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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2호 2026년 9월] 오피니언 논단

서울대, 글로벌 퍼스트 무버 발원지 돼야

최고급 인력 양성 패러다임 밑바닥부터 재설정할 때, 대체 불가능한 혁신은 고유한 전문 분야와 AI 결합할 때 발생
서울대, 글로벌 퍼스트 무버 발원지 돼야
 

신종호(교육86)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최고급 인력 양성 패러다임
밑바닥부터 재설정할 때
 
대체 불가능한 혁신은 
고유한 전문 분야와 
AI 결합할 때 발생
 
챗GPT로 대변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의 충격파가 거세다. 과거의 기술 혁신이 블루칼라의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의료, 법률, 프로그래밍, 금융 등 화이트칼라의 고도화된 지식 노동마저 AI가 훌륭히 수행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기 앞에서 대한민국 고등교육과 최고 지성의 요람인 서울대학교는 무거운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과거 고도성장기 우리가 자랑해 마지않았던 수재(秀才)의 기준, 즉 방대한 지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해 주어진 정답을 도출해 내는 능력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가? 지식을 뇌에 단순히 소유하는 시대는 저물고, 외부의 방대한 지식 네트워크를 비판적으로 해체하여 새롭게 활용하고 연결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이는 곧 고등교육이 길러내야 할 최고급 인력 양성의 패러다임을 밑바닥부터 재설정해야 할 시점임을 의미한다.

첫째, AI 시대의 인재는 정답을 찾는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할 줄 아는 문제 정의자가 되어야 한다. AI는 프롬프트(질문)가 주어지면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완벽에 가까운 대답을 순식간에 생성하지만, 스스로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먼저 묻지는 못한다. 인간이 던지는 질문의 질이 곧 AI가 내놓는 최종 결과물의 질을 결정한다. 2023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컨설턴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공동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업무에 AI를 활용할 때, AI의 산출물을 무비판적으로 맹신하고 전적으로 의존한 그룹은 오히려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획일화된 사고에 갇히는 현상을 보였다. 반면, AI의 결과물을 날카롭게 검증하고 끊임없이 올바른 질문을 던지며 기계와 상호작용한 그룹은 압도적인 성과 창출을 이뤄냈다.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비판적 사고와 날카로운 질문 역량이 미래 리더의 최우선 조건임을 증명한 것이다.

둘째, 융합 교육의 패러다임을 ‘AI+X’에서 ‘X+AI’로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흔히 AI 시대의 인재 양성을 논할 때, 모든 학생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만들려 하거나 기술 자체를 중심에 두는 AI+X 접근법을 취하기 쉽다. 하지만 두 개념의 지향점은 완전히 다르다. AI+X가 인공지능 기술을 확고한 중심에 두고 다른 학문을 부차적인 응용처로 접목하는 관점이라면, X+AI는 자신이 깊이 파고든 전공 및 고유한 도메인 지식(X)을 굳건한 뼈대로 삼고, 그 위에 AI를 훌륭한 도구로서 장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최고급 인력이 단지 코딩을 잘하는 기술자가 될 필요는 없다. 중심을 잡아줄 깊이 있는 전공 지식이 부재하다면, AI 활용은 실체적인 문제 해결로 이어지지 못하고 얄팍한 도구주의에 머물고 만다. 대체 불가능한 혁신은 자신의 고유한 전문 분야를 기반으로 AI를 결합할 때 비로소 발생한다. 
미국 MIT가 10억 달러를 투입해 설립한 슈워츠먼 컴퓨팅 대학이 좋은 본보기다. 이들은 특정 학과에 국한하지 않고, 전공을 불문한 모든 학생들이 기초과학, 공학, 인문학 등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컴퓨팅 사고를 마치 이중언어(Bilingual)처럼 자연스럽게 구사하도록 학과 간의 낡은 장벽을 과감히 허물었다. 탄탄한 본연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AI 활용 교육이 훨씬 더 파괴력 있는 초학제적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

셋째, 대체 불가능한 인간 고유의 영역인 윤리와 공감의 내재화다.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통제하는 인간 고유의 가치에 강력한 프리미엄이 붙는다.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는 인간과 AI의 이상적인 협업 모델로 신화 속 반인반마(半人半馬)인 켄타우로스(Centaur)를 제시한 바 있다. 단일 슈퍼컴퓨터나 천재적인 단일 인간 전문가보다, 실력이 평범하더라도 자신의 직관을 바탕으로 AI의 한계를 완벽히 이해하고 훌륭하게 기계와 소통하며 협업하는 ‘인간+AI’ 팀이 최강의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딥페이크나 AI의 환각 현상(Hallucination) 같은 윤리적 위협을 제어하고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바로잡는 윤리적 판단력, 그리고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타인과의 연대 및 공감 능력은 켄타우로스형 인재가 갖춰야 할 필수 제어 장치다. 따라서 AI 시대일수록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통섭적인 인문학 소양 교육이 다시금 고등교육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초거대 AI가 인류의 지식 지형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지금, 고등교육의 근본적인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대학은 완성된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수하는 거대한 상아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생 스스로 실패를 무릅쓰고 질문을 던지며, 굳건한 전공 지식과 AI를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역동적인 창조적 테스트베드로 거듭나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 국가 발전을 최전선에서 견인해 온 모교 서울대는 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야 할 막중한 역할을 띠고 있다. 학과의 낡은 칸막이를 허물어 유연한 ‘X+AI’ 융합 생태계를 구축함으로써, 선진국의 지식을 빠르게 추격하던 패스트 팔로워 양성의 요람에서 벗어나 전 세계 고등교육이 앞다투어 벤치마킹하는 글로벌 퍼스트 무버를 탄생시키는 발원지가 되어야 한다. 

무모하게 AI와 지식의 양을 다투는 기계적 지식인이 아니라, 확고한 전문성 위에 AI라는 강력한 악기를 능수능란하고 윤리적으로 다루며 인류 사회의 비전을 연주해 낼 위대한 지휘자들을 모교가 앞장서서 길러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