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호 2026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다음 방학에도 올게” 약속 지키러 13년 섬 찾는 한의사
학원 없는 섬마을 찾아 교육봉사, 국·영·수부터 진로·보건교육까지
“다음 방학에도 올게” 약속 지키러 13년 섬 찾는 한의사
한진석(사회복지11) 자생의료재단 한의사

한진석 동문이 생일도 섬마을 아이들에게 교육봉사를 하고 있다.
학원 없는 섬마을 찾아 교육봉사
국·영·수부터 진로·보건교육까지
“집 앞에서 예쁜 조개나 조약돌 하나 주워줘.” 바닷가에 사는 초등학생에게 무심코 건넨 부탁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돼 섬을 떠나던 날, 한진석(사회복지11·사진) 동문에게 달려와 동그란 돌 하나를 건넸다. 정작 부탁했던 한 동문은 그 말을 잊고 있었다. 아이는 달랐다. 몇 년 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동문은 그때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약속을 기억하고, 또 지킨다”는 걸 깨달았다. 세상에서는 별것 아닐지 모를 돌 하나가 그에게는 오래 간직할 소중한 선물이 됐다.
한 동문 역시 아이들과의 약속을 오래 지키고 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재학 중 처음 찾은 전남 완도군 생일도를 13년째 다시 찾는 일이다. 대학생 봉사자로 시작한 그는 이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후배들과 함께 섬을 찾는 한의사가 됐다. 한 섬과 아이들을 13년 동안 꾸준히 찾아온 이유와 그 시간 속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서면으로 들어봤다.
한 동문의 생일도와의 인연은 대학 시절 사회복지학과 선배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당시 섬에는 학원도 고등학교도 없었고, 지역아동센터 선생님 한 명이 서른 명 남짓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이곳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할까’ 하는 궁금증이 첫걸음이었다.
한 번의 봉사는 두 번이 되고, 몇 번의 방학은 어느새 13년이 됐다. 그사이 군 복무와 한의대 진학, 취업까지 삶은 크게 달라졌지만 계속 섬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꼬박 9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처음 한의사가 되던 해에는 면접을 마친 날 밤 서울을 출발해 광주터미널에서 쪽잠을 잔 뒤 다음 날 생일도로 들어갔다. 눈 때문에 배가 뜨지 않아 낚싯배를 빌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다시 배를 타게 만든 것은 아이들의 “선생님, 다음 방학에도 오시죠?”라는 한마디였다. 한 동문은 “그러겠다고 답한 뒤 실제로 돌아온 어른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남다른 교육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기에 할 수 있는 일도 있다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아이들을 찾아오는 어른이 있다는 것”, 오랜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는 이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가르침”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봉사단은 초·중학생 서른 명 남짓에게 국·영·수를 가르치고 진로·보건교육, AI 활용 수업도 진행한다. 최근 장래희망을 이룬 미래의 모습을 AI로 만들어본 한 아이는 “처음으로 내 꿈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고 했다. 한 동문은 공부뿐 아니라 “섬이 세상의 변두리가 아니라 우리에겐 중심이 될 수 있다”며 섬에서 자란 경험 역시 아이들만의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봉사가 끝날 때면 한 동문은 뿌듯함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그때 그 말은 하지 말걸”, “그 아이에게는 그렇게 하면 안 됐는데” 하는 순간들이 되살아난다. 선생님으로서, 어른으로서 부족했던 자리가 보인다는 것은 “지난번보다 조금은 나아졌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섬을 떠나기 전날 밤에는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한다. 아이들과 관계자들에게 한 명씩 편지를 쓰고, 아이들도 봉사자들에게 롤링페이퍼를 남긴다. 한 동문은 서울로 돌아와 “그 편지에 기대어 한 학기를 보내고 다음 방학이면 다시 배를 탄다”고 했다. 배가 선착장을 떠날 때는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13년 동안 이어진 작은 전통이다.
그렇게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사이 아이들도 자랐다. 한 동문이 가르쳤던 제자 한 명은 이제 노화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도 여전히 “쌤, 쌤” 하며 연락해온다. 자신이 전한 말과 가르침이 다시 누군가에게 이어지는 데 대해 “이보다 더 큰 삶의 결실이 없다”며, 아이들 앞에서 더욱 말을 고르게 됐다고 했다.
생일도에서의 경험은 진로에도 흔적을 남겼다. 아동센터에서 한의사들이 아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모습을 보고, 생일도에서는 의료기관을 찾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만났다. 현장 복지에 전문성을 더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의학 공부로 이어졌다. 한 동문에게 한의학은 “계속 공부하고 싶은 학문”이자 “복지를 현장에서 실현하는 좋은 기술”이다.
봉사를 바라보는 마음도 달라졌다. 대학생 때는 ‘가서 부딪히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이 컸다면 지금은 두 달 전부터 교육과정을 논의하고 학생마다 계획을 세운다. 처음에는 봉사를 자신이 감동받는 “뜨거운 순간”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마음을 얻기보다 “상처 주지 않는 길”을 먼저 생각한다. 큰 변화를 만들기보다 한 아이에게 더 오래 시간을 쓰고, 생일도 교육이 이어지도록 작은 일부가 되는 것을 자신의 몫으로 여긴다.
그래서 다음 목표는 자신이 없어도 생일도 교육봉사가 이어지는 것이다. 후배와 새로운 봉사자를 꾸준히 모으고, 언젠가는 섬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시 후배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꿈꾼다. 이미 제자들은 선생님과 미용사, 소방관, 작가가 돼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 동문은 아이들이 섬을 떠난 뒤에도 마음 한편에 생일도를 자기만의 자원으로 품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13년 전 처음 찾은 생일도는 이제 그에게도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하는 공간이 됐다. “봉사를 무언가 떼어주는 일로만 여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신 안에 또 다른 세계를 하나 쌓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그는 권한다. “가능하다면 마음속에 섬 하나, 아이 하나 품고 사는 일과 연을 맺어보셨으면 합니다.” 이정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