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호 2026년 9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그때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김정남·김덕룡 동문, 그들의 묵묵한 헌신을 기억한다
그때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이용식(토목79)
문화일보 주필
본지 논설위원
김정남·김덕룡 동문, 그들의
묵묵한 헌신을 기억한다
역사는 주로 앞에 선 사람들을 기록한다. 수많은 모교 동문들이 각자 몸담은 분야에서 찬란한 업적을 남겼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역사를 만든 사람 모두가 앞에 선 것은 아니다. 특히 1970~1980년대의 민주화 운동은 당시 시대 상황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사람들이 많다.
최근 김덕룡(사회61) 동문이 ‘그때 거기 김덕룡이 있었다’라는 회고록을 냈다. 제목을 보는 순간, 김정남(정치61) 동문이 6년 전 출간한 대담(한인섭 교수, 77년 법학과 입학) 형식의 회고록 ‘그곳에 늘 그가 있었다’가 떠올랐다. 두 사람은 6·3세대로서 1964년 당시 문리대 학생회장과 문리대 학보 ‘새세대’ 편집자로서 한일협정 반대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고, 그 뒤 수배·도피·투옥을 되풀이하며 민주화운동의 궂은일을 도맡아했다.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인생의 만년(晩年)을 맞아 회고록을 낸 것은 자신의 역할을 과시하기보다 더 늦기 전에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는 뜻일 것이다. 알려지지 않았던 중요한 이야기, 부분적으로 알려졌던 이야기의 상세한 내용도 많다. 김지하 옥중 서신, 박종철 고문치사 폭로, 김영삼 단식투쟁 등 민주화의 굽이굽이마다 비선(秘線) 역할을 했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사실도 공개됐다. 요즘 정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제도적 원인의 하나로 지목되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사연이다. YS와 DJ의 인간관계에 직결되는 얘기도 있어 침묵해오다가 이제야 털어놓은 것 같다. 대강의 이야기는 전해졌지만 이렇게 자세히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YS도 자신의 회고록에서 양김 분열로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1988년 야권 통합을 위해 DJ의 소선거구제 요구를 수용했다는 정도로만 기록을 남겼다. 김덕룡 회고록에는 1988년 4·26 총선을 앞두고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이 1·2·3인 선거구제에 합의한 상태였다. 그런데 DJ가 문익환 목사-박세일 교수 라인을 통해 서신을 전해왔고, 그 내용은 ‘소선거구제를 받아주면 평화민주당을 해체하고 당을 통합해 총선을 치르겠다’는 것이었다. 참모들은 반대했지만 YS는 수용했다. 그러나 야권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고, DJ는 제1야당, YS는 제2야당이 됐다. 각자 그 시대에 치열하게 산 결과여서 선악을 지금 따지기는 힘들다.
두 사람은 요즘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오만과 무지를 걱정한다. 후배들이 새겨들어야 할 부분들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당시 그런 상황을 취재하는 기자였지만, 보이지 않는 헌신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제라도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그때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다. 언젠가 우리의 후배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동문이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