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81호 2026년 8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할머니는 68학번, 손녀는 25학번 “같은 전공입니다”

외조모 따라 소비자학 전공, 웹드라마 ‘장녀 결혼일기’ 주연
할머니는 68학번, 손녀는 25학번 “같은 전공입니다”

최창숙(가정교육68), 진혜림(대학원 소비자학25) 동문
 
외조모 따라 소비자학 전공  
웹드라마 ‘장녀 결혼일기’ 주연
총동창신문에 ‘소비자학과 선후배가 된 외할머니와 외손녀의 이야기를 제보한다’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모교 대학원생이자 배우인 진혜림(대학원 소비자학25) 동문이 총동창신문 인터뷰를 읽고, 조손이 같은 학문의 뿌리를 잇게 된 사연을 보내온 것이다. 외할머니 최창숙(가정교육68) 동문은 사범대 가정교육과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가정 교사로 39년간 재직했다. 진 동문은 가정교육과의 맥을 잇는 소비자학과에서 공부하며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7월 31일 총동창회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처음에는 다정한 외할머니와 외손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자 같은 학문의 맥을 잇는 선후배라는 사실도 또렷해졌다.

-학교는 둘러보셨어요.
최창숙(이하 최) “용두동 사대 캠퍼스에서 학교생활을 해 관악에는 연고가 없어요. 그때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띠를 한 채 실습을 시작하면 사범대 학생들이 뭐라도 얻어먹을까 싶어 기웃거리곤 했죠. 수업에서 말리려고 널어둔 빵을 학생들이 가져다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겨울이면 청량대 언덕에서 놀다가 잠든 남학생들이 통금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한 채 담을 넘어 우리 생활관으로 와 이불을 빌려 달라고 사정하기도 했어요. 당시에는 훗날 가정대학(현 생활과학대학) 초대 학장이 된 장명욱 교수님이 가정대학을 사범대학에서 분리하기 위해 애쓰시던 때였습니다. 요즘은 생활과학대학 동창 모임이 있을 때 222동에 옵니다.”

-배우로는 어떤 활동을 해왔나요.
진혜림(이하 진) “광고 모델로 경력을 시작해 올해로 4년째예요. 최근에는 유튜브 조회 수 41만 회를 기록한 웹드라마 ‘장녀 결혼일기’에서 주연을 맡았습니다.”

-가정교육과와 오늘의 소비자학과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최 “입학 면접에서 장명욱 교수님이 왜 가정교육과를 지망했느냐고 물으셨어요. ‘우리나라 주부의 역할이 옛날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주부가 가정을 이끌려면 자기 역할을 알아야 하고, 이를 많은 학생에게 가르치고 싶다’고 답했는데 좋게 보셨나 봐요. 학교에서는 경제학과 회계학은 물론 건축, 한복과 양복 만들기, 가정 관리까지 가정 교사에게 필요한 내용을 두루 배웠습니다. 나중에는 학생들의 마음을 알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해 교육심리를 전공했습니다.”

진 “저는 미국에서 학부를 졸업했어요. 배우로 활동하면서 사람을 더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소비자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했고요. 할머니 때에는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나 주부의 역할이 중요했다면, 저는 소비자의 역할 전반과 시장을 더 깊이 알고 싶어요. 지금은 ‘영화 추천 맥락에서 추천 시스템이 소비자의 정보 수용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39년간 고등학교 가정 교사로 일하며 중요하게 여긴 원칙이 있으신가요.
최 “무엇보다 학생들을 좋아했어요. 새 학년 명렬표가 나오면 머리맡에 두고, 자다가 깰 때마다 들여다보며 ‘이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생각하고 이름부터 외웠죠.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한 교사였던 어머니는 제가 사범대에 간다고 하자 ‘학생을 정말 사랑해야 한다. 교사가 솔선수범해야 한다. 돈을 생각할 거면 사대에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자라서인지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반에 집을 나간 아이가 있으면 밤낮없이 찾으러 다녔죠. 은퇴할 때는 진이 다 빠진 듯해 다시 교사를 할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받은 즐거움이 훨씬 컸어요.”

-1984년부터 월드비전 후원을 이어오고 계신다고요.
최 “고등학교 때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데, 야고보서 2장 17절이 늘 마음에 남았어요.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라’고 말한들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구절이지요. 1980년쯤 몹시 추운 날 청량리역에서 다 해진 옷을 입고 떨고 있는 아이를 봤어요. 사람들은 동전 몇 닢만 놓고 지나갔죠. 따뜻한 떡국과 옷이 필요하겠다 싶어 언니가 살던 관사로 데려갔습니다. 아이를 씻기고 새 옷을 입힌 뒤 떡국을 끓이러 갔는데, 돌아오니 사라지고 없었어요. 사람을 마음대로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구나 싶었죠. 얼마 뒤 월드비전을 알고 후원을 시작해 다섯 명을 돕고 있어요.”

-진혜림 동문은 그런 할머니를 어떻게 기억하나요.

진 “대학에 가기 전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어요. 크리스마스나 추석이면 할머니는 후원하는 다섯 명에게 맞는 옷을 사서 보내셨고, 저는 심부름으로 그 옷을 사다 드렸죠. 기부를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저도 언젠가 예술교육재단을 만들어 재능이 있어도 경제적 한계 때문에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두 분이 서울대 정문을 함께 지난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요.
최 “저는 얘가 소비자학과 시험을 본 줄도 몰랐어요.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이제 내 후배구나’ 하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많이 했죠.”

진 “자라면서 서울대에 오고 싶었던 것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 학교를 나오셨기 때문이에요. 정문을 지나며, 떨어져 있던 시간이 있었어도 살다 보니 결국 이렇게 만나는 지점이 오는구나 싶었습니다.” 송민진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