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호 2026년 9월] 뉴스 기획
전쟁의 폐허에서 관악의 지성 공동체로 “질문 만드는 대학 돼야 세계 인재들 몰려들 것”
“노벨상 배출하는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노벨상 배출하는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연구경쟁력·사회적 책임 강조

1984년 1월 대운동장에 붙은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
“세계 명문대학 10위권에 진입하고 노벨 과학상이 나올 수 있는 대학이 되길바랍니다.”
서민정(국악95)·김용웅(약학86) 동문 등 여러 동문들이 개교 100주년의 서울대에 건넨 기대다.
본지는 서울대 개교 80주년을 맞아1959학번부터 2021학번까지 동문 75명에게 ①기억 속 서울대, ②가장 의미 있는 변화, ③고쳐야 할 점, ④100주년의모습 등을 물었다.
동문들은 동숭동의 라일락 향기와 공릉동의 황량한 교정, 관악의 넓은 잔디밭을 떠올렸다. 1970∼80년대 학번들의 기억에는 청춘의 낭만과 함께 민주화운동, 휴강과 최루탄의 흔적도 짙게 남아 있었다.
서울대 80년의 가장 의미 있는 변화로는 30명이 관악캠퍼스 이전과 단과대학 통합을 꼽았다. 국립대학법인 전환을 든 동문은 8명이었다.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의 변화, 연구 경쟁력 향상, 융합 연구와 교육환경의 디지털화 등 도 주요 성과로 거론됐다.
동문들은 국내 1위에 안주하지 말고 기초학문과 독창적 연구, 교수진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계의 인재가 찾아오고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대학, 창의적인 연구자가 성장하는 대학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문들이 바란 것은 순위만 높은 대학이 아니었다. 지식과 함께 인성과 윤리의식을 가르치고, 개인의 성공보다 국가와 인류에 기여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이었다. 세계적 학문 경쟁력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함께 높여 국민의 신뢰를 받는 대학. 그것이 동문들이 그린 서울대의 새로운 100년이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관악의 지성 공동체로 “질문 만드는 대학 돼야 세계 인재들 몰려들 것”
연구경쟁력·사회적 책임 강조

1984년 1월 대운동장에 붙은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
“세계 명문대학 10위권에 진입하고 노벨 과학상이 나올 수 있는 대학이 되길바랍니다.”
서민정(국악95)·김용웅(약학86) 동문 등 여러 동문들이 개교 100주년의 서울대에 건넨 기대다.
본지는 서울대 개교 80주년을 맞아1959학번부터 2021학번까지 동문 75명에게 ①기억 속 서울대, ②가장 의미 있는 변화, ③고쳐야 할 점, ④100주년의모습 등을 물었다.
동문들은 동숭동의 라일락 향기와 공릉동의 황량한 교정, 관악의 넓은 잔디밭을 떠올렸다. 1970∼80년대 학번들의 기억에는 청춘의 낭만과 함께 민주화운동, 휴강과 최루탄의 흔적도 짙게 남아 있었다.
서울대 80년의 가장 의미 있는 변화로는 30명이 관악캠퍼스 이전과 단과대학 통합을 꼽았다. 국립대학법인 전환을 든 동문은 8명이었다.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의 변화, 연구 경쟁력 향상, 융합 연구와 교육환경의 디지털화 등 도 주요 성과로 거론됐다.
동문들은 국내 1위에 안주하지 말고 기초학문과 독창적 연구, 교수진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세계의 인재가 찾아오고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대학, 창의적인 연구자가 성장하는 대학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문들이 바란 것은 순위만 높은 대학이 아니었다. 지식과 함께 인성과 윤리의식을 가르치고, 개인의 성공보다 국가와 인류에 기여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이었다. 세계적 학문 경쟁력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함께 높여 국민의 신뢰를 받는 대학. 그것이 동문들이 그린 서울대의 새로운 100년이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관악의 지성 공동체로 “질문 만드는 대학 돼야 세계 인재들 몰려들 것”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은 배움
대한민국 현대사와 함께 성장
민주화 최전선에서 연구대학으로
학과 중심에서 경계를 넘는 교육으로
공공의식과 윤리교육 강화해 모교 신뢰 되찾길
세계인이 오고 머무는 열린 대학이길
동문들이 기억하는 서울대의 첫 장면은 저마다 달랐다. 1950∼60년대 학번에게 서울대는 아직 하나의 캠퍼스로 모이기 전의 대학이다. 안동일(법학59) 동문은 법대와 미대가 함께 있던 이화동 교정과 구름다리 건너편의 문리대 캠퍼스를 떠올렸다. 구월환(사회60) 동문의 기억에는 동숭동 캠퍼스의 라일락 향기와 마로니에 나무 그늘, 벤치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학생들이 남아 있다. “최고의 대학에 들어왔다는 성취감에 차 있었다”는 회고도 덧붙였다.
