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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2026년 7월] 오피니언 동문기고

두 국가관계 거부하고 통일로 

김천식(정치76) 전 통일부차관
두 국가관계 거부하고 통일로 

김천식(정치76) 전 통일부차관
 
우리는 지금 북한 비핵화에 실패했고 그 대가로서 엄중한 위기 앞에 섰다. 북한은 지난 30년 넘게 일관되고 악착스럽게 핵개발에 집착했다. 국제사회가 1994년 제네바 합의와 같은 어정쩡한 미봉책에 기대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면서도 무력공격을 피해 갈 수 있음을 간파하고 핵개발을 계속했다. 국제사회는 한번도 북핵을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접근한 적이 없으며 현실을 외면했다. 이제 북한은 핵무장했고 이것이 한반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우리는 당분간 북한의 공세적 핵 위협이 일상화된 ‘위험한 냉전’ 시대를 살아야 한다. 북한은 여차하면 남한을 핵으로 초토화하여 영토를 병합하겠다고 한다. 언제라도 남한을 핵으로 공격할 수 있는 법 체제를 갖추었고 전시에는 우선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선포했다. 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양산하고 핵공격 부대를 창설하고 핵공격 작전계획을 세웠으며 각종 미사일로 남한을 공격하는 실전연습을 통해 핵공격의 신뢰성을 과시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은 끊임없이 긴장을 재생산할 것이다. 이건 ‘차가운 평화’ 정도가 아니며 공포의 균형이 작동했던 구시대 냉전보다도 훨씬 위험하다. 북한의 핵을 억제하는 것은 미국의 핵우산인데 이것이 얼마나 튼튼한지는 한미관계에 달려 있다. 우리나라는 한미동맹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자주국방력을 첨단으로 강화하여 전쟁을 방지해야 한다. 다른 대안이 없다. 또한 북한의 핵공갈 앞에서 위축되거나 과잉반응을 절제하는 의지의 강인함이 필요하게 됐다.  

북한의 위협은 군사부문에 멈추지 않는다. 핵무력을 배경으로 한국의 행동을 제약하고 정책을 바꾸며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할 것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두 국가론’에 동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또한 헌법을 바꾸라든가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통일부를 폐지하며 한미군사훈련을 중지하고 비핵화 요구를 중단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요구사항은 파괴적 적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 이를 간과하고 북한의 요구에 동조하며 남남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 확산되고 있다. 북한에 휘둘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한반도 외교·안보에서 북한의 위상이 급상승했다. 북한은 군사력에 있어 남한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미국과 맞상대하여 전략적 지위를 확보하려 할 것이다. 중·러에는 반미전선의 다극질서를 구축하는 주체로서 참여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을 묵인하면서 북한을 지원하고 있고 미국까지도 북핵을 먼산 보듯 대하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 외교에서 남한에게는 잡역조차도 할 수 없게 하겠다고 공언했으며 앞으로 핵국가 중심으로 끌고 가려는 징후가 보인다. 북한은 남한이 동등한 외교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가 한반도 외교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한반도의 주당사자로서 역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남북 간의 화해, 교류협력, 민족동질성 회복과 같은 과거는 되돌아갈 수 없게 됐다. 북한은 남북한 관계를 동족관계가 아니며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고 단절과 적대성을 강화하고 있다. 원래 북한은 남조선 혁명을 통한 북한 주도의 통일을 추구했다. 이것이 북한 정권의 존재 이유였고 정통성의 근원이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체제 경쟁에서 완전 패배한 상황에서는 북한의 통일노선은 그 기능과 설득력을 상실했다. 오히려 남북간의 관여로 북한 주민이 남한을 동경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고 통일해야 한다는 관념은 통일의 주역이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어야 할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북한은 이제 ‘남조선 해방’에 의한 조국통일 노선을 버려야 했고 그 정통성의 공백을 ‘핵무력 영토완정론’으로 대체했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의  체제 안전과 존립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본 적이 없는 민족분리 정책이다. 우리마저 북한의 두 국가론에 동조하면 분단은 영구화되며, 불안정의 영구화 속에서 남북한은 이민족이 되고 우리의 강역은 쪼그라들며 국사(國史)를 다시 써야 하는 참극이 벌어질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큰 위험은 전쟁만 아니라 미래의 지평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두 국가관계’를 거부하고 통일을 보존해야 한다. 동족관념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지향적 특수관계’와 남북한의 같은 언어, 북한 주민과의 통일미래 구상 등이 그런 것이다. 이러한 것이 살아있는 한 언젠가 한민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통일로 나아갈 것이다.