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호 2026년 9월] 문화 나의 취미
“2062년 제가 100세 때 찾아올 핼리혜성 봐야죠”
강원 화천에 천문대 직접 만들어, 천체사진공모전서 대상 받기도
“2062년 제가 100세 때 찾아올 핼리혜성 봐야죠”

신범영(수학교육81) 전 경동고 교장
강원 화천에 천문대 직접 만들어
천체사진공모전서 대상 받기도
칠흑 같은 사막 한가운데, 신범영(수학교육81·사진) 동문의 손 아래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인공 조명은 없었다. 그림자를 만든 것은 머리 위를 가로지르던 은하수였다. 2016년 여름 칠레 아타카마 사막. 해발 약 3000m의 고원지대이자 도시 불빛에서 수백㎞ 떨어진 세계적인 천체관측지에서 그는 별로 가득 찬 밤하늘과 마젤란은하, 남십자성을 만났다. “은하수 때문에 그림자가 생긴다는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손 그림자가 보이더군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몽골과 호주, 미국과 지구 반대편 칠레까지 더 좋은 밤하늘을 찾아다니고, 희미한 별빛 한 장을 담으려 수백 시간을 들여온 신 동문을 서면을 통해 만나 수십 년째 별을 바라보는 이유를 들었다.
신 동문에게 별은 어린 시절의 고향과도 같다. 여름밤이면 은하수 아래 어머니 품에서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었다. 중학생 때 우연히 본 천문학 책 속 달의 크레이터와 안드로메다은하는 막연했던 동경을 호기심으로 바꿨다.
망원경을 구하기 어려웠던 그는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플라스틱 파이프에 아버지의 안경알과 돋보기를 붙이고 달을 향했다. 렌즈 너머로 크레이터가 나타났다. “안경을 망가뜨렸다고 야단은 맞았지만 그때의 기쁨은 어린 시절 가장 큰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별을 본격적인 취미로 삼은 것은 2003년. 건강 문제로 병원에 며칠 지내며 삶을 돌아보다 “어린 시절 보았던 아름다운 은하수를 다시 보지 못한다면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나온 뒤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8인치 망원경을 구입했다. 이후 한창 천체사진에 빠져 있을 때는 200㎏이 넘는 장비를 차에 싣고 100㎞ 넘게 달려 산으로 향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추위 속에서 밤을 새우고 출근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해발 약 3000m 고원지대인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신범영 동문이 촬영한 은하수.
그토록 공을 들이는 이유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우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천체사진은 희미한 빛을 담기 위해 수시간에서 수십 시간씩 노출하고, 움직이는 천체를 정밀하게 추적한 뒤 여러 단계의 이미지 처리를 거쳐야 완성된다. 신 동문이 아끼는 플레이아데스성단(M45) 사진은 두 달 동안 수백 시간을 노출해 완성했다. 2011년에는 역시 두 달여 동안 촬영한 IC 1396 사진으로 한국천문연구원 천체사진공모전 대상을 받았다.
장비를 매번 설치하고 철거하는 시간이 아까워 아예 천문대도 만들었다. 강원 화천 해발 600m 산중턱에서 도라지밭을 일구던 부부의 도움으로 200평의 땅을 빌려 ‘별만세관측소’를 세웠다. 서울에서 먼 거리를 오가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인터넷으로 장비를 구하고 시스템을 직접 설계해 원격관측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이제는 인터넷이 연결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관측소 지붕을 열고 망원경과 카메라를 움직일 수 있다.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짧은 순간은 그 모든 수고를 보상했다. 2013년 천문인들의 기대를 모았던 ISON 혜성을 촬영할 때가 그랬다. 맨눈으로도 볼 수 있는 대혜성이 될 것이란 전망과 달리 좀처럼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혜성을 잡기 위해 그는 11월 16일 새벽 화천의 천문대를 원격으로 조작하며 기다렸다. 해가 뜨기 직전인 오전 5시 50분부터 불과 10여 분, 마침내 카메라에 혜성의 모습을 담았다. 그가 사진을 공개하자 기다리던 ISON 혜성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많은 천체사진가들에게 다시 도전해볼 희망을 준 순간이라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40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신 동문. 그에게 별은 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천문대에서 별을 볼 기회가 있었다면 원래 꿈이었던 천체물리학자의 길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일반 공립고인 경동고에 천문대를 만들고 학생들에게 직접 밤하늘을 보여줬다. 작은 경험 하나가 학생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차례 봤기 때문이다. 망원경을 들여다본 학생이 감탄하는 모습은 혼자 별을 볼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수십 년째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지만 별을 마주할 때의 설렘은 여전하다. 대신 그 마음 한편에는 ‘겸손’이 더해졌다. 그는 “인간에게 100년은 긴 시간이지만 우주에서 100년은 한순간도 되지 않는다”며 “그 긴 시간과 거대함을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겸손해진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아직 기다리는 천체가 하나 있다. 76년마다 돌아오는 핼리혜성이다. 1986년에는 군 복무 중이라 제대로 볼 기회를 놓쳤다. “2062년이면 제가 100세예요. 그때 핼리혜성이 밤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 은하수를 바라보던 소년은 세월을 건너 지구 반대편 사막의 밤하늘까지 다다랐다. 장비도, 기술도 달라졌지만 하늘을 올려다볼 때의 마음만은 그대로다. 여전히 별은 아름답고, 그 너머의 세계는 궁금하다. 인터뷰 말미, 신 동문은 별을 만나기 위해 거창한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오늘 밤이라도 조금 어두운 곳으로 가서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답니다.” 이정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