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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2026년 7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망설임의 가치

이주영(지리97) 본지 논설위원, 경향신문 기획콘텐츠총괄
망설임의 가치

이주영(지리97) 
본지 논설위원 
경향신문 기획콘텐츠총괄
 
계정만 만들어두고 거의 열어보지 않던 인스타그램을 요즘은 매일 들여다본다. 디지털 관련 업무를 다시 맡게 되면서다. 얼마 전 회사 후배와 점심을 먹다 “난 인스타가 왜 재밌는지 모르겠더라”고 했더니, 후배가 되물었다. “어디 팔로우하세요?”

내가 팔로우하는 곳은 대부분 국내외 언론사다. 취향과는 상관없이, 다른 언론사들이 인스타그램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살펴보기 위한 업무용이다. 게시물을 올리거나 댓글을 단 적은 없고, 회사 계정에 새 게시물이 올라오면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가 내가 하는 활동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연결한 계정의 콘텐츠는 온갖 광고와 AI가 만든 영상들 사이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내가 팔로우하는 계정들을 줄줄 읊자 후배가 “그러니까 재미가 없죠”라고 한다. 예능을 다큐로 보는 사람 같다는 반응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출근길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본다. 직업 특성상 포털 앱을 열어 여러 언론사의 기사를 훑어보며 출근하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영상을 보거나 게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신문을 펼쳐 든 사람은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다.

이제 사람들은 뉴스를 보기 위해 언론사를 찾기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을 먼저 연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짧은 영상으로 정보를 접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AI는 검색을 대신하고, 플랫폼은 언론사 홈페이지를 거치지 않는 정보 소비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제목과 섬네일, 길어야 10여 초짜리 영상으로 승부하는 시대다. 어떻게든 튀는 행동으로 남의 시선을 붙잡아야 하고, 끊임없이 말을 보태야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이 어색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보다 조용히 자기 일을 하는 편이 편한 사람들은 점점 살아가기 힘든 시대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말은 넘쳐나는데 정작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역설도 있다. 디지털 시대의 장점으로 늘 ‘쌍방향 소통’이 꼽히지만, 현실에서는 각자의 알고리즘 안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대화하는 경우가 더 많다. 확증편향은 강해지고, 낙인은 더 쉽게 찍힌다. 플랫폼은 연결을 늘렸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능력까지 키워준 것은 아닌 듯하다.

몇 달 전 김애란 작가가 한 방송에서 했던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는 AI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인간에게는 있고 AI에게는 없는 것이 있었다. 망설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의 고민을 들을 때 어떤 말을 삼키거나 주저하거나, 짐작하고 헤아리는 찰나가 있다. 그리고 그 주저 안에 힘겹게 서 있는 어떤 배려와 품위가 있다”며 “어느 때는 유려하고 빠른 AI의 조언보다 인간의 투박한 침묵이 위로가 된 적이 있다”고 했다.

망설임, 머뭇거림, 절제, 여백. 어쩌면 이런 것들이야말로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진정성이고 말의 무게를 만드는 힘인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은 망설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플랫폼은 침묵보다 즉각적인 반응을 원한다. 그래도 중요한 말은 대개 한 번쯤 삼켜보고, 한 번 더 생각한 끝에 나온다. 할 얘기가 없으면 그냥 안 해도 좋다. 

점심을 먹으며 이런 잡설을 늘어놓자 후배가 한 마디로 일갈한다. “PV(조회수) 떨어져요!”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구독과 좋아요, 댓글 수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이런 한가한 소리라니. 그래도 조회수가 조금 덜 나오더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천천히 생각해 만든 이야기와 잠시 머뭇거린 끝에 꺼낸 말을 기다려주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