공릉동 교양과정부를 거친 동문들에게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유덕상(사학68) 동문은 교정이 황량하고 대중교통도 거의 없어 “유배 생활을 보내듯 했다”고 회상했다. 김광용 동문은 동숭동 문리대에서 입학식을 하고 공릉동 교양과정부와 서울대 공대를 거쳐 관악캠퍼스에서 졸업식을 했다. 한 사람이 서울대 공간사의 전환기를 고스란히 지나온 셈이다. 연건동에서 공부한 의·치·약학 계열 동문, 수원 농과대학을 다닌 동문들의 기억까지 더하면 서울대 80년은 여러 캠퍼스의 역사이기도 했다.
관악캠퍼스 이전 초기에는 새로운 추억이 쌓였다. 초기 관악캠퍼스 입학생이었다는 박혜영(응용미술76) 동문은 좋은 시설과 쾌적한 환경을 반기면서도 넓은 캠퍼스를 걸어 수업을 오가는 일이 버거웠다고 했다. 김재은(기악76) 동문이 기억하는 초기 관악은 “그늘 하나 없고 황량한 벌판”이었지만 꿈과 야망이 가득한 곳이었다. 권영일(산업76) 동문은 초원처럼 펼쳐진 잔디밭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하고 카드놀이를 하던 낭만적인 캠퍼스를 떠올렸다.
그러나 1970∼80년대 서울대의 기억에서 시대의 그늘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 많은 동문이 시위와 휴강, 전경의 진압과 최루탄을 언급했다. 박재영(독문82) 동문은 당시를 “젊음의 양지와 민주주의를 위한 외침과 희생이 공존했던 아픔과 희망의 시절”이라고 기억했다. 이조영(정치85) 동문은 “시위와 전경들의 진압, 최루탄 가루가 가득했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간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던 곳”이라고 했다.
같은 시대를 보낸 동문들의 기억도 모두 같지는 않았다. 이종무(조선공학81) 동문에게 서울대는 봄이면 벚꽃과 라일락 향기가 교정을 감싸고, 때로는 하굣길 최루탄 냄새가 미래를 먹먹하게 만들던 곳이었다. 남효승(금속88) 동문은 학생들의 성장 욕구와 시대의 아픔이 공존한, “험난하지만 젊었고 희망찼던 관악캠퍼스”라고 돌아봤다.
1990년대 이후 학번들의 답변에는 버들골과 학생회관, 중앙도서관, 동아리와 축제의 기억이 크게 자리 잡았다. 서민정 동문은 학생회관 앞에서 제기차기를 하고 버들골에서 술을 마시던 낭만을 떠올렸다. 유영환(역사교육15) 동문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수강 신청, 장터, 학생회, 동아리와 식사까지 “모든 순간을 누군가와 함께해야 했던 곳”이라고 했다.
김진희(영어교육21) 동문에게 서울대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주는 동시에 가치 있는 것을 많이 배울 수 있게 한 이름이었다. 유학생 만헝(의학20) 동문은 서울대에서 처음 유학하며 독립을 배우고 연구의 꿈을 키웠으며, 지도교수와 친구들을 만난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꼽았다.
30명이 꼽은 관악캠퍼스 통합
‘서울대 80년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변화’를 묻는 질문에는 관악캠퍼스 이전과 단과대학 통합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모두 30명이 캠퍼스 이전·통합 또는 농과대학의 관악 이전을 들었다.
