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호 2026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70대에 대기환경·폐기물처리 기사…환경기사 3관왕
역대 최고령 수질환경기사 취득, 고향에 폐기물처리장 짓고 싶어
70대에 대기환경·폐기물처리 기사…환경기사 3관왕

백병두(경영77) 희기획 대표
역대 최고령 수질환경기사 취득
고향에 폐기물처리장 짓고 싶어
“병두야, 우리 나이에 다른 사람들은 은퇴하는데 무슨 자격증이고 창업이냐?” 2020년 백병두 대표가 고교 동창회에서 고향에 폐기물 처리시설을 짓겠다는 포부를 밝히자 돌아온 말이다. 역대 최고령으로 수질환경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직후였다. 이후 6년간의 수험 끝에 대기환경기사와 폐기물처리기사 시험까지 합격해 ‘환경기사 3관왕’에 등극한 백 대표, 그에게 ‘무슨 창업이냐’던 동창들은 이제 “도대체 그럴 수 있는 원동력이 뭐냐”고 묻는다.
백병두 대표의 어린 시절은 공부와 영 인연이 닿지 않았다. “공부라면 학을 뗐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과외 선생님은 저를 못 가르치겠다면서 하루 만에 도망쳤고, 하도 밖을 나도니 아버지는 제 발목에 줄을 매어놓고 어디 못 나가게 하셨어요. 오죽하면 제가 말처럼 뛰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이름을 ‘백말두’로 바꾸자고 했겠어요.”
중학교 입학시험에는 3번 고배를 마셨고, 고등학교 입학시험은 1차와 2차 모두 낙방했다. 고등학교 진학의 꿈은 접은 채 지내던 차였다. “월요일 아침만 되면 집 근처 고등학교에서 조회하는 소리, 구령 소리가 쩌렁쩌렁 들리는 거예요. 듣고서 ‘아, 나는 평생 고등학교 못 다니나 보다’ 생각하고 혼자 엄청 울었어요.” 얼마 안 가 고교 입시 학원에 등록했고, 끝내 희망하던 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이후에도 고전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성적표에는 한 학년 183명 중 181등까지도 찍혔다. “지방에서 올라오신 부모님이 면담에서 담임 선생님한테 “백병두는 갈 대학이 없다”는 말을 들으시고 교무실에서 정문까지 한 100m를 울면서 걸으셨어요.”
7수 끝에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을 때는 이미 또래보다 나이가 한참 많았다. 경영학과로 적을 옮긴 뒤 무사히 졸업은 했지만, 나이 탓에 금융권에는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취업문을 여러 차례 넘지 못하다가 이력서 들고 고교와 대학 선배를 찾아가 “자리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당시로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옥외광고 회사 ‘전홍’에 취업했고, 영업에 평생을 바치다가 예순아홉의 나이에 은퇴했다. 바로 환경기사 자격증 수험에 돌입한 시점이다.
수험 과정은 원서 접수부터가 녹록지 않았다. 백병두 대표는 환경기사 학원을 다닌 지 3개월이 지나 시험 접수할 때쯤 응시 자격의 존재를 알았다. 환경공학과나 관련 학과를 나왔거나, 관련 분야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자만 지원할 수 있다는 안내를 원서 접수창에서 마주친 것이다. “관련 학과가 아니라서 큰일 났더라고요.” 다급한 마음에 산업인력공단에 전화를 걸어 문의하니 ‘서울대 경영학과는 커리큘럼에 ‘생산관리’ 과목이 있는 덕에 관련 학과 졸업자로 인정된다’고 했다.
대학 시절 매일 아침 9시 중앙도서관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던 백병두 대표에게도 예순아홉의 수험 생활은 고됐다. 특히 수질환경기사를 준비하던 3개월 동안 그는 방바닥에 아예 이불을 펴놓고 형광등을 한 번도 끈 적이 없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다 졸리면 바로 밑으로 내려가 잠들고, 깨면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백 대표에게는 공학용 계산기도 낯설어 ‘옆에 있는 사람들한테 계산기 누르는 법을 물어봐 가며’ 익혔다. 환경기사 시험은 1차와 2차로 나뉘는데, 1차는 다섯 과목 모두 과락 없이 60점을 넘겨야 하고, 2차는 계산 문제가 70%가량 차지하는 주관식 시험이다. 그렇게 수질환경기사를 시작으로 대기환경기사, 폐기물처리기사까지 잇달아 합격해 이른바 ‘그랜드슬램’으로 불리는 3종 세트를 완성한 것이다. “이 세 개를 전부 가진 사람은 전국에 몇 명 없다는 것 같더라고요.”
백병두 대표의 고향은 충남 서천군 장항읍이다. 그는 고향을 가리켜 “장항제련소는 한때 국민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을 만큼 유명했고, 일제강점기에는 호남평야의 쌀을 실어 나르던 항구도시”라며 “서천군 세무서와 경찰서도 자리한, 사람도 돈도 넘치던 근방의 중심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공공기관이 하나둘 떠나고 인구유출도 빨라지자 백 대표의 마음은 급해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장항에 활기가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환경기사 자격증 취득도 고향에 폐기물처리장을 세우겠다는 꿈에서 비롯된 일이다.
은퇴 직후 수험을 결심한 계기로 백병두 대표는 ‘작은 봉사 정신’을 꼽았다. “세상에 규모 있게 봉사하는 사람들 많잖아요. 저는 그렇게는 못 해요. 모임 총무 2개 맡는 정도인데, 작은 사명감, 희생정신, 봉사 정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이제는 자신의 봉사 정신을 고향을 향해 바로 놓겠다는 고백이다.
인터뷰에 나선 이유로도 같은 마음을 꼽았다. “고3이나 재수하는 입시생들, 직장 생활하다 그만둔 50 ,60대들이 장래에 대해서 특히 불안해하는 요즘이잖아요.” 처자식을 책임져야 하는데 나이 탓에 재취업도 쉽지 않아, 예전엔 20대가 몰리던 노량진 학원가에 요즘은 50, 60대 수강생이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도 꺼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이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송민진 학생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