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1호 2026년 8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산길 걸어 지구 한 바퀴 반
산길 걸어 지구 한 바퀴 반

임상녕(농경제65)동문
7월 4일 23시 30분에 남부터미널을 떠난 버스가 5일 3시쯤 나를 중산리에 내려준다. 오랜만의 높은 산 오르기인데 준비가 부실한 데다 날씨마저 좋지 않다. 비마저 오락가락할 것이라니 더위는 피할 수 있겠지만 걱정이 앞선다. 5만9993km에서 시작하니 천왕봉에 오르면 6만km. ‘산길 걸어 지구 한 바퀴 반’이 되겠지.
힘겨운 산행을 마치고 천왕봉 등산 관련 기록을 들여다보니 흥미롭다. 오늘 21번째 올랐고 맨 처음은 2006년 6월 6일. 천왕봉에서 일출을 여덟 번 봤다. 2009년 10월 15일 아내와 처음 보고, 2022년 10월 30일에 8번째. 두 번은 실패. 지리산 종주는 다섯 번.
6만km, ‘산길 걸어 지구 한 바퀴 반’의 과정을 더듬어 보면 이 또한 흥미로울까.
2004년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면서(?) “미치면 미친다(不狂不及)니 미쳐 보겠습니다”라고 이임 인사를 했었다. 빈둥빈둥 아파트 뒷동산을 오가다 이웃한 대모산과 구룡산도 오르다가 2005년 10월 19일에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오색 대청봉 희운각 대피소 무너미고개 공룡능선 마등령 삼거리 오세암 백담사 코스를 무박으로 완주하고는 자신감이 생겨 2006년부터는 가고 싶은 산은 거의 다 올랐다.
2011년 1월 3일에 ‘산길 걸어 지구 한 바퀴’를 돌아보자고 마음을 정했다. 다이어리에 적혀 있던 2006년부터의 산행 흔적과 2010년 3월부터 자세히 적기 시작한 산행일지의 거리 2000km를 감안해서 1만km를 바탕으로 깔고. 등산학교에서 GPS 활용 과정을 수강한 후 2013년 3월 26일에 산길샘 앱을 깔고 첫 산행으로 천보산을 올랐다. 그 후는 GPS로 측정한 거리라 아주 정확할 테고 그 이전엔 이정표 등을 참고해서 추정했던 거리다.
산길의 범주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바뀌었다. 아마 반 바퀴까지는 산길만 걸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만 그 후는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다. 산행의 강도와 속도와 고도를 포기하고 빈도에만 매달려 있는 요즘에는 둘레길과 근린공원과 전철역 오가는 길에서도 산길샘 앱을 켜고 걷는다.
퇴임 인사 때에 미치(狂)려던 게 걷기이고 미친(及) 게 6만 8km, ‘산길 걸어 지구 한 바퀴 반’과 나이 80. 미친(及) 게 하나 더 있다. 2021년 7월 22일부터의 연속산행 1810일(2만 893km). 산행 때의 호흡에 도움이 될까 싶어 2010년 1월부터 시작한 단전호흡과 활성산소라는 독소를 없애준다고 해서 2018년 4월부터 시작한 맨발 걷기에도 미쳐(狂)있고 그 덕을 보고 있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