김만식(공업교육69) 동문은 과거에는 단과대학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입학식과 졸업식 외에 전교생이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웠고, 같은 서울대 학생끼리도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이 상대적으로 약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관악캠퍼스 이전으로 대학이 한곳에 결집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대학교라는 자부심을 뒤늦게나마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유영환 동문은 관악 이전을 “서울대라는 흩어진 관념이 하나의 덩어리로 체현된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농과대학과 병원까지 캠퍼스 종합화의 범위를 넓혀 본 답변도 있었다. 노희석(치의예95) 동문은 농생명과학대학이 관악으로 들어오고 관악캠퍼스에 치과 병원이 들어선 것을 큰 변화로 꼽았다. 김규랑(농생물88)·고운미(농촌사회교육92) 동문에게는 수원에 있던 농대의 관악 이전이 무엇보다 큰 변화였다.
외형적 성장도 여러 답변에 등장했다. 동문들은 숲과 빈터가 많던 캠퍼스에 연구동과 교육시설이 들어서고, 중앙도서관을 비롯한 연구·학습 기반이 확충된 점을 들었다. 관정도서관 건립을 가장 의미 있는 변화로 꼽은 답변도 있었다. 반면 건물이 지나치게 늘어 캠퍼스의 낭만과 야외 공간이 줄고, 교정의 전체적인 조화가 부족해졌다는 아쉬움도 나왔다.
국립대학법인 전환을 가장 중요한 변화로 꼽은 동문은 8명이었다. 법인화를 대학 운영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환점으로 보는 시선이 있는가 하면, 법인화 이후에도 관료적인 조직문화와 폐쇄성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의 전환, 연구 경쟁력 향상, 융합 연구 활성화와 교육 환경의 디지털 혁신도 주요 변화로 거론됐다.
남광현(전기·컴퓨터공학08) 동문은 학문 간 경계를 허무는 융합 연구와 첨단화된 연구·교육 기반을 뜻깊은 변화로 꼽았다. 이조영 동문은 남성 중심 대학에서 양성평등에 가까운 대학으로 나아간 점을 들었다. 지역사회에 대한 개방성과 사회 기여의 책임이 커진 점, 세계적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으로 성장한 점,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 점을 주목한 동문도 있었다.
모든 평가가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일부 동문은 의미 있는 변화를 선뜻 떠올리기 어렵다고 답했고, 국내외 다른 대학의 빠른 성장에 비해 서울대의 변화가 더디다고 비판했다. 외형은 커졌지만 서울대만의 비전과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내 1위에 안주해선 안 돼”
지금의 서울대가 놓치고 있거나 고쳐야 할 점을 묻자 학문과 연구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문이 두드러졌다. 김광용 동문은 서울대가 여전히 국내 평판 1위에 안주해 “학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종명(축산75) 동문은 대한민국의 발전상에 비해 서울대의 학문적 국제 경쟁력이 미흡하다며 진정한 연구 중심 대학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우종구(농공81) 동문은 “서울대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이유부터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초학문과 독창적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김인용(불문62) 동문은 기초학문 보강을, 김용웅(약학86) 동문은 기초과학에 대한 더욱 독창적인 접근을 강조했다. 서호진(응용화학97) 동문은 진정한 학문과 예술을 추구하는 연구 중심 대학이 되기를 바랐다. 김용섭(대학원83) 동문은 “기초학문과 국학 중심의 융합 연구를 활성화하고, 서구 이론의 무비판적 수용을 넘어 학문적 주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데 그치지 말고 더 뛰어난 인재로 성장시키는 교육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노병철(공업화학94) 동문은 공부를 잘하고 성실한 학생을 기르는 수준을 넘어 탁월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발굴해야 한다고 했다. 박중원(의학77) 동문은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평범해지면 안 된다”며 “우수한 학생이 더욱 뛰어난 역량을 갖추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진의 역량 강화와 충분한 예우, 도전적인 연구를 뒷받침할 평가·지원 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연구 성과가 대학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주목된다. 남광현 동문은 “우수한 연구 성과가 산업 현장과 사회문제 해결로 신속하게 이어지도록 실용적인 연결고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규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연구와 학습이 가능해야 한다는 요구, 성장 가능성이 큰 신진 연구자와 외부 석학에게 더욱 문을 열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유학생의 학업·생활·진로 지원을 강화해 세계 인재가 실제로 공부하고 정착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식보다 앞서 책임과 품격을
연구 경쟁력 못지않게 반복된 화두는 서울대의 사회적 책임이었다. 여러 동문은 서울대가 우수한 인재를 개인의 성공이나 출세만을 좇는 직업인으로 길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권영일 동문은 “취업과 연봉에 유리한 학과만 중시하고 지식인과 지성인보다 유능한 직업인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변해 가는 듯하다”고 우려했다.
