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호 2005년 12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동문들부터 인권에 관심을…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인권'이란 단어에서 심각한 이미지를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인권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권위주의 시대의 어둡고 쓰라렸던 과거사 또는 심심찮게 신문지상을 장식하는 인권침해 사건을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필자 또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나는 1986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의 공소유지 담당변호사(소위 `특별검사 1호')로서 1988년 3월부터 활동한 일이 있는데, 당시 국가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잔인무도한 범죄행위를 추적하면서 고문을 없애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인권적 과제로 여겼던 기억이 새롭다. 동서고금의 만물이 변화하듯이 한국사회에도 암흑의 시대가 물러가고 민주화가 찾아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인권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자리로 물러선 것일까? 아니 그보다는 인권의 영역이 사회 전 부문으로 확장됐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 듯하다. 사고의 폭을 조금만 더 넓혀 보면 인권 개념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한발 더 가깝게 다가온다. 나는 변호사도 정년이 있어야 한다는 지론에 따라 예순이 되기 전에 은퇴하고 고향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면서 시골판사로 일하다가, 2004년부터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한 바 있다. 그 무렵 날마다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국민들의 민원서류를 검토하면서, 민원의 신속한 처리야말로 보통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인권문제일 수 있겠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 2001년 11월 25일 국가독립기구로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짧은 시간동안 우리 사회 각 영역에서 인권이 논의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국가보안법, 사회보호법, 비정규직,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테러방지법, 호주제, 사형제도 폐지 등 중요한 인권현안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그러나 내가 더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일상생활의 인권문제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올 초 초등학생의 일기장 검사와 중․고등학생들의 강제두발 행위에 대해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내리자 일부 언론에서는 인권위가 과도한 의견을 밝혔다고 비판한 바 있는데, 나는 이러한 일상의 잘못된 관행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인권문제야말로 우리 사회가 더욱 관심을 쏟아야 할 부문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작은 일에서부터 국민들의 의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948년 12월 10일 파리 UN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지 57년. 이제 대한민국의 인권상황도 57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다. 지난 여름 내 고향 고흥의 소록도에서 만난 한센인들은 아직도 일본정부를 향해 배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빈곤층과 차상위계층 및 이주노동자의 실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현대사회의 인권은 국가폭력, 고문 등 신체의 자유를 보장받는 자유권적 인권으로부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라는 사회권적 권리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 각 부문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온 서울대 동문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쏟고, 나아가 작은 일에서부터 인권감수성을 퍼트리는 귀중한 홀씨가 되기를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