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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호 2005년 1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추억의 창


국사개론 `F'학점 맞고 학자의 길 포기 데이트신청 위해 여학생 시험노트 빌려 申允植(사학55 ­59)前하나로통신 회장․한국유비쿼터스농촌포럼 공동대표  어려서부터 국사공부를 매우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우리 나라에서 출판된 국사개론 책은 모두 다 읽었을 정도였다. 특히, 李丙燾교수님께서 쓰신 `국사대관'은 한문이 많아 한자 옥편을 찾아보면서 30번도 더 읽었다. 나름대로 역사에 대한 취미와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토인비와 같은 석학이 돼보겠다는 건방진 야망과 함께 모교 사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러한 꿈들은 1년이 채 못 돼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입학 후 1년간 교양과정은 사회학과와 사학과 학생들이 함께 들었는데 영어 첫 시간에 朴忠集교수님은 영어 수필을 큰소리로 읽으셨다. 그리고 이 내용을 영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하셨다. 아무도 손을 든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 우리말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있냐고 물으니 사회학과 金璟東학우가 설명을 했고, 여학생 중에는 사학과 李仁浩학우가 대답한 것으로 기억된다. 교수님은 서울대생이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알아듣고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정작 나는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첫 시간부터 기가 죽기 시작했다.  그러나 필자에게도 자신 있는 과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李丙燾교수님의 국사개론 강의였다. 첫 강의를 들어보니 `국사대관'에 있는 내용 그대로를 말씀하셨다. 이미 `국사대관'을 30번도 더 읽어서 내용을 꿰뚫고 있던 터라 나는 슬그머니 교만한 마음이 생겼다. 국사개론 강의를 듣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1학기 동안 한번도 李교수님의 국사개론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1학기 기말고사를 치렀다.  뜻밖에도 국사개론에서 F학점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국사개론 F학점은 불가사의한 일이나 속으로 창피하기도 하고 감히 李丙燾교수님께 여쭤볼 용기가 없었다. 강의를 안 들은 죄가 분명히 있었으니…. F학점 사건은 입학하자마자 초라한 자기 존재를 인식하면서 결국 학자의 길을 포기하게 만든 첫 번째 요인이 됐다.  `대학신문'에 李崇寧교수님의 `학자가 되는 길'이라는 요지의 글이 실렸다. 거기서 교수님은 학자가 되는데 있어 필수적인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건강이 좋아야 하며, 둘째 집안에는 평생 돈을 걱정하지 않을 만큼의 경제력이 있어야 하며, 셋째 머리가 보통 사람보다 좋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 중 단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도 나쁘고 돈도 없는 데다 평범한 촌놈이었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재들이 더 열심히 노력하고 고뇌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학자의 길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고시시험을 봐서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결국 필자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됐다.  필자에게 대학시절은 낭만과 추억을 만들기에는 현실이 너무 어렵고 급박했다. 비록 이런 와중이었지만 필자에게도 즐거운 기억이 생각난다.  우리 과에는 4명의 여학생이 있었다. 이 분들은 워낙 공부를 잘한 관계로 나는 주눅이 들었고, 그녀들의 노트를 빌려 기말시험 준비하기에 급급했다. 그 중 가장 예뻤던 한 여학생에게 차나 한 잔 하고 영화나 한 편 같이 보자고 말하기 위해 몇 번이나 벼르다가 결국엔 󰡒노트 잘 봤어요󰡓하고 자신 없게 돌려주고 말았던, 가슴 두근거리던 추억이 남아 있다. 교수로 성공한 朴容玉․李仁浩학우, 가정주부로 성공한 金貞華․金鍾姬학우는 이제 모두 70세가 다 됐다. 다음에 혹 만날 기회가 있다면 호프집에서 생맥주나 한 잔 하자고 프러포즈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