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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2026년 7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말이 주는 상처

안호원(HPM 6기) 한국열린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말이 주는 상처

안호원(HPM 6기) 한국열린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특임교수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는 말이 있다. 즉 ‘입은 재앙이 드나드는 문’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말기 재상 풍도는 ‘설시(舌詩)’에서 ‘혀는 자신의 몸을 자르는 칼’이라고 했다. 칼은 본래 남을 향해 휘두르는 것이지만 말이라는 칼은 결국 자신을 먼저 베고 만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내뱉은 한마디가 평생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고, 충동적으로 올린 SNS 글 하나가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봐왔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정치권의 막말 논란도 마찬가지. 상대진영을 향한 조롱과 비난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한순간의 실언이 정책과 비전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그때마다 당사자들은 “진의가 왜곡됐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하지만 이미 시위를 떠난 ‘말 화살’은 되돌릴 수 없다. 

생전의 법정스님도 “사람은 모두 입안에 도끼를 갖고 태어났다.”며 “어리석은 중생들이 말을 함부로 하여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사람의 됨됨이를 뜻하는 한자 품(品)은 입 구(口) 세 개가 쌓여 이뤄진 글자다. 즉 품격이란 결국 쌓이고 쌓인 말의 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보지도, 듣지도 말 것까지야 없지만 본 것을, 들은 것을 모두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철 안에서 본 광고 문구 중 ‘아, 쉽다’와 ‘아쉽다.’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똑같은 세글자임에도 띄어 쓰고, 붙여 씀에 따라 느낌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이 같은 차이가 얼마 전 모 여성단체 총회에서 일어났다. 이날 총회에 앞서 한 대의원이 자신의 포상추천과 관련 집행부의 임원이 ‘저런 사람을’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결국 훈장을 받은 바 있는 ‘저런 분을 어떻게 장관 표창을 상신할 수 있느냐’라는 말이 와전된 것임이 밝혀져 해프닝으로 끝난 사건이었다. 

이 경우도 앞말을 빼고 ‘저런 분을…’ ‘저런 사람’으로 전달했기 때문에 듣는 당사자로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는 등 엄청난 차이를 보일 뿐만 아니라 오해의 감정을 불러올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드러남과 속내가 갈등하는 이중성의 문화 속에서 자신을 적절히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정치적 동물이다. 아무 생각 없이 연못에 던진 돌이라 해도 연못 속 개구리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