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호 2026년 9월] 오피니언 추억의창
마로니에서 함춘까지
마로니에서 함춘까지

유형준(의학71)
시인·의학과문학접경연구소 소장
당시 의예과는 문리과대학 소속이었다. 의학의 문턱에 들어서기 전, 우리는 동숭동 교정의 자유로운 학풍 속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1971년 가을,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문리대 문화제 시화전에 필자의 ‘10월에’가 전시되었고, 그해 겨울 문리대 교지 ‘형성’에 실리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문학에 마음을 둔 의예과생들이 하나둘 뜻을 모았다. 마침내 1973년 2월 28일, ‘이바지하다’라는 뜻을 담아 ‘이바돔’ 창간호를 세상에 선보였다. 편집후기에 필자는 이렇게 썼다. “아슬아슬했다. 편집실을 들어설 때부터 나설 때까지 전혀 같은 심정이었다. 하여튼, 무던히도 끈질긴 단어들의 속임을 이겨낸 심정으로 끝낸다.” 권이혁 의과대학 학장님께선 격려사를 보내주셨다. “학창 생활을 맛본 인사라면 누구나 회지나 잡지를 통해서 향수를 느끼게 되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자기를 재인식하게 되고 때로는 반성의 자료로 삼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과거와 미래를 내다보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하고,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내다보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학사 일정은 늘 어수선했다. 본과에 올라가면 학업에 짓눌릴 거라는 강박감은 학생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다시 못 올 청춘을 온갖 경험으로 채우려는 만끽파와, 미리 공부하는 습관을 다지는 채비파였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300명이 넘는 의예과생은 늘 총학생회의 귀중한 ‘전력’이었다. 휴강과 휴교가 밥 먹듯 반복되던 최루가스 속 하루를 일기장은 이렇게 적고 있다.
“10월 13일. 춥다. 일어나기 싫은 날씨다. 등교하니 곧 휴강. 11시부터 총학생회의다. 자유 성토에 이은 거리 행진. 치열한 투석전과 페퍼포그의 접전. 선두에 섰으나 너무 과열한 탓인지 가슴이 몹시 콱콱거린다. 오후엔, 오전의 투석전과 페퍼포그를 까맣게 잊은 채, 의예과 시화전 안내 포스터를 들고 중앙대학교로 향했다.”

1972년 10월 마로니에 공원서 열린 문리대 문화제 시화전.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구수· 김철헌·유형준·하우송·김희주·권영탁(이상 의학71)·김영훈(72)·한진희(71)·은세윤(72)·한종수(71)
오전에 돌을 던지던 손이 오후엔 문학제 포스터를 들고 다녔다. 시대적 소용돌이와, 문학을 향한 열정이 거리낌없이 교차하던 때였다. 하루 안에서 두 개의 언어를 살아야 했던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세대가 감당해야 했던 이중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와중에도 예비 의학도의 생명 철학적 그릇을 알맞게 빚어주셨던 두 분 의예과장님, 철학과 안상진 교수님과 생물학과 강만식 교수님의 가르침. 선택 수강했던 미학개론 시간에 몇 쪽을 넘나드는 독일어 한 문장의 길이 앞에서 헐떡이던 숨 가쁨. 지금도 선명하다.
이윽고 본과에 진입했다. 소문과 달리 숨돌릴 틈은 있었다. 지금의 학생관 자리에 있던 허름한 서클룸에서 문예부 활동을 이어갔다. 10월 유신과 긴급조치가 잇따르며 활동은 멈춰 섰고 긴 침묵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이 흐른 2005년 7월 9일, 모교 문예부 동문이 다시 자리를 같이했다. “문예 교류로 친목을 다지고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이바지하자”라는 제안에 김구수, 은세윤, 최현림이 뜻을 보탰다. 하지만 얼마 뒤, 필자의 폐암 투병으로 창립 준비는 멈춰 섰다. 다시 움직인 것은 7년 뒤, 78학번 하은주와 서홍관이 합세하며 가속도가 붙었고, 드디어 그해 11월 2일 서울대 의대 동창회관에서, ‘함춘문예회’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국내 유일의 의대 동창회 문학 모임인 함춘문예회는, 강진욱, 김병준, 이종주 등의 열성 후배들이 합류하고, 매년 문예전과 문집 발간을 이어오며, 어느덧 15년째를 맞는다. 또 하나의 값진 보람은 30여 년간 끊겼던 모교 문예부의 부활이다. 후배들이 다시 시를 짓고 문학을 논한다는 소식은 가슴 벅찬 감동을 준다.
의학과 문학은 결국 인간을 향한다. 환자의 몸을 살피는 의학이 인간의 삶을 이해해야 하듯, 문학 또한 한 인간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가 살아온 시간을 헤아린다. 오십여 년 전, 『이바돔』을 창간하며 밤을 밝히던 시간은 일기장에만 남아 있지 않다. 오늘도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의사의 언어로, 시를 짓는 시인의 숨결로, 삶의 깊은 지층 아래에서 여전히 박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