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호 2026년 9월] 뉴스 본회소식
400년 종가의 시간…칠곡에서 만난 선비의 삶
칠곡서 광주이씨 종택·고택 탐방
400년 종가의 시간…칠곡에서 만난 선비의 삶

귀암고택에서 이필주 종손과 동문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칠곡서 광주이씨 종택·고택 탐방
낮은 산에 둘러싸인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기와를 얹은 고택과 굽은 돌담길이 이어졌다. 기울어진 담장과 닳은 문지방, 오래된 기둥에는 여러 세대가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9월 3일 제13회 본회 국토문화기행에 참여한 동문 60여 명이 경북 칠곡 매원마을 일대를 찾아 광주이씨 종가의 삶과 조선 선비의 학문 전통을 살펴봤다.
이날 동문들은 석담종택과 감호당, 매원마을 고택, 박곡종택, 동산재 등을 차례로 둘러봤다. 평소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석담종택도 이날 특별히 문을 열어 동문들을 맞았다. 광주이씨 대종회 관계자들도 현장에 나와 동문들과 동행하며 각 종택과 재사의 내력을 설명했다.
첫 방문지인 석담종택에서는 석담의 16대 후손인 이병구 박사가 동문들을 맞아 문중의 역사와 종가 문화를 소개했다. 광주이씨 칠곡 문중은 대대로 많은 학자를 배출했으며, 칠곡에 남아 있는 광주이씨 불천위 사당 다섯 곳도 오랜 문중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날 종부는 직접 준비한 과일 효소 음료를 내놓으며 종가를 찾은 손님들을 맞기도 했다.
광주이씨인 이주영(법학70) 동문도 이날 기행에 함께했다. 이 동문은 “동문들이 광주이씨 집성촌인 칠곡을 찾아와 문중으로서 큰 영광”이라며 “국토문화기행을 통해 우리 역사와 문화를 함께 익혀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후 동문들은 매원마을을 방문했다. 매원마을은 17세기 석담 이윤우(1569~1634)가 터를 잡은 뒤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오며 광주이씨 집성촌으로 발전한 곳이다. 1900년대 초 마을이 가장 번성하였을 때에는 420호 이상의 기와집과 180여 호의 초가가 있었다고 한다. 6·25전쟁 당시 마을에 주둔한 북한군을 공격하기 위한 유엔군의 대규모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지금도 종택과 고택, 재사 등이 곳곳에 남아 있다. 2023년에는 마을 전체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매원마을의 학문 전통은 후학을 가르치던 강학 공간인 감호당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퇴계 이황의 학맥을 계승한 석담이 세운 이곳은, 그가 스승의 삼년상을 마치고 자제들과 함께 매원으로 들어온 뒤 자신의 살림집보다 가장 먼저 마련한 배움의 터전이다.
이후 강학 공간을 중심으로 후손들의 집이 들어서며 오늘날 매원마을의 골격이 만들어졌다. 후손들도 잇따라 문과에 급제했고, 석담에서 후대까지 4대에 걸쳐 한림을 배출했다. 마을 앞 산봉우리에 ‘장원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과거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인물이 많이 나온 데서 비롯됐다고 전한다.
동문들은 감호당을 나온 뒤 고택과 골목 사이를 천천히 살폈다. 담장과 굽은 길 등 공간 구성에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예법과 생활방식이 담겨 있었다. 이어 찾은 귀암고택에서는 귀암 이원정의 13대 종손인 이필주 종손이 동문들을 맞았다. 종택을 지켜온 종손에게 문중의 내력과 불천위제사, 대대로 이어온 선비 정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곡종택에서는 조선 선비의 역사 위에 겹쳐진 근현대사의 흔적을 마주했다. 박곡 이원록(1629~1688)의 종가인 이곳은 한때 86칸 규모의 큰 집이었지만 6·25전쟁을 거치며 대부분 훼손됐다. 현장에는 지금도 당시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동문들은 종택 기둥에 남은 총알 자국 등 전쟁의 흔적을 살피며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종택에 얽힌 사연에서도 격동의 역사가 전해졌다. 현장 설명에 따르면 일제는 제적등본에 찍힌 ‘종선(種善)’ 도장 위에 붉은색 ‘불(不)’자를 덧찍어 ‘종불선(種不善)’으로 만들며 가문에 불온의 낙인을 찍었다고 한다. 이 집안의 직계 후손들은 독립운동에 나서고 전쟁에 참전했으며, 독립·참전유공자 등 국가유공자가 13명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찾은 동산재는 광주이씨 석전문중 3대의 재사가 한 울 안에 모여 있는 곳이다. 낙촌 이도장의 낙촌정과 아들 귀암 이원정의 경암재, 손자 이담명의 소암재가 한 공간에 자리한다. 특히 손자의 재사부터 아들, 아버지의 재사 순으로 세워져 3대의 순서와 건립 순서가 거꾸로인 점도 눈길을 끌었다.
1960년대 인근에 미군기지 캠프 캐럴이 들어서면서 주변 환경이 크게 달라졌지만, 문중의 노력으로 재사 일대가 보존됐다고 전한다. 동문들은 세대를 달리하는 건물을 차례로 살펴보며 조상을 기리고 문중의 전통을 이어온 재사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날 칠곡군에서도 동문들의 방문을 환영하며 떡과 선물을 전달했다.
기행을 마친 동문들은 칠곡의 종가문화와 전통을 직접 접한 소감을 전했다. 정병일(독문71) 동문은 “평생 처음 찾은 칠곡에서 여러 면모를 볼 수 있어 아주 감동적이었다”며 “광주이씨 종친회의 따뜻한 환대에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대복(행대원77) 동문은 “이번 기행을 통해 칠곡 유생과 선비들의 숭고한 정신과 삶을 느낄 수 있어 뜻깊었다”며 “함께한 동문들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정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