들을 분석하면 ‘님’만 등장하는 시가 34편, ‘당신’만 등장하는 시가 36편이며, 한 작품 안에서 두 호칭이 함께 쓰인 시가 6편이다. 또 ‘님’과 ‘그대’가 함께 표현된 시가 2편 있어, ‘님’이 등장하는 시와 ‘당신’이 등장하는 시는 각각 42편에 이른다, 이러한 수치는 우연인지 의도적인 배열인지 단정하기 어렵지만, 『님의 침묵』에서 ‘님’과 ‘당신’이 동등한 비중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시 제목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드러난다. ‘요’로 끝나는 경어체 제목이 9편이며, ‘사랑’과 ‘당신’을 포함한 제목이 각각 6편이다. ‘님’과 ‘나’를 포함한 제목은 각각 5편이고, ‘이별’을 포함한 제목도 3편이다. 이는 시집이 사랑, 이별, 존칭,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주요 정서적 축으로 삼고 있음을 말해 준다.

2. ‘님’의 다층적 상징
이 글은 ‘님’을 유교의 이일분수(理一分殊)와 불교의 화엄사상에 연결하여 해석한다. 이일분수란 하나의 근원적 원리가 다양한 현상으로 나뉘어 드러난다는 뜻이다. 화엄사상 역시 하나의 진리가 개별적인 존재와 사건 속에서 서로 걸림 없이 드러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님’은 하나의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연인, 부처, 조국, 민족, 중생 등 여러 의미가 겹쳐 나타나는 열린 상징이다. 따라서 ‘님’을 곧바로 민족이나 절대자 하나로 환원하는 것은 작품의 풍부한 의미를 축소할 수 있다. 『님의 침묵』의 ‘님’은 독자의 종교적·사회적·개인적 경험에 따라 다르게 구체화된다. 어떤 독자에게는 떠나간 연인이고, 다른 독자에게는 잃어버린 조국이나 깨달음의 대상이며, 또 다른 독자에게는 구원과 해방을 기다리게 하는 존재일 수 있다.만해의 삶 자체도 이러한 다층성을 지닌다. 그는 승려로서 불교의 혁신과 개혁을 주장했고, 독립운동가로서 3·1운동과 신간회 활동에 참여했으며, 시인으로서 사랑과 이별, 상실의 감정을 노래했다. 그의 공적 활동과 사적 정서는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불교 개혁을 말할 때에도 민중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 작동했고, 사랑을 노래할 때에도 불교적 초월성과 시대적 아픔이 함께 움직였다.이러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결합은 단순히 만해가 ‘두 얼굴’을 지녔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인격과 사상이 여러 차원에서 동시에 작용했다는 뜻에 가깝다. 승려·독립운동가·시인·계몽가로서의 만해는 서로 분리된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복합적인 존재였다. ‘님’과 ‘당신’의 혼용은 바로 이러한 복합성이 시적 언어로 변형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3. 침묵은 부재가 아닌 적극적 표현
『님의 침묵』에서 침묵은 단순한 무언이나 포기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말로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사랑과 진리, 그리움과 신념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시적 형식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침묵은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자각하는 철학적 태도였다. 그러나 한용운의 침묵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의 침묵은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 너머의 의미를 시로 만들어 낸다.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백거이가 「독노자(讀老子)」에서 노자의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는 말을 비판적으로 되묻는 것도 같은 역설을 보여 준다. 정말 아는 사람이 침묵해야 한다면, 노자는 왜 스스로 오천 자의 글을 남겼는가라는 질문이다. 침묵과 말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침묵도 또 다른 형태의 언어이므로 침묵이 말을 낳고 말이 침묵의 의미를 밝히는 관계에 있다. 표제시 「님의 침묵」에서 님은 떠났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화자는 님의 부재를 말하면서도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님의 떠남과 화자의 부정, 침묵과 노래는 서로 충돌하는 듯 보이지만, 바로 그 긴장 속에서 작품의 핵심 의미가 형성된다. 침묵은 님의 부재를 나타내지만 동시에 님의 존재를 지속시킨다. 완전히 사라진 대상에게는 침묵조차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침묵한다는 것은 침묵을 나눌 상대와 관계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님의 침묵』의 침묵은 단절의 종결이 아니라 기다림과 관계가 계속되는 공간이다. ‘님’을 연인으로 읽으면 침묵은 이별의 확정이 아니라 사랑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여지가 된다. ‘님’을 불교적 진리나 절대자로 읽으면 침묵은 말 이전의 깨달음, 곧 적연부동(寂然不動)의 경지를 가리킨다. ‘님’을 조국과 민족으로 읽으면 침묵은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억압과 주권 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차가운 현실은 영원한 죽음의 땅이 아니라 해빙의 가능성을 품은 땅이다. 이때 침묵 속에서 님을 기다리는 일은 해방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일이 된다.