남효승 동문은 서울대가 대한민국 최상층 기득권의 공급처가 돼서는 안 된다며 개인을 넘어 사회와 국가, 세계를 아우르는 자기 성찰이 가능한 지식인을 길러 달라고 했다. 김규태(물리88) 동문도 사회적 책무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인식하고, 겸손한 시선과 진취적인 도전을 함께 갖춘 인재를 강조했다. 이조영 동문은 “사회 여러 분야의 도움을 받는 대학으로서 책임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엘리트주의와 개인주의, 동문의식 약화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졸업생의 일탈이 모교의 신뢰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공공의식과 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 학생들이 시대와 사회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지식뿐 아니라 철학과 배려, 공감 능력을 가르치고 예의와 휴머니즘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대학 운영과 문화에 관한 구체적인 요구도 적지 않았다. 경직된 관료주의와 행정문화를 개선하고, 구성원 간 협의 절차를 강화하며, 시설과 연구 자원을 지역사회에 더 개방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단과대학 간 교류와 융합, 산학 협력, 전문직 단체와의 소통을 늘려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졸업 뒤에도 동문이 대학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모교와 동창회의 연결을 강화하고, 동문 간 상부상조 정신을 북돋워야 한다는 바람도 나왔다.
순위와 책임 함께 높이는 100년으로
개교 100주년의 서울대를 묻는 마지막 질문에서 32명은 ‘세계’ 또는 ‘글로벌’을 직접 언급했다.
세계 1위·5위·10위권 진입을 비롯해 세계 유수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학, 세계의 인재가 배우러 오는 대학, 해외 유학을 가지 않아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을 기대했다. 표현은 달랐지만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적인 학문 공동체로 도약해야 한다는 지향점은 같았다.
노벨 과학상과 세계적 석학의 배출은 동문들의 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고운미 동문은 노벨상 수상자를 5명 이상 배출하는 대학을, 김인용 동문은 노벨상 수상자가 여럿 나오는 세계적 권위의 대학을 꿈꿨다. 그러나 동문들이 바란 것은 수상 실적이나 대학 순위 자체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학문과 기술을 좇으면서도 오랫동안 축적한 연구자료를 보존하고 발전시켜 세계적인 성과를 만드는 대학, 한 분야에서라도 누구도 쉽게 따라올 수 없는 학문적 성취를 쌓는 대학을 기대했다.
AI 시대와 지구적 난제를 선도해야 한다는 미래지향적인 주문도 나왔다. 남광현 동문은 “글로벌 난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세계적인 지식 플랫폼”이자 미래 100년을 선도하는 열린 대학을 바랐다. 김용섭 동문은 AI 시대에도 인간 창의성의 연구 허브로 도약하고, 독창적 학문의 생산기지로서 세계 지식을 선도하며 지구적 난제를 해결하는 “세계 지성의 본산”이 되기를 기대했다.
세계화의 의미를 대학 순위 상승에만 두지 않은 답변도 많았다. 세계인이 찾아오고 싶은 캠퍼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학생이 어울리는 대학, 포용성과 개방성을 갖춘 교육기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창의적이고 남다른 학생이 존중받는 교육 환경, 학부 교육부터 평생교육까지 생애 전반의 배움에 기여하는 대학, 졸업 뒤에도 구성원이 자부심과 유대감을 느끼는 대학을 바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남주 기자
사진 서울대 역사 사진집
‘서울대 사람들 1946-2016’ 활용


사진 서울대 역사 사진집
‘서울대 사람들 1946-2016’ 활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