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0호 2026년 7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남북 적대관계 해소의 길
윤영상(사회83)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연구교수
남북 적대관계 해소의 길

윤영상(사회83)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연구교수
베네수엘라와 이란, 그리고 쿠바를 압박하고 있는 미국의 다음 표적은 북한이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북한과 이란은 다르다는 말이나 트럼프와 김정은의 친분 관계가 극적인 정상 이벤트를 가능케 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으나 ‘비핵화’를 거부하고 있는 북한을 설득할 특별한 해법이 없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상태에서 핵전쟁을 염두에 둔 한미연합사의 ‘작계 5015’나 ‘작계 5022’가 언론의 관심사가 되고, 김정은 위원장이 남부국경 요새화, 군 지휘체제 및 작전개념 전면 재조정을 주문했다는 기사도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은 무엇보다 핵보유국으로서의 전략적 지위를 공고히 하는 것을 ‘신국가전략’으로 공식화하고 있다. 그것은 전략핵, 전술핵,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과 같은 핵무기 운반수단을 개발하는 것만이 아니라 ‘핵전쟁’ 대비능력을 강화시킴으로써 북한이라는 국가를 보위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핵확산방지조약(NPT체제)에 근거해서 북한의 핵 보유를 수용할 수 없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30여 년이 넘는 협상 과정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를 막지 못했다. 지금 북한은 이스라엘(핵탄두 90기)보다 더 많은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 그리고 대부분의 나라들은 모두 북한의 핵무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의 비핵화를 관철시킬 수단이 마땅치 않다. 미-중, 미-러 간의 강대국 지정학 속에서 대북제재는 상당 부분 유명무실화되었다. 베네수엘라 사태나 이란전쟁에서 확인된 정밀폭격이나 참수작전은 꿈도 꾸기 어렵다. 2022년 9월 북한 최고인민회의를 통과한 핵무력정책법에 따르면 남한과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이 있거나 그 징후가 포착이 될 때 북한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보수적 북한 전문가 빅터 차가 지적한 것처럼 대북 선제타격은 전면적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북핵을 묵인할 수도 없다. 남한과 일본의 핵무장을 막을 수 없는 핵 도미노 현상이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 등이 주도하는 핵비확산규범인 NPT체제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북한의 두 번째 신국가전략은 바로 교전 상태의 두 국가관계다. 핵심은 남북한은 완전한 적대관계이며, 동시에 전혀 다른 두 국가이므로, 통일은 더 이상 국가적 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일 포기 선언’으로만 해석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북한은 남한을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는 남한이 북한 핵무기의 제1 타격 대상이라는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가 핵 무력은… 결코 동족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2018, 조선중앙통신)는 말은 과거의 언술이 되어버렸다.
이에 대한 해법은 전쟁상태 종식, 적대관계 청산 외에는 없다. 다른 한편 북한의 ‘통일 포기 선언’은 논리적으로 ‘흡수통일’을 제도화하고 있는 남한과의 통일 포기 선언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한이 개헌 등을 통해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고 평화적 공존 통일을 추구한다면 남북관계가 복원될 수 있다는 ‘논리적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헌법 제3조와 제4조의 개헌을 둘러싼 남남 갈등 현실을 고려해 볼 때 그 가능성은 현실화되기 쉽지 않다.
이러한 북한의 신국가전략은 2월에 개최된 제9차 당대회에서 재확인되었고, 3월에 개정된 북한 헌법에서 통일 관련 규정들을 삭제하고 영토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완성되었다. 전술적 언술이 아니라 제도화된 국가전략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북한은 남한을 상대할 당과 정부의 부서들도 없애버렸다. 지금 남북 관계는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다. 지금 남과 북 사이에는 군사적 대치 상태와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공허한 말 공방, 그리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의 우연한 조우 외에는 어느 것도 남아있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는 통일문제는 고사하고, 정치 군사적 핵심사안에 대한 논의조차 불가능한 상태이다. 남한은 미국이나 중국을 통해서만 북과 접촉할 수 있을 뿐이다. 남한은 국외자이자 구경꾼에 불과한 신세가 되어버렸다.
북한의 국가전략을 그대로 수용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남북한과 미국의 입장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충돌이 현실화되면 그것은 곧 전쟁이다. 결국 충돌의 현실화를 막기 위해서는 적대관계를 전환하고 의제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위 평화학의 갈등 전환의 길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존중하고,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