4. 문학에서 사회적 실천으로
『님의 침묵』 이후 한용운이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 신간회 활동과 소설 창작으로 옮겨 간 이유도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가 시를 포기했다는 뜻이라기보다, 대중 교화와 현실 개혁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다른 형식으로 확장했다는 뜻에 가깝다.만해에게 문학은 순수한 미적 장식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시·소설·논설·사회운동을 모두 대중을 깨우고 현실을 변화시키는 방편으로 이해했다. 『님의 침묵』의 열린 구성과 여백은 독자가 작품을 자기 경험 속에서 다시 해석하게 만들며, 이후 신간회 활동과 불교 개혁, 소설 창작은 이러한 시적 실천이 사회적·조직적 실천으로 이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문학적 형식에는 여러 영향이 결합되어 있다. 타고르의 『원정』과 『기탄잘리』에서는 ‘님’이라는 시어, 신앙적·애국적 분위기, 산문적 자연운율, 그리고 『님의 침묵』에서 군말- 본문-독자에게라는 형식면에서 타고르의『원정』에서 ‘서언-본문-독자여 이로 부터’로 이어지는 구성상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육당 최남선의 『백팔번뇌』는 만해의 초기 한글 자유시와 시조에 영향을 주었으며,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나타난 이별의 정한 역시 『님의 침묵』의 정서와 연결된다. 그러나 만해는 이러한 영향을 단순히 모방하지 않았다. 그는 한문 중심의 선시에서 민중이 읽을 수 있는 한국어 산문시로 나아갔다. 이는 언어의 전환인 동시에 귀족적 불교문학에서 민중적 불교문학으로의 이동이었다. 어려운 교리나 직접적인 정치 구호 대신 사랑과 이별이라는 친숙한 형식을 사용해 대중에게 다가간 점은 만해의 독특한 방편이었다.

5. 『님의 침묵』 발간 100주년의 의미
『님의 침묵』 발간 100주년은 한 권의 시집을 기념하는 문헌학적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 만해의 문학과 실천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다시 묻는 계기인 것이다. 만해의 시집 발간의 의미를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만해는 구원과 사회적 실천이 반드시 논설이나 조직 활동의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그는 연애시라는 친숙한 형식과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불교적 구제와 민족 해방의 방향을 담았다. 동시에 신간회 활동과 불교 개혁에도 참여함으로써 언어와 조직을 모두 실천의 방편으로 활용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무엇을 말하는가만큼 누구에게 닿는 언어로 말하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둘째, 『님의 침묵』은 해석의 개방성과 여백의 가치를 보여 준다. ‘님’과 ‘당신’ 사이에서 의미가 흔들리듯, 작품은 하나의 확정된 해석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신앙적 독자는 ‘님’을 절대자와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고, 연애시적 독자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민족적 독자는 그것을 조국과 해방의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작품의 의미는 저자에게서 완전히 고정되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자기화하고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생성된다. 셋째, ‘님’과 ‘당신’의 동일한 비중은 세속적 사랑과 성스러운 가치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둘은 서로 다른 대상을 가리키는 이분법적 기호라기보다, 하나의 근원적 진리가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서로 다른 감정으로 체험되는 방식이다. 사랑과 종교, 개인의 상실과 민족의 고통은 서로 충돌하면서도 하나의 시적 세계 안에서 연결된다. 그러므로 『님의 침묵』은 연애시와 저항시 중 하나로만 규정될 수 없으며, 인간적인 사랑을 통해 진리와 시대적 아픔을 함께 품어 낸 화엄적 문학으로 읽을 수 있다. 넷째, 발간 100주년을 맞은 오늘날에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독법이 필요하다. 『님의 침묵』을 민족주의적 저항시로만 읽으면 사랑과 수행, 개인적 정조의 의미를 놓치기 쉽다. 반대로 순수한 연애시로만 읽으면 식민지 현실과 만해의 사회적 실천을 삭제하게 된다. 필요한 것은 이 두 차원을 대립시키지 않고, ‘님’과 ‘당신’, 사랑과 해방, 침묵과 발화가 서로 얽혀 있는 구조를 이해하는 일이다.

6. 마치며
기존 연구에서는 대체로 ‘님’을 조국·민족·부처와 같은 초월적 대상으로, ‘당신’을 세속적 연인으로 구분해 왔다. 그러나 두 호칭이 동일한 비중으로 등장하고 일부 작품에서 혼용된다는 점은 이러한 이분법이 충분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만해에게 세속적 사랑과 불교적 깨달음, 조국에 대한 염원은 서로 완전히 분리된 대상이 아니라 서로 겹치고 스며드는 경험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님의 침묵』은 떠난 님을 기다리는 시집이면서, 부재를 존재로 바꾸는 시집이다. ‘님’은 연인·부처·조국·중생의 의미를 동시에 품고, ‘당신’은 그 초월적 의미가 구체적인 인간관계와 삶의 현장에서 체험되는 자리이다. 침묵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공백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진리, 해방의 희망을 지속시키는 적극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님의 침묵』 발간 100주년의 의미는 바로 이 열린 구조를 오늘의 독자가 다시금 시를 재해석하고 경험하는 데 있다. 『님의 침묵』은 과거의 한 시집이 아니라, 독자의 삶과 시대에 따라 새롭게 ‘님’을 발견하게 하는 살아 있는 텍스트다. 만해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특정한 답을 제시한 데 있지 않다. 그는 사랑과 고통, 종교와 현실, 개인과 민족 사이에 여백을 남겼고, 그 여백 속에서 독자가 스스로 진리와 구원의 의미를 찾아가도록 했다.

*김용섭 동문은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 83학번으로 입학해 1984년에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85년 2월에 법과 대학원에서 서원우 교수의 지도하에 법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 수료 후 독일 만하임대에서 로엘레케(Gerd Roellecke) 교수의 지도하에 법학박사(Dr. iur) 학위를 취득했다. 2020년에 한국불교문학에 신인상 수상하여 시인으로 등단했다. 현재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와 에스앤엘파트너스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학술서적 이외에 에세이집 <직필과 객설>(법률신문사, 2024), <법과 인문학의 길>(경인문화사, 2025), <성찰과 사유의 여적>(한누리미디어, 2026)을 출간했다. 현재 사계학회장, 영산법률문화재단 이사, 만해사상실천연합 법인이사, 서울대 총동창회 제31대 이사 등으로 활동하며 뉴스퀘스트에 [김용섭의 비교만필] 코너를 격